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업계 비롯 의약품·레저·의류 업계까지 영향…“약물 효과 장기적 유지 여부 알 수 없어” 회의론도
최근 ‘워싱턴포스트’는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비만치료제 열풍으로 소비시장 전반에 걸쳐 서서히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비만치료제는 오젬픽, 위고비, 마운자로 등이 있다. 모두 기본적으로 식욕을 억제하기 때문에 식습관 변화를 유도하는 것은 물론이요, 이에 따라 전반적인 소비 습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따라 식품 업계를 비롯해 의약품 업계, 레저 업계, 의류 업계 등도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패스트푸드 업계는 소비자들의 달라진 소비 패턴에 따라 고단백 혹은 고식이섬유 제품을 출시하거나, 양을 확 줄인 한입 크기 메뉴를 개발하고 있다. 비만치료제 열풍이 촉발한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비즈니스 기회로 삼으려는 업계의 고군분투를 살펴본다.

이런 변화가 소비 패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당연한 일. 이미 일부 기업들은 건강식품 브랜드를 인수하거나, 호텔 피트니스 시설을 보수하거나, 신메뉴를 개발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무엇보다 가장 뚜렷한 변화는 식품업계에서 나타나고 있다. GLP-1(식욕을 억제하고 포만감을 증가시키는 호르몬) 계열 약물 사용자들이 기름지거나, 달거나, 짠 음식 대신 건강한 음식을 찾는 경향이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모건스탠리는 미국에서 탄산음료, 베이커리 제품, 짭짤한 스낵류 소비가 2035년까지 최대 3%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 GLP-1 사용자들은 감자칩 대신 당근이나 키위 같은 신선 식품을 더 많이 소비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시장조사 전문업체인 닐슨아이큐(NIQ)에 따르면 지난 13주 동안 비만치료제 사용자들의 신선 과일 지출은 전년 대비 14%, 채소 지출은 38% 증가했다.
이는 식품 업계에는 분명 타격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기업은 발 빠르게 건강식품 브랜드를 인수하거나 근육량 유지에 도움이 되는 고단백 식품, 포만감을 오래 유지시키는 제품, 식이섬유나 항산화물질을 첨가한 제품, 신진대사를 촉진하는 식품, 빠르지만 건강한 냉동식품을 새롭게 출시하면서 대응하고 있다. 심지어 ‘비만치료제의 부작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홍보하는 제품도 출시됐다.

가령 미국 ‘스타벅스’는 건강을 의식하는 소비자들을 겨냥해 새로운 라인업, 즉 단백질이 함유된 커피를 출시했는가 하면, 프랑스 식품기업인 ‘다농’은 미국 시장에 ‘오이코스 퓨전’이라는 신제품을 출시했다. 이 요거트는 GLP-1 사용자들을 직접 겨냥한 첫 제품으로, 근육 유지와 소화 건강을 돕도록 설계됐으며, GLP-1 사용자들이 겪는 독특한 영양 문제를 포함해 체중 감량 여정을 걷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설계된 제품이다. 또한 같은 이유에서 프랑스의 미니 ‘베이비벨’ 치즈 역시 미국에서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
스위스의 대표적인 식품 기업인 ‘네슬레’도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비만치료제를 기업의 새로운 위협으로 인식해서 선보인 즉석식품 브랜드 ‘바이탈 퍼수트’가 대표적이다. 단백질 등 영양을 강화한 피자와 파스타에 대해 ‘네슬레’는 “비만치료제 사용자의 근손실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GLP-1이 만성 변비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섬유질이 풍부한 식사를 제안한다”고 홍보했다.

패스트푸드 업계에도 비상이 걸렸긴 마찬가지다. 데이터 회사 ‘뉴머레이터’와 코넬대 공동 연구에 따르면 비만치료제를 복용하고 6개월 동안 사용자들의 외식비용은 8.6% 줄었다. 외식 대신 집에서 요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는 의미다. 설령 패스트푸드점을 방문해도 피자나 버거 대신 가든 샐러드나 치킨 메뉴를 선택한다.
이에 따라 ‘맥도날드’의 경우, 올해 1분기 미국 내 매출은 3.6% 감소했으며, 이는 2021~2023년 3년 연속 10% 이상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한 후 나타난 하락세였다. 특히 비만치료제가 인기를 끌면서 부유층 소비자들 사이에서 ‘맥도날드’ 버거와 감자튀김을 외면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다. 이에 도넬란은 “이제 그들의 전략은 부유한 소비자들보다 비만치료제를 구입할 여력이 없는 저소득층으로부터 더 많은 매출을 창출하는 전략으로 선회했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식품 업계들이 값비싼 비만치료제를 감당할 수 없는 이들에게 더욱 집중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의미다.
아예 양을 줄인 신메뉴를 출시하는 곳도 있다. 뉴욕에서 네 곳의 매장을 운영하는 ‘클린턴홀’의 메뉴에는 최근 새로운 음식이 하나 추가됐다. 이름하여 ‘티니-위니 미니 밀’이다. 주먹보다 작은 한입 크기의 미니 버거로, 여기에는 사이드로 감자튀김 5~7개가 함께 제공된다. 이는 비만치료제 사용자를 겨냥해 새롭게 개발한 메뉴로, 기존 메뉴인 모차렐라 스틱, 산더미 나초, 베이컨과 어니언링을 얹은 기름진 버거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이에 대해 ‘클린턴홀’ 측은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한두 입 베어 물고 남기기 시작했다. 정말 최악이었다. 첫째, 음식 낭비가 심했고 둘째, 그런 손님을 만족시킬 대안 메뉴가 없었다. 그래서 이런 메뉴를 개발했다”라고 토로했다.

주류 시장의 변화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GLP-1은 과음하는 사람들의 알코올 욕구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NIQ에 따르면, GLP-1 사용자의 알코올 관련 지출 비용은 약물 복용 후 14.5% 감소한 반면, 놀랍게도 무알코올 맥주 구매는 935% 급증했다. 또한 고단백 음료나 장 건강 개선에 도움이 되는 프로바이오틱 음료 시장도 큰 폭으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약국의 경우에는 앞으로 영양보충제나 비타민이 풍부한 뷰티 제품의 판매가 급증할 수 있다. 대부분의 비만치료제들이 소화불량, 메스꺼움, 탈모, 근손실 등의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여행 및 레저업계는 어떨까. ‘워싱턴포스트’는 활력이 늘고 자신감이 높아진 GLP-1 사용자들이 외부 활동에 더 많은 투자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가 궁극적으로는 극장, 스포츠 경기, 콘서트, 놀이공원 등 엔터테인먼트 소비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살을 뺀 사용자들이 비행기 여행을 더 편안하게 느끼고, 걷기와 하이킹이 중심이 되는 여행을 즐겨 하면서 웰니스 관광 산업이 호황을 맞을 수 있다. 이에 PwC는 건강에 중점을 둔 휴가 패키지와 피트니스 편의시설을 앞세워 마케팅하라고 조언한다. 비만치료제로 체중을 감량한 사람들은 수영장이나 해변에 앉아만 있는 여행보다는 보다 활동적인 휴가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카지노 업계는 도박 충동이 줄어들어 매출이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

영국의 글로벌 트렌드 리서치 회사인 ‘민텔’의 식음료 연구 부국장인 릭 밀러는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극적이고 광범위한 충격이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면서 “이 약물들이 장기적으로 효과가 유지될지, 아니면 이전의 체중 감량 약물들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효과가 점차 사라질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점, 그리고 높은 가격 역시 체중 관리가 절실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이런 회의론에 대해 피크테 자산운용의 펀드매니저인 모리츠 둘링거는 “일부 사람들이 과소평가하는 사실은 10년 후면 첫 번째 GLP-1 약물들의 특허가 만료된다는 사실이다”라면서 “그때가 되면 복제약 제조사들이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약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가격 논쟁은 크게 줄어들 것이고, 약물을 잘 견디는 사람들은 계속 복용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는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게 자명하다”라고 확신했다.
과연 10년 후에는 어떤 예측 시나리오가 맞아 떨어질까. 무엇이 정답이든 핵심은 앞으로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해진다는 데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