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담아 화창하고 씩씩한 우리 민족의 합창 노래
선소리산타령이란 여러 명의 소리꾼들이 늘어서서 가벼운 몸짓과 함께 소고를 치며 산천경개를 함께 노래하는 민속가요를 가리킨다. 노래패의 우두머리인 모갑이가 장구를 메고 앞소리를 부르면, 나머지 소리꾼들은 소고를 치면서 여러 가지 발림(손짓, 발짓을 섞은 동작)을 곁들여 뒷소리를 받는다. 산타령의 노래는 느리게 시작하여 뒤로 갈수록 점차 빨라지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날의 선소리산타령은 남자들이 부르는 노래로 되어 있으나 그 근원은 여자들이 부르는 사당패 소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선 초에 스님들과 불교를 믿는 사람들에 의해 구성된 사당패는 판염불 합창으로 시주를 받아 절에 바치곤 했는데, 이러한 판염불 합창에서 산타령이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시대에 불교의 쇠퇴와 더불어 여성 중심의 사당패는 쇠락해서 남사당(男寺黨)으로 바뀌었으며, 판염불은 소리꾼들에 의해 계승되어 선소리타령으로 발전하였다. 조선 철종, 고종 때의 문신이자 판소리연구가인 신재효의 ‘박타령’ 등에는 사당패들이 나와서 산타령을 부르는 대목이 포함돼 있기도 하다. 선소리산타령은 사당패의 음악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전통음악 가운데 가장 화창하고 씩씩한 느낌을 주는 우리 음악으로 평가된다.
선소리산타령은 서도 소리꾼들에 의하여 발전된 서도선소리타령과 경기 소리꾼들에 의하여 발전된 경기선소리타령으로 나누어진다. 경기선소리산타령이 서울근교의 산천을 묘사하고 뒷소리꾼들이 소고를 치는 데 비해, 서도 선소리산타령은 평양의 경치를 노래하고 소리꾼들이 손수건을 들고서 발림하며 비교적 빠른 박자로 경쾌하게 진행된다.

뒤이은 ‘앞산타령’은 서울에 있는 산 등을 주제로 한 노래로, 일정한 장단이 없고 고음을 많이 쓰는 게 특징이다. ‘뒷산타령’은 ‘중거리’라고도 불리는데, 리듬과 음역은 앞산타령과 같으나 곡 흐름이 조금 빠르다. ‘앞산타령’에 비해 낮은 음역에서 부르는 선율이 많기 때문에 비교적 부드럽게 들린다.
끝을 장식하는 ‘자진산타령’은 “청산의 저 노송은 너는 어이 누웠느냐…”라는 사설로 시작된다. 처음은 느리게 부르다가 빠르고 경쾌한 장단으로 바뀐다. 과거에는 “도라지 병풍 여닫이 속에…”라는 사설로도 시작되어 일명 ‘도라지타령’으로 불리기도 했다. 예전에는 ‘자진산타령’에 이어서 선소리를 마감하는 노래로 ‘개구리타령’을 불렀다고 하지만, 현재는 산타령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선소리산타령은 ‘놀량’에서 시작하여 ‘앞산타령’을 거쳐 ‘뒷산타령’에 이르기까지 장단은 점점 빨라지며 ‘자진산타령’에 이르러 정점에 도달한다. 산타령에 맞추어 소고를 치며 춤추는 발림춤도 느린 ‘놀량’에서보다는 빠른 ‘뒷산타령’과 ‘자진산타령’에서 더욱 흥이 나게 마련이다.

일제강점기 때 권번의 예인 등을 통해 맥이 이어지던 선소리산타령은 광복 뒤 한국전쟁을 거치며 침체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나 선소리 명창인 이창배 선생이 음악적 체계를 잡고 후학 양성에 나서면서 선소리산타령은 새로운 발전의 계기를 맞게 됐다.
1968년 선소리산타령이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이창배 정득만 김순태 유개동 김태봉 선생 등 5명이 초대 예능보유자로 활동하였고, 그 뒤를 이어 최창남, 황용주 선생이 선소리산타령 예능보유자로서 전승 활동에 힘써왔다. 현재 선소리산타령 예능보유자는 공석으로, 4인의 전승교육사와 (사)선소리산타령보존회를 중심으로 전수 및 전통 공연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자료 협조=국가유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