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때문에’ VS ‘효도한 것’
![]() |
||
LG전자가 7월 19일 공시한 내역에 따르면 LG전자가 소유하고 있는 서울 가산동 공장 부지 1만 4946㎡(4529평)를 그룹 지주회사인 (주)LG에 9월 21일자로 넘긴다고 한다. 거래 금액은 총 505억 원으로 3.3㎡(1평) 당 가격 1115만 원에 해당한다.
LG전자는 공장 부지 매각 사유를 ‘자산운용 효율성 제고 및 재무건전성 개선’이라 공시했다. 현금 조달을 위해 그룹 지주회사에 땅을 판다는 것이다.
LG전자 측은 “가산동 부지는 단말기연구소 용도였는데 공장이 평택으로 옮겨가고 연구인력은 새 연구동으로 들어가 해당 부지를 놀리게 돼 처분한 것”이라 밝혔다. 부동산 값 상승 등을 고려해 더 갖고 있을까 고민도 했지만 당장 처분해서 이윤을 남기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는 것이다.
LG전자가 안 쓰게 된 공장 부지를 팔아넘겨 현금 유동성 강화에 활용했다고 보면 별 일 아닌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매각 대상이 모 기업인 (주)LG라는 점은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대목이다. 올해 들어 LG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LG전자의 영업실적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점 또한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LG전자는 지난해 23조 원 매출에 2127억 원 순이익을 거둬 순이익률 1%대에 불과한 실적을 남겼다. 주력인 가전분야는 성공을 거뒀지만 PDP나 휴대폰 등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렇다보니 모 기업인 (주)LG가 나서 LG전자의 현금 보유고를 불리려는 게 아니냐는 식으로 보는 시선이 없지 않다.
LG전자가 그동안 스스로 공시한 내용들만 봐도 LG전자의 상황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LG전자는 지난 5월 18일 공시를 통해 ‘PDP모듈 A1라인의 생산을 상반기 중 중단할 예정’이라 밝힌 바 있다. 사실상 PDP분야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 작업에 들어갔음을 밝힌 셈이다. LG전자가 영국소재 현지법인인 LGEWA를 통해 보유하고 있는 LG필립스 디스플레이 지분을 처분한다는 소문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LG전자는 7월 31일 공시를 통해 ‘LG필립스 디스플레이 출자지분은 법적보호절차 진행결과에 따라 처리될 예정’이라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LG전자 측은 “6개월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하는 공시로 6개월 전과 크게 달라진 상황은 없다”고 밝혔지만 LG전자의 출자지분 매각 논의를 바라보는 업계 호사가들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생산라인 중단과 출자지분 매각은 비용 절감과 현금 유동성 강화를 위한 절차로 볼 수 있다. 이렇다 보니 LG전자의 부동산 매각은 살림살이가 약해진 LG전자의 실탄 보유고 강화를 위한 포석으로 풀이되는 것이다. LG전자의 현금 보유고가 넉넉했다면 부동산 값 상승 바람을 고려해 해당 부지를 좀 더 갖고 있다가 제3자에게 고가에 팔아넘길 수도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다.
LG전자가 부동산 매각을 통해 현금 유동성 강화를 도모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일이 지난해에도 있었다. LG전자가 구인회 그룹 창업주와 2대 회장인 구자경 명예회장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서울 성북동 소재 연곡원을 매각했던 것이다. LG가 사내 행사나 외국인 대상 영빈관 용도로 사용해온 연곡원은 성북동 일대에서 ‘구인회 회장 댁’이라 알려졌을 정도로 LG 총수일가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곳이다. 그런데 LG전자 명의로 돼 있던 이 건물이 제3자에게 팔리자 일각에선 ‘LG전자의 영업실적 부진이 결국 LG 총수일가의 추억이 깃든 연곡원 매각으로까지 이어졌다’는 험한(?) 이야기마저 나오게 됐다. 정확한 매각가는 알려지지 않지만 성북동 일대에선 연곡원 건물의 가치를 수십 억 원~100억 원 정도로 보고 있다.
LG전자 가산동 공장부지 매각을 LG전자가 아닌 (주)LG 입장에서 해석하려는 시각도 있다. ‘LG전자가 왜 그 땅을 팔았나’란 명제보다 ‘(주)LG가 왜 LG전자가 놀리는 땅을 505억 원을 주고 사들였나’란 의문에 더 주목하는 것이다.
업계 인사들과 가산동 인근 부동산 업자들은 LG가 해당 부지를 통해 어떤 종류의 부동산업(?)을 할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인근 부동산 업자들에 따르면 최근 가산동 LG전자 공장부지의 3분의 1 규모인 한 공장 주인이 건물을 세놓으면서 임대료를 보증금 6000만 원에 월세 600만 원으로 책정했다고 한다. 가산동 LG전자 부지 면적을 감안하고 공장 면적이 커질수록 임대료가 몇 배 이상 더 뛴다는 부동산 업자들 이야기를 종합하면 (주)LG는 해당 부지 임대 사업을 통해 매년 족히 10억 원 정도는 벌어들일 전망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가산동 일대에 쇼핑몰들이 대거 들어선 것을 볼 때 LG가 해당 부지를 재개발 사업에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해당 부지는 현재 공장용지로 등재돼 있으므로 (주)LG가 이 부지를 다른 용도로 활용하려면 별도의 허가를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물론 가산동 일대가 디지털 단지로 탈바꿈하면서 업무용 시설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엄청난 개발차익을 기대할 수도 있다. 직접 개발을 안한다고 해도 수 년 내에 이 땅을 제3자에게 팔아넘긴다면 LG전자에 지불한 505억 원 회수는 물론 엄청난 차익을 누릴 수도 있다.
지난해 재계 서열 3위 자리를 SK에 넘겨준 LG 구본무 회장은 최근 그룹의 신성장동력 발굴을 강조해 왔다. 505억 원이란 돈은 매출규모나 자산규모로 볼 때 LG전자나 (주)LG나 당장 큰돈은 아니다. LG전자가 그렇게 사정이 급했던 것인지 아니면 (주)LG가 새로운 수익원 개발차원에서 제2의 테헤란밸리로 불리는 가산디지털단지에 대규모 부동산 개발을 추진하는 것인지 주목받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