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얏나무 아래서 신발끈 고쳐맨 것뿐?
▲ 현대엘리베이터 2대 주주 독일 쉰들러그룹의 쉰들러 회장 내한 기자회견에서 현정은 현대 회장은 현대상선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고 부인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지난 3월 말 종가 기준 1만 8000원대에 머물던 현대상선 주가는 4월 초 2만 원대, 5월 초 3만 원대를 찍고 급등했다. 주가는 5월 31일 장중 6만 원대까지 올라갔다가 5만 50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이날 증권선물거래소의 ‘현저한 시황변동에 대한 조회공시 요구’에 대해 현대상선은 ‘소액주주 피해가 우려’ 답변을 했고 다음날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금감원의 조사는 이 시기에 거액의 시세차익을 실현한 사람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사실 이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띈 이름은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이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조 부사장과 부친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은 투자자문을 통해 문제의 시기인 4~5월 현대상선 주식에 200억 원가량을 투자, 매매를 통해 20억 원가량의 시세차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조 부사장은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의 셋째 사위이기 때문에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고 불똥은 곧바로 국감장으로 튀었다.
지난 25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감독위원회·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대통합민주신당 김영주 의원은 “현대상선에 대한 미공개정보 이용 주가조작건과 관련해 이명박 후보의 셋째 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이 조사대상에 올라 있다는 설이 있다”며 확인을 요구했다. 답변에 나선 김용덕 금융감독위원장은 “현대상선 주가조작건은 민원을 받아서 조사 중인 사안인 만큼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했다.
사실 증권가에는 금감원이 이번 사건에서 현대그룹과 관련이 있다는 A 씨를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퍼져 있다. A 씨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먼 친척뻘로 현 회장 윗대부터 집안을 도운 인물로 알려진다. A 씨는 또 현대그룹에서 공식 직함은 없지만 임원으로 불리며 그룹 경영에도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전해질 뿐 실체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A 씨는 지난해 9~10월께 현대상선 주가 1만 원대에 상당량을 매수, 3만 원대에 매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와 주소가 같아 배우자로 보이는 B 씨도 비슷한 시기에 매매, 둘이 합쳐 20억 원에 이르는 시세차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시세차익으로 본다면 A 씨보다는 A 씨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건설사 사주 C 씨 일가가 더 큰 이득을 본 것으로 보인다. C 씨의 건설사는 현대그룹 계열사의 하청업체로, 계열사 관련 몇몇 시설물을 시공했다고 한다. C 씨 일가는 A 씨와 비슷한 시기에 십수만 주를 매수, 주가가 꼭짓점에 이른 5만 원대 후반에 매도해 60억 원에 달하는 시세차익을 본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수십억 원씩 시세차익을 누린 사람들 외에 액수는 적지만 이 시기에 주식을 매매한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끄는 사람이 있다. 우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장녀 정지이 현대U&I 전무. 정 정무는 3000주가량을 매매해 1억에 가까운 차익을 남긴 것으로 알려진다. 또 현대그룹 핵심조직의 한 중간간부도 이 시기에 주식을 매매해 수천만 원을 챙긴 것으로 전해지며 또다른 재벌 3세 구 아무개 씨의 이름도 흘러나온다.
현대그룹 측은 “그룹 내부에 연루된 현정은 회장의 친인척은 전혀 없다”면서 “사건에 대해선 어떤 내용도 금감원에서 통보받은 것도 없고 아는 바도 없다”고 밝혔다. 현대그룹의 한 관계자는 “사건과 연루됐다는 A 씨와 C 씨 등 인물들에 대해서는 기자들을 통해 이름을 들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정지이 전무의 매매에 대해서도 “특수관계인이라 공시를 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현정은 회장도 26일 가진 한 기자회견에서 이 문제에 대해 “어처구니가 없다. 누군가 악성루머를 퍼뜨린 것 같다”며 내부자 연루 의혹을 부인했다. 현 회장은 이어 “내 딸(정지이 전무)이 지금 거론되고 있는 인물들과 만난 적도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같은 자리에 있던 이기승 현대그룹 기획총괄본부장(부사장)도 “자체조사를 했지만 실제적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어쨌거나 이번 사건은 대선정국과 맞물리며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게 됐다. 전국민주금융노동조합 현대증권지부는 검찰 고발도 검토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내부 관계자는 물론 외부에서도 주가조작에 관여해 현행법을 위반한 정황이 포착됐다. 철저하게 조사해 위법이 있으면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 사건이 외부로 불거지기 직전 현대상선과 함께 현대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현대증권의 김종웅 회장이 김용덕 금감위원장에 대해 ‘도발적’인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김 회장은 지난 17일 한 포럼에서 김 위원장에게 “큰 정책과 포부를 성공적으로 펼칠 시간이 많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며 정권교체와 금감위원장 교체를 염두에 둔 의미의 발언을 했다. 당시 증권가에는 ‘현대증권과 금감원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것 아니냐’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그리고 일주일 뒤 <한겨레>가 1면에 금감원발로 첫 보도를 하면서 ‘주가조작 의혹’ 파문이 커졌다.
이런 정황 때문에 증권가 일각에서는 ‘김 회장의 발언에 뼈가 있었다’ ‘김 회장 발언에 대해 금감원이 조치를 취한 것이다’라는 말들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