너무 ‘부푼 떡’ 한입에 삼키기 힘들어
하나로텔레콤의 인수합병(M&A)은 그동안 증권가 ‘양치기 소년’의 단골 메뉴였다. 잊혀질 만하면 ‘매각설’이 등장했고, 그때마다 특정 기업들의 이름이 거론되곤 했다. 이 때문에 하나로텔레콤 매각추진 소식은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까지는 믿지 못할 얘기”로 치부돼 왔던 게 사실이다. 이런 하나로텔레콤의 M&A가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적어도 박병무 하나로텔레콤 사장에 따르면 곧 하나로텔레콤은 새 주인을 맞게 될 전망이다.
지난달 30일 박 사장은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열린 ‘하나TV 론칭 1주년 기념식’에서 “지금의 상황은 과거 어느 때보다 M&A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며 M&A가 성사단계에 와있음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박 사장은 “현재 국내외 10여 군데 이상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절반 이하의 숫자로 추려 2단계 인수협상대상자 선정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M&A설에 유력하게 거론되는 국내 업체들은 소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라며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박 사장이 “M&A가 목전에 있다”면서도 “소문은 소문일 뿐”이라는 상반된 얘기를 꺼낸 속사정은 이렇다.
하나로텔레콤은 현재 골드만삭스가 매각 주간사로 M&A를 진행 중이며 지금까지 11개사가 하나로텔레콤 인수 의사를 비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인수전 참여를 공식화한 곳은 온세통신 한 곳뿐이다. 온세통신 지분 100%를 보유한 유비스타는 전날 온세통신이 골드만삭스에 하나로텔레콤 인수 의향서를 제출했다고 발표했다.
씨티그룹 계열의 씨티벤처캐피털(CVC), 미국 이동통신사 AT&T, 싱가포르의 싱텔 등이 하나로텔레콤 인수전 참여 업체로 거론되고 있지만 한 곳도 이를 확인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싱텔의 경우는 “하나로텔레콤 인수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밝혀 인수보다는 정보수집에 더 관심이 있다는 속내를 드러냈었다.
이에 관해 하나로텔레콤 측도 “대주주 및 골드만삭스로부터 어떠한 통보도 받지 못해 우리도 인수전에 어떤 업체들이 참여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더욱이 SK텔레콤이나 LG그룹 등은 하나로텔레콤 인수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수차례 얘기했음에도 일부에서는 “끝까지 가봐야 안다”며 아직까지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인수 의향서를 제출한 업체 중 5곳 정도를 추려 인수협상 대상자로 정하고 이후 실사를 거쳐 9월 안에 우선 협상 대상자를 발표할 계획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골드만삭스와 하나로텔레콤의 대주주인 뉴브리지 컨소시엄의 생각대로 매각작업이 이뤄질 수 있느냐다. ‘하나로TV’의 성공 등에 힘입어 하나로텔레콤은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최고 매출액을 경신하는 등 실적이 좋아지고 있다.
하나로텔레콤은 2분기 매출액이 4600억 원대에 달하고 영업이익도 200억 원대에 육박하는 등 돈버는 구조로 변신 중이다. 상반기 유선전화 번호이동시장이 꾸준히 늘고 하나TV 가입자가 손익분기점 기준치인 50만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상반기 중에 KT에서 하나로텔레콤으로 전환한 유선전화 가입자는 22만에 달하는데, 이는 지난해 동기 대비 두 배에 달하는 규모다. 6월 말 현재 하나로텔레콤 유선전화 가입자는 188만 수준으로 이런 증가세라면 연말쯤에는 200만 고지를 넘어설 전망이다.
여기에다 최근 들어 많이 내리긴 했지만 증시호황을 맞아 하나로텔레콤의 주가도 지난해 이맘 때보다 40%가까이 상승해 있는 상태다.
하지만 최근의 경영 호조가 매각에는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이 많아지고 있다. 하나로텔레콤의 대주주인 뉴브리지 컨소시엄이 보유한 지분 39.4%(9140만 6249주)은 약 8000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더해 뉴브리지 컨소시엄 측이 희망하는 매각 가격은 1조 원 이상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최대 1조4000억 원대까지 희망하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인수전 참여 업체들이 생각하는 인수 가격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하나로텔레콤 인수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업체들은 ‘하나로텔레콤의 몸값이 너무 비싸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LG그룹의 한 관계자도 “현재로서는 실제 기업가치보다 몸값이 너무 비싸졌다고 본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이들의 입장은 한마디로 ‘아니면 말고’다. 하나TV라는 VOD서비스도 KT나 유선방송케이블 업체에서도 시작 준비를 끝냈기에 하나로텔레콤만의 변별점으로 볼 수 없을 뿐더러 초고속 통신서비스 시장에서 하나로의 존재감도 KT 앞에서는 미미하다는 것.
골드만삭스 측의 독특한 매각 조건도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하나로텔레콤 인수에 관심 있는 기업들에게 실사도 하기 전에 인수의향가격부터 먼저 써내도록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골드만삭스 측은 나중에 실사가 끝난 뒤 써낼 최종 가격은 인수의향가에서 일정 비율 이상 깎지 못하도록 하는 ‘묘안’을 짜낸 것으로 전해진다. 매각가격을 최대한 높이려는 전략인 셈이다.
결국 높은 가격에 매각하려는 하나로텔레콤 대주주와 이보다 싼 가격에 사들이려는 후보 기업들의 신경전이 불가피해 보인다.
여기에 하나로텔레콤의 노조 반발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나로텔레콤 노조는 인력 구조조정 등을 우려해 매각에 크게 반대하고 있어 매각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이와 관련한 진통도 예상된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변수는 정부의 입장이다. 전기통신사업법이 개정돼 8월 4일부터는 기간통신사업자를 인수할 경우 정보통신부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통신업계에서는 정통부의 기본 입장을 시장 참여자를 늘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과장을 섞어 말하면 현재 정통부는 유선의 KT와 무선의 SKT, 두 업체만 거느리고 정부의 한 부서 노릇을 하고 있다. 그래서 정통부에겐 하나로텔레콤이나 LG그룹의 통신사업군, 유선방송의 통신서비스 등이 고마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정통부는 어떻게 해서든 이런 제 3의 통신사업자를 더 키워 복수 경쟁이 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돈많은 SKT가 성큼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하겠다고 덤비지 못하는 이유에는 이런 배경도 있는 셈이다. 하나로텔레콤 인수전 결과가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