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친척 모여 ‘황태자’에게 몰아주기
▲ 구본무 LG그룹 회장 | ||
이런 의미에서 최근 구광모 씨가 ㈜LG 지분 187만여 주를 매입한 사실이 재계 인사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주회사 ㈜LG 지분 확보는 곧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력 강화를 뜻한다. 아직 경영 일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않고 있는 구광모 씨를 위한 인프라 구축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구광모 씨의 ㈜LG 지분율이 단기간에 급등하다보니 주식 매입에 사용된 막대한 자금의 출처에 대한 논란도 재계 호사가들 사이에서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아울러 구광모 씨 지분 증가에 발맞춰 일부 총수일가 인사들이 지분율이 축소된 점 또한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대목일 것이다.
구광모 씨는 ㈜LG 지분을 지난 8월 31일 159만여 주, 9월 3일 28만여 주 매입해 지분율을 종전의 2.85%에서 3.95%로 끌어올렸다. 구본무 회장(10.51%)과 구본준 LG상사 부회장(7.58%),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5.01%), 구본식 희성전자 사장(4.46%), 그리고 구본무 회장 부인 김영식 씨(4.30%)에 이은 6대 주주인 점은 여전하나 단숨에 1.1%를 늘린 점이 이채롭다. 양자 입적 시점부터 곧잘 비교돼 온 구본무 회장 장녀 구연경 씨(0.86%)보다는 무려 4.5배 이상 앞서게 된 구광모 씨는 ㈜LG 지분율로만 놓고 보면 같은 항렬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서게 됐다.
구광모 씨가 주식을 매입한 시점인 8월 31일 ㈜LG 주가는 5만 3900원, 9월 3일엔 5만 3500원이었다. 당시 주가를 감안할 때 ㈜LG 지분 187만여 주 사들이는 데 1000억 원가량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한 것일까.
구광모 씨는 지난해 9월 LG전자에 입사해 근무하다가 올 초 미국 유학을 떠난 것으로 알려진다. LG전자에서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은 수개월에 불과했던 셈이다. 특별한 돈벌이가 없었을 것으로 보이는 구광모 씨에게 가장 큰 수입원은 아마도 주식 배당금이었을 것이다. 올 1월 ㈜LG는 1주당 500원씩 현금배당을 실시했다. 당시 490만여 주를 갖고 있던 구광모 씨는 배당액 24억 5000여 만 원을 챙길 수 있었다. LG상사도 올 1월 1주당 500원 현금배당을 했다. 당시 34만여 주를 보유하고 있던 구광모 씨 몫으로 1억 7000여 만 원이 배당됐다. 구광모 씨가 지분 보유를 통해 올해 확보한 현금만 26억 원을 웃도는 셈이다.
지난해에도 구광모 씨는 현금배당을 통해 ㈜LG로부터 24억 1000여 만 원, LG상사로부터 3억여 원을 수령했다. 최근 2년간 주식 배당금 53억여 원을 챙긴 셈이지만 이는 얼마 전 ㈜LG 지분 추가 매집에 들어간 1000억 원의 2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구광모 씨에게 950억 원에 가까운 돈을 충당할 다른 벌이 수단이 있는 게 아니라면 LG 구 씨 일가 차원의 지원 가능성을 그려볼 수 있다.
큰 돈보따리를 휘둘러서인지 반사이익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구광모 씨가 지분을 사들이던 날인 지난 9월 3일 5만 3500원이던 ㈜LG 주가는 9월 18일 현재 5만 4900원을 기록 중이다. 보름 사이 1400원이 올랐다. 이번에 사들인 지분만으로 보름 동안 가만 앉아서 26억 여 원의 평가차익을 올린 셈이다.
구광모 씨 지분이 증가하는 사이에 일어난 총수일가 인사들의 지분 변동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8월 31일과 9월 3일 구광모 씨가 ㈜LG 지분을 사들이는 사이 구자극 엑사이엔씨 회장과 구본천 LG벤처투자 사장, 구본완 LG벤처투자 상무, 구본호 범한판토스 대주주 등이 보유 지분을 내다팔았다. 이들이 이틀간에 걸쳐 처분한 주식은 총 90만여 주다.
지난 5월 말엔 구인회 창업주의 외손녀인 박미나 씨가 보유 지분 전량(38만여 주)을 처분해 ㈜LG 대주주 명부에서 이름을 지웠다. 7월과 8월 사이엔 구자일 일양화학 회장의 장남이자 구인회 창업주의 손자인 구본길 씨가 2만 주를 처분했으며 구인회 창업주 막내딸 구자영 씨도 3000여 주를 매각해 지분율을 떨어뜨렸다. 구광모 씨가 187만여 주를 사들이기 직전 방계 인사들이 130만여 주를 처분했던 것이다. 이렇다 보니 일부 업계 인사들은 구광모 씨 지분을 늘려주기 위한 총수일가 차원의 지분 매각이 이뤄졌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구광모 씨 친아버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LG 지분율 변동도 주목할 만하다. 구광모 씨를 제외한 다른 총수일가 인사들의 ㈜LG 지분율이 그대로이거나 줄어들고 있는 반면 구본능 회장의 지분율은 꾸준히 오르는 까닭에서다. 구본길 구자영 씨 등이 1만 2600주를 장내매도한 7월 9일 구본능 회장은 1만 2600주를 장내매수했으며, 구본길 씨가 ㈜LG 지분 1만 2000주를 매각한 8월 9일에도 구본능 회장은 ㈜LG 지분 1만 2000주를 사들였다. 다른 구 씨 일가 인사들이 내다 판 ㈜LG 주식을 구본능 회장이 고스란히 사들인 셈이다.
구광모 씨를 중심으로 서서히 진행되는 듯한 LG가의 후계구도 작업. 이미 후계구도를 공식화하고 곡절을 겪고 있는 삼성 현대차에 이은 대재벌의 미래라는 점에다 ‘양자구도’까지 맞물려 재계 인사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