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에서 ‘1000억’ 제 2 비전 무럭무럭
▲ 삼성생명이 소유하고 있는 안성 일대 부지. 위 사진은 2001년 장묘사업을 추진하던 당시 전경이고 아래는 잡풀이 많이 자란 최근의 모습이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120만㎡(36만 평)면 삼성그룹이 보유한 테마파크 에버랜드(230만㎡, 70만 평)의 절반이 넘고 서울 여의도공원 면적(22만㎡, 6만 6000평)의 다섯 배가 넘는, 웬만한 대형골프장만 한 면적이다. 현지 부동산 업자들에 따르면 삼성생명이 이 일대 부동산을 사들일 당시 평당 시세는 3만~5만 원 선이었다고 한다. 100억 원가량 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삼성생명은 조건만 얼핏 봐도 제법 투자가치가 높을 것 같은 이 땅을 그냥 놀려왔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 제법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대형 부지가 활용되지 않고 있는 까닭과 이곳이 다시금 주목받는 사연 속으로 들어가 본다.
삼성생명이 안성 일대 토지를 확보했던 것은 장묘사업을 위해서였다. 이 일대에 대규모 납골공원을 조성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삼성 측의 계획이 알려지면서 이 일대 주민들이 격렬한 반대운동을 폈다. 삼성 측이 여러 방법을 통해 민심을 얻으려 했지만 땅값 하락을 우려한 주민들의 결사반대 운동에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결국 지난 2002년 중순께부터 이 일대에서 삼성생명이 만든 장묘사업 관련 안내책자나 현수막은 사라져 볼 수 없게 됐다. 이 동네 곳곳에 서있는 전봇대에 당시 동네 주민이 직접 쓴 것으로 보이는 ‘소각장 반대’라는 구호가 희미하게 남아 당시 분위기를 전할 뿐이다.
이후부터 삼성 측은 이 넓은 땅을 방치한 것으로 보인다. 산 15번지 입구에 가면 볼 수 있는 안내판 두 개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 안내판엔 ‘삼성생명이 창고와 진입도로 조성 허가를 받았다’는 내용 등이 적혀 있으며 허가기간은 2005년 5월까지로 돼 있다. 납골공원 조성을 위해 관청으로부터 도로와 창고 조성 허가를 받아 공사를 진행했지만 주민들 반대에 의한 장묘 사업 무산 이후 이 일대를 전혀 관리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 2001년 4월 당시 <일요신문> 465호가 보도한 현지 모습과 이번에 취재해온 풍경만 비교해 봐도 알 수 있다.
안내판이 우거진 나뭇가지와 잎사귀에 가려질 정도로 삼성생명이 이 일대를 그냥 내버려둔 까닭은 무엇일까. 이 일대 부동산 업자들은 삼성생명 보유 부지를 ‘가만히 둬도 돈 버는 땅’으로 보고 있다. 이곳 주변이 이미 개발 중이거나 대규모 개발을 목전에 두고 있는 까닭에서다.
인근 지역인 안성시 옥산동 석정동 일대 396만㎡(120만 평)는 이미 안성 뉴타운 택지개발 지구로 지정돼 오는 2011년까지 주택 1만 9000여 가구가 들어서고 인구 5만 9000여 명이 들어올 전망이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안성시 공도읍 일대 128만㎡(39만 평) 부지엔 농협중앙회가 오는 2009년까지 3년간 206억 원을 투자해 농축산 테마공원을 조성할 예정이다. 이렇게 주변이 들썩이는 터라 머지않아 삼성생명 보유지 일대도 개발될 것이란 기대감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삼성생명 장묘공원 반대운동의 원인이기도 했다.
다만 삼성생명 보유지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매매가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 걸린다. 현행법 하에선 1년 이상 안성시에 거주해야 이 일대 토지를 살 수 있는 까닭에서다.
그런데 삼성생명이 보유한 땅에 장묘 공원이 아닌 다른 사업을 추진하려 한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일대를 술렁이게 만들고 있다. 안성시청 관계자에 따르면 삼성 측이 얼마 전 산 15번지 일대에 ‘청소년수련원’ 건립 신청서를 냈고 시청이 이를 심사 중이라고 한다. 결과가 나오기까진 수개월이 걸린다는 전언이다. 만약 삼성생명이 수련원 건립 허가를 얻어내면 이 일대 지목이 ‘임야’에서 건축물 건립이 가능한 ‘대지’로 바뀌게 된다. 부동산 업자들은 이럴 경우 토지거래제한 규제 완화를 기대해볼 수도 있다고 한다.
삼성생명이 개발가치가 높은 지역의 수십 만 평 부지를 오랫동안 방치하다보니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추측도 난무하고 있다. 일부 재계와 관계 정보맨들 사이에선 이 땅이 향후 테마파크나 골프장 등으로 활용될 가능성마저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지목 변경과 관청의 허가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청소년수련원 건립이 관청의 허가를 받아 구체화될경우 이 일대 땅값이 가파르게 오를 가능성도 거론된다. 평당 수만 원 정도에 이 일대 토지를 매입한 삼성생명이 조만간 평당 100만 원대 시세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란 다소 때 이른 관측도 대두된다. 못 다 이룬 ‘장묘공원의 꿈’을 치솟는 부동산 시세가 달래주고 있는 셈. 아니, 정보맨들의 섣부른 예측처럼 ‘더 큰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