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짓기의 계절’ 금융권 몸달았다
▲ 대주건설이 우선인수협상대상자였던 칸서스파트너스가 아닌 롯데에 대한화재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현재 보험업계에 M&A 작업이 물밑협상 단계를 지나 수면 위로 떠오른 것만도 5개사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보험사에 군침을 흘리고 있는 곳은 자본시장통합법 시대를 맞아 덩치 키우기에 나선 은행들. 국민은행, 우리금융그룹, 기업은행 등 국내 은행권의 보험업 진출이 급물살을 타고 있고 영국 HSBC 등 외국계 은행과 보험사들도 인수전에 가세하고 있다.
M&A 바람은 공식적으로 매각 의사를 밝혔던 대한화재로부터 시작됐다. 대한화재의 대주주인 대주건설이 자금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매각의사를 대외적으로 천명한 것. 대한화재는 원래 칸서스파트너스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으나 협상이 진전을 보이지 못하다 지난달 말 롯데그룹으로의 매각이 사실상 결정됐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롯데 측은 대한화재 최대주주인 대주그룹과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곧 체결한다. 롯데는 대주 측이 보유한 지분 59.35%를 모두 인수하되, 인수 가격은 3500억~4000억 원, 주당 1만 4600~1만 6700원으로 알려졌다. 롯데는 대한화재 인수 후 사명을 롯데손해보험으로 바꿀 것으로 전해졌다.
대주그룹 관계자는 “큰 틀에서의 협상은 마무리 됐고, 세부적인 사항을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아직까지 쟁점이 남아 있어 막판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대한화재가 대주그룹 및 대주건설에 지급 보증한 PF(프로젝트 파이낸싱) 규모가 930억 원 수준”이라며 “롯데가 이를 문제 삼아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한화재는 매각협상과 결렬이 몇 차례 반복되면서 몸값이 4000억 원 수준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이는 대형보험사는 물론 대한화재와 비슷한 규모의 중소형사들까지 덩달아 몸값이 오르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금융그룹은 LIG생명 인수의향서를 제출해 놓고 있다. 미국계 생보사인 뉴욕생명도 LIG생명 인수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독일계 재보험사인 뮌헨리는 다음다이렉트 지분 인수를 위해 정지작업 중이다. 교보악사(AXA)와 미국 ACE화재도 다음다이렉트 인수를 주시하고 있다.
물밑에서 진행 중인 M&A도 많다. 방카슈랑스 확대로 보험사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도 손보사 인수 의사를 밝혔다. 농협과 기업은행도 보험사 인수를 적극 모색하고 있다. 내년 4월부터 보장성보험과 자동차보험 등을 은행창구에서 판매하는 방카슈랑스(은행을 통한 보험판매)가 확대되면 은행은 보험사를 소유하는 게 수수료 누수도 적고 시너지(상승효과) 효과를 내기에 훨씬 유리하다.
영국 HSBC는 하나금융그룹 계열사인 하나생명 지분 49% 인수를 위한 실사작업을 마치고 가격 협상을 진행 중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HSBC와 하나금융그룹 간 거래는 HSBC에 하나생명 지분 일부를 매각하고 외환은행 인수에 하나금융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하는 방안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보험업계의 M&A 바람은 경영권 매각의사가 별로 없어 보이는 다른 회사들까지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게 만들고 있다. 이미 “장기적으로 회사를 키우겠다”고 밝힌 그린화재보험과 제일화재를 비롯, 태광산업이 지분 60%를 가지고 있는 흥국쌍용화재나 대한생명이 최대주주로 있는 한화손해보험도 매각설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런 소문들은 현재 국내은행들이 종합금융그룹으로 변신을 해야 할 처지지만 보험사를 소유한 곳이 많지 않다는 점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은행 자산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내 금융지주회사와 주요 은행 중 보험사를 보유하고 있는 곳은 신한금융, 하나금융뿐이다. 이 때문에 덩치를 키우기 위해 추가 M&A에 나설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다. 또 보험업에 대한 진입장벽을 풀겠다는 정부와 감독 당국의 입장도 보험사 M&A를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소문들은 보험사들의 주가 급등으로도 이어졌다. 특히 지난 10월 18일에는 증권시장에 상장된 11개 보험사들 중 무려 여덟 종목이 상한가까지 치솟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김철범 한국운용 리서치 헤드도 “증권가 생활 10년 동안 이런 날은 처음”이라며 “펀더멘털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무더기 상한가가 나오는 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 연달아 터져 나온 보험업계의 M&A 협상이 말 그대로 협상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많다. 대한화재 매각 건처럼 가격협상에서 시각차를 드러내거나 다음다이렉트자동차보험처럼 마땅한 원매자가 없어 협상이 지지부진한 것.
다음다이렉트자동차보험은 독일의 뮌헨리로부터 실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업계에서는 뮌헨리가 재보험을 주력으로 하는 만큼 자동차보험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이 낮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프랑스 악사(AXA)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악사가 교보악사자동차보험의 증자를 결정한 만큼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인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회사의 M&A는 쉽게 성사되기 힘들다”며 “과거 대한생명이나 SK생명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여러 번 원매자가 바뀐 후에야 결실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