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잘한다고 상까지 받아
피해자 장 씨가 임 씨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4년 5월. 대학선배가 자신의 친구라며 임 씨를 소개해준 것. 이때부터 둘은 자주 어울리며 친목을 다졌다. 만난 지 1년이 지난 2005년 6월경 임 씨는 장 씨에게 주식선물거래를 권유했다. 마침 투자할 곳을 물색하던 장 씨는 임 씨의 권유에 선뜻 1억 원을 맡겼다. 경찰에 따르면 이때 임 씨는 “월 6%의 이익을 보장해주고 어떠한 비상사태가 오더라도 회피할 수 있는 안전한 투자”라며 장 씨의 투자를 유도했다고 한다.
한 달 뒤 임 씨는 장 씨에게 이익금이라며 129만 원을 장 씨의 계좌로 보내왔다. 하지만 이것은 장 씨가 준 1억 원에서 빼낸 금액이었다. 허위의 이익금을 지급했던 것. 그것도 모른 채 장 씨는 이듬해 10월까지 총 17억 4000만 원을 임 씨에게 추가로 맡겼다. 투자금액을 늘릴수록 자신에게 돌아오는 수익금은 더 커졌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임 씨는 별도의 차명계좌를 만들어 이용한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장 씨로 하여금 자신의 돈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게 하려는 임 씨의 속셈이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임 씨를 철석같이 믿었던 장 씨는 자신의 계좌로 꾸준히 이익금이 들어오자 수백억 원대의 재력가였던 자신의 부모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 장 씨 부모는 2006년 12월에 15억 원을 임 씨에게 입금시켰다. 이때도 역시 임 씨는 장 씨 부모가 아닌 다른 명의로 된 계좌를 만들어 투자금을 운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장 씨의 부모도 처음엔 매달 이익금을 보내주는 임 씨를 믿었다. 그래서 2007년 3월까지 추가로 80억 원가량을 맡겼다. 장 씨 부모로부터 총 95억 원가량을 받은 임 씨는 이 돈의 대부분이 손실을 입었음에도 많은 이익이 발생했다고 속이며 장 씨 부모에게 이익금을 반복적으로 지급했다. 물론 이 돈은 장 씨 부모가 임 씨에게 맡긴 돈에서 빼낸 것이었다.
임 씨의 행각은 결국 꼬리가 잡히고 말았다. 장 씨의 부모가 임 씨에게 그동안 투자했던 금액을 반환해달라고 요구했던 것. 경찰은 장 씨 부모가 여러 차례 임 씨에게 투자 현황 등에 대해 확인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때마다 임 씨는 어려운 전문용어를 써가며 교묘하게 빠져나갔다고. 또 증권사 간부인 것을 악용해 잔고확인서나 주식거래 매매증명서 등을 허위로 작성해 장 씨 부모에게 주기도 했다고 한다.
돌려주려야 돌려줄 돈이 없었던 임 씨는 결국 장 씨에게 지금 현재 남은 돈이 13억 원뿐이라고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만 믿고 거액의 돈을 투자했던 장 씨 부모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장 씨 부모가 경찰에 진정서를 접수한 것이 바로 이때쯤이었다.
경찰은 지난 5월 계좌 압수수색검증영장을 발부받아 임 씨가 만들어 놓은 차명계좌의 거래상황과 입·출금 내역 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임 씨가 장 씨와 장 씨 부모로부터 받은 돈 113억 원 중 13억 원을 유흥비 및 채무 변제 등의 개인적인 용도로 횡령했고 87억 원은 투자를 하다 손실을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지난 7월부터 7회에 걸쳐 임 씨를 소환해 일부 혐의에 대해 자백을 받았다고 밝혔다.
비록 임 씨는 검거됐지만 아직도 수사는 ‘진행형’이라는 게 경찰 관계자의 말이다. 특히 임 씨가 몇몇 부분에 대해서는 경찰조사를 인정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앞으로의 상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 임 씨에게 적용된 죄목은 횡령, 배임, 일임매매 제한위반(증권거래법상 고객의 유가증권을 매매할 경우 해당고객의 의사를 들어야 함), 허위공시, 부당권유, 문서위조 혐의 등 모두 6개. 이 중 임 씨가 혐의를 인정하고 있는 것은 횡령과 문서위조, 허위공시, 일임매매 제한위반이다.
반면 배임과 부당권유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다. 특히 ‘관리자로서 성실한 의무를 다했느냐’가 핵심인 배임과 관련해 임 씨와 피해자 간에 치열한 공방이 오가고 있다. 피해자들은 임 씨가 처음엔 비교적 안전한 선물투자를 약속했는데도 그것을 어기고 옵션투자를 하다가 손실을 입혔다고 주장하고 있다. 옵션투자는 선물투자에 비해 수수료도 30배나 비쌀 뿐 아니라 그 위험성도 훨씬 높다. 이에 대해 임 씨는 ‘장 씨에게 분명 위험을 경고했다. 최선을 다해 투자했다’며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임 씨는 장 씨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많은 손실을 입힌 것으로 안다”며 더 많은 피해자들이 나올 가능성을 시사했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2년 동안 1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음에도 증권사 내부적으로 전혀 감시·통제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며 회사 측의 책임을 꼬집었다. 경찰에 따르면 임 씨는 회사 측으로부터 오히려 4억 원의 성과금까지 받았다고 한다. 이것은 장 씨와 장 씨 부모가 투자한 금액에서 나온 수수료 16억 원에 대한 것이라고 경찰은 밝혔다. 해당 증권사 측은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내부 감사를 벌여 임 씨를 해임한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이 증권사 관계자는 “해임은 투자손실·횡령 등에 대한 책임이며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