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세계화 위해 ‘부업’ 손댔다
▲ 2012 삼성화재배에서 구리 9단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이세돌 9단이 우승 트로피에 키스하고 있다. |
상금 랭킹 2위는 백홍석 9단. 제4회 BC카드배 우승 3억 원, 제24회 TV바둑 아시아선수권전 우승 2500만 원, 제40기 명인전 결승5번기에서 이세돌을 상대로 2연승 후 3연패로 준우승 2400만 원, 제30기 KBS바둑왕전 준우승 600만 원 등 4억 6000만 원을 벌었다. 1등과는 차이가 있지만, 백홍석이 상금 랭킹 10위권에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들어오자마자 2등을 꿰찼다. 2012년은 이세돌의 해이면서 백홍석의 해였다.
이세돌 백홍석 다음으로는 최철한 9단이 4억 400만 원으로 백홍석에 근접했고, 박정환 9단이 2억 6000만 원, 이창호 9단이 2억 700만 원, 김지석 8단이 2억 원, 강동윤 9단이 1억 8000만 원, 조한승 9단이 1억 4000만 원, 윤준상 9단이 1억 2200만 원으로 뒤를 이었고, 박영훈 9단이 1억 2100만 원, 윤 9단과 50만 원 차이로 10위에 턱걸이했다.
최철한은 지난달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2012 스포츠어코드 세계 마인드 게임즈’ 개인전과 페어전에서 우승, 상금으로 11만 2000달러(한화 약 1억 1900만원)를 받은 것이 컸고, 박정환은 오는 3월 잉창치배 결승에서 이긴다면 4억 원을 벌게 되니 2013 상금 랭킹에는 큰 변수다.
10등까지는 그래도 1억이 넘어 남부럽지 않다 하겠지만, 10위 밖은 격차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국료를 없앤 상금제에 의해 부익부빈익빈이 더 심해진 느낌이 있는데, 실력 사회라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거꾸로 상금제의 기본 개념을 좀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승에 몰아주는 것이 아니라 좀 잘게 나누는 식으로 말이다.
이세돌의 화제는 몇 가지가 더 있다. 가까운 장래는 아니지만, 언제가 바둑을 갖고 미국에 들어가는 것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 이 9단은 지난해 부인과 일곱 살된 딸을 캐나다로 보냈는데, 방향이 정해지면 미국에 거처를 마련해 합류한다는 것. 미국 시장, 좋은 생각이다. 본란에서도 몇 번 거론했지만, 바둑도 일단 미국 시장에 들어가 정착하면, 정착하는 순간 볼륨이 100배는 커질 것으로 전망들을 하고 있다. 100배는 지금 몇 억에서 몇 백억이니 메이저리그다.
이 9단은 삼성화재배에서 우승하고 돌아와 지난달 21일 한국기원 근처 등심집에서 바둑 관계자들에게 저녁을 한턱냈다. 40여 명이 모였는데, 이 9단은 식탁을 빠짐없이 순회하며 술잔을 주고받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고구단닷컴을 잘 부탁한다”면서 웃었다. 고구단닷컴은 ‘go9dan.com’, 이 9단이 개인적으로 만들고 있는 바둑사이트다. 9단을 향해 가자는 뜻도 되고, go는 일본에서는 바둑(碁의 일본식 발음)이며 중국에서는 ‘高’란다. 중국에서 高를 고라고 읽어주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바둑 세계화에 뛰어들 것임을 말해 주는 대목이다. 현재 시험운영 중이다. 잘 알아서 하겠지만, 바둑 사이트, 만만치 않을 것이다. 사업은 바둑 승부가 아니다. 아무쪼록 신중하게 갈 것을 부탁한다.
▲ 이세돌 9단과 최철한 9단의 대국 모습. |
그날 이 9단은 기분이 좋았다. 반집, 반집, 한집으로 3억 원을 벌었으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흔치 않은 기회, 사람들이 이 9단에게 물었다.
― 큰 승부를 앞두고는 어떻게 컨디션 조절을 하느냐? 공부를 하느냐? 이 9단의 답은 간단명료했다.
▲ 마인드컨트롤이 전부다. 그게 처음이고 마지막이다.
― 긴장되거나 하지 않나?
▲ 왜 안 되겠나? 그래서 이번 삼성화재배 결승 때도 호텔 방에서 혼자 맥주를 마셨다. 딱 두 캔.
― 중국이 한국을 따라잡은 것은 공동연구의 힘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 공동연구? 글쎄…별로 아닌가? 각자 생각이 다른데…^^”
― 담배는?
▲ 술은 많이 마시면 머리 아프지만, 앞으로도 마실 것 같지만, 담배는, 나쁘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연말에 끊을 생각이다.
연말이 지나고 새해가 되었는데, 과연 끊었을까. 끊었을 것이다. 이 9단도 이제 서른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예전의 까칠남이 아니다. 자리가 끝나가자 흐트러진 모습으로 2차 가야 된다고 먼저 나선 사람이 이 9단이었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