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풀린 심판은 누가 심판할꼬~
▲ 남녀 프로농구가 심판의 욕설 의혹으로 시끄럽다. 유도훈 전자랜드 감독이 심판에 항의하는 모습. 사진제공=KBL |
남녀 프로농구가 ‘욕설 파문’으로 시끄럽다. 공교롭게 모두 심판이 연루됐다. 여자 프로농구는 감독과 심판, 남자 프로농구는 선수와 심판이 “욕설을 했다”는 것으로 진실공방을 벌였다. 문제는 욕설을 한 주체가 코트의 ‘포청천’으로 불리는 심판이라는 점이다. 이번 사태는 프로스포츠에서 일어날 수 없는 촌극이다.
# 심판이 욕설을?
심판이 감독과 선수에게 욕설을 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 남녀 프로농구에서 각각 발생했다. 그러나 징계의 무게는 심판이 아닌 감독에게 더 실렸다.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을 지울 수 없는 연맹의 처사다.
남자 프로농구는 지난해 12월 29일 창원 LG와 안양 KGC인삼공사 경기에서 나왔다. 윤호영 심판이 KGC 선수를 향해 욕설을 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LG와 KGC의 볼 다툼 과정에서 윤 심판이 LG의 볼을 선언하자 KGC 선수들이 판정에 항의를 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이상범 KGC 감독은 “심판이 선수에게 ‘야, 이 XX야’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KGC 구단 관계자들은 물론 욕설을 직접 들은 선수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그러나 한국농구연맹(KBL) 심판부는 “해당 심판에게 확인한 결과 욕설을 한 일이 없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며 항변한 뒤 입을 닫았다. KBL은 사건 발생 다음날인 30일 재정위원회를 열고 논란을 일단락지었다. KBL은 “경기 영상 및 서면 자료, 관계자 진술 등을 세부적으로 검토했지만, 욕설을 했다는 객관적 증거가 없어 이를 규명할 수 없다. 명확한 증거가 나온다면 재심의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상범 감독은 그날 경기서 테크니컬 파울에 의한 퇴장으로 40만 원의 징계를 받았고, 해당 심판은 공식적인 징계 조치가 없었다.
KGC는 억울한 상태다. KBL이 ‘증거 없음’ 판결을 내리면서 졸지에 거짓말쟁이로 몰렸다. KGC는 “KBL이 진실 규명 노력 없이 사건을 덮으려 해 명예가 크게 실추당했다”며 진상 재조사를 요구하고 나선 상태다. 타 구단 코칭스태프나 관계자들도 KGC 편들기에 나섰다. 한 구단 감독은 “심판이 욕설을 하지 않았는데 이상범 감독이나 선수들이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겠느냐? 욕설을 한 것은 사실일 것”이라고 말했고, 또 다른 구단 관계자는 “KBL이 입막음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여자 프로농구에서는 일주일 전인 12월 23일 용인 삼성생명과 안산 신한은행 경기에서 터져 나왔다. 더 심각했다. 당시 부심을 맡았던 김혁태 심판이 경기 후 임달식 신한은행 감독에게 욕설을 한 것. 몸싸움으로 번질 뻔한 최악의 사태였다. 경기 후 임 감독이 “너 때문에 졌다”며 항의를 하자 김 심판이 “XX, X 같아서 심판 못 해먹겠네”라고 입에 담지 못할 거친 말을 내뱉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의 재정위원회에서 나온 유권해석이 황당하다. 사건의 발단을 제공한 것이 감독에게 있고, 심판은 혼잣말에 가까운 말이었다는 것. 임 감독은 1경기 출전 정지와 100만 원 중징계를 받았고, 김 심판은 1경기 출전 정지에 견책 조치를 받았다. 욕설을 한 사람보다 욕을 먹은 사람이 더 무거운 징계를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여자프로농구 역시 솜방망이 처벌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 구단 관계자는 “심판이 감독에게 욕을 해도 고작 1경기 출전 정지만 당하는 농구판”이라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 심판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
프로농구의 심판 관련 논란은 매 시즌 반복되는 현상이다. 이번 ‘욕설 파문’은 프로농구 출범 이후 나오지 않았던 초유의 사태다. 하지만 뿌리는 같다. 오심 논란에서부터 시작된다. 구단 및 감독, 선수들과 심판의 불신 때문이다. ‘심판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를 할 수 있다’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심판 자격이 없다’는 논리가 맞선다. 구단과 심판 모두 억울하긴 마찬가지다.
구단과 심판 사이에는 불편한 ‘피해 의식’이 존재한다. 남자프로농구 현역 A 감독은 “심판들의 판정에 형평성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명확한 기준이 없다. 같은 상황을 놓고도 어쩔 땐 파울이고 또 어쩔 땐 파울이 아니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반면 심판들은 “보는 각도에 따라 판정은 달라질 수 있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오심을 최대한 줄이려고 하는 것이 심판의 의무다. 누구의 편을 들어 판정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항변한다.
이번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충격적인 발언도 들을 수 있었다. 남자프로농구 모 구단 단장은 “심판 판정에 대해 강하게 항의를 하기 겁난다. 혹시라도 나중에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경기는 심판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털어놨다. 약자는 결국 구단이라는 말이다. KGC의 ‘욕설 파문’과 관련해 확실한 증인이 될 수 있는 창원 LG의 증언이 나오지 않는 이유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제3자인 LG가 굳이 남의 싸움에 끼어서 심판의 욕설 사실을 인정할 경우 불똥이 튈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는 걸까. 사실 정답은 나와 있다. 정확한 판정을 통해 신뢰를 쌓는 일이다. 하지만 모든 스포츠 종목을 막론하고 오심이 제로가 될 확률은 지극히 낮다. 심판은 자질을 키우고 구단은 심판 판정에 일희일비하며 흥분하기보다는 경기에 집중해야 한다. 서로에 대한 이해 범주를 넓히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심판 문제의 해결 방안에 대해 묻자 프로팀 B 감독은 “다른 방법이 뭐가 있겠나? 심판이 휘슬을 잘 불면 된다”고 답했다.
서민교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