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출판부가 펴내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전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이 저명한 사전에 모찌(Mochi)는 있어도 떡(Tteok)은 없다. 알다시피 모찌는 ‘찹쌀떡’을 뜻하는 일본어다. 2024년 12월 ‘떡볶이’(Tteokbokki)가 옥스퍼드 사전에 신규 단어로 등재되긴 했지만, 설명문에는 떡을 ‘쌀 케이크’(Rice cake)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간 떡은 해외에서 ‘Rice cake’ 또는 ‘Korean mochi’로 소개되어 왔다. ‘코리안 모찌’라는 표현은 논외로 하더라도, 과연 쌀 케이크라는 단어로 우린 전통 떡이 지닌 맛과 멋, 그리고 정서를 담아낼 수 있을까. 국가무형유산인 ‘떡 만들기’를 통해 우리 고유의 떡 문화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심온 종가에서 만든 편(떡을 점잖게 이르는 말)과 편청(떡을 찍어 먹는 꿀). 사진=국가유산청 제공떡은 곡식 가루를 시루에 안쳐 찌거나, 쪄서 치거나, 물에 삶거나, 혹은 기름에 지져서 굽거나, 빚어서 찌는 음식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백일·돌·혼례·상장례·제례와 같은 일생의례를 비롯해 설날·정월대보름·단오·추석 등 주요 절기 및 명절에 다양한 떡을 만들고 나누어 먹었다. 또한 떡은 한 해 마을의 안녕을 비는 마을신앙 의례, 상달고사(음력 10월에 집안의 신에게 올리는 제사)와 같은 가정신앙 의례 등에 쓰이는 대표적인 제물(祭物)이기도 했다.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떡을 만들어 먹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원시농경이 시작되면서 함께 떡 문화가 태동한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고분에서는 시루가 발견되며, 특히 고구려 고분인 안악 3호분의 벽화에는 시루로 음식을 만드는 주방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시루에서 익히는 음식인 떡이나 찐밥 등이 당시 보편화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은 남이흥 종가에서 빚어 찐 송편. 사진=국가유산청 제공고려시대에는 권농 정책에 힘입어 양곡이 증산되면서 쌀밥이 널리 보급되고 떡과 과자류가 발달, 성행했다. 고려 후기에는 원나라로부터 상화병(밀가루를 반죽하여 꿀팥으로 만든 소를 넣고 빚어 찐 떡)이 수입되었고, 고려의 떡이 수출되기도 했다. 원나라 문헌인 ‘거가필용’에는 밤 가루와 찹쌀가루를 섞은 다음 꿀물을 축여 쪄 먹는 ‘고려율고’가 소개돼 있다.
조선시대에 농업의 발달로 농산물이 증진되면서 조리가공법이 더욱 세분화되고 다양해졌다. 또한 그 기법도 과학적으로 발전하게 되어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대부분의 떡을 조리, 가공하는 방법이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떡살(떡을 눌러 갖가지 무늬를 찍어 내는 판) 등 떡을 만들 때 쓰이는 도구들도 더욱 정교해졌다.
떡을 만들 때 쓰이는 다양한 떡살.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제공‘산가요록’, ‘증보산림경제’, ‘규합총서’, ‘음식디미방’ 등에는 갖가지 떡의 이름과 만드는 방법이 실려 있다. 이들 문헌을 보면, 떡은 만드는 방식에 따라 증병(시루떡), 도병(절구 따위에 쳐서 만든 떡), 전병, 단자류(찹쌀가루를 쪄서 치댄 다음 고물을 묻힌 떡), 빈자떡(빈대떡), 상화 등으로 분류된다.
각종 고문헌에 기록된 우리 떡은 200종이 넘을 정도로 다양하다. 생활의 지혜와 창의성이 엿보이는 떡들도 적지 않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가 집대성한 백과사전 ‘임원경제지’ 중 정조지(음식요리 백과사전) 제2권에는 화병(불떡) 만드는 방법이 실려 있기도 하다. 메밀가루를 물에 개어 된죽처럼 만들어 장작불에 부어 굽는 방식이다.
명절 때 떡메로 떡을 찧는 모습.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제공떡은 각종 의례에서 다양한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일례로, 백일상에 올리는 백설기는 예로부터 깨끗하고 신성한 음식이라 여겨 아이가 밝고 순진무구하게 자라길 바라는 염원을 담았고, 팥수수경단은 ‘귀신이 붉은색을 꺼린다’는 속설에 따라 아이의 생(生)에 있을 액(厄)을 미리 막기 위하여 올렸다. 백일잔치 이후에는 ‘떡을 백 집에 나누어 먹어야 아이가 무병장수하고 복을 받는다’는 속설에 따라 되도록 많은 이웃과 떡을 나누었다.
우리나라의 떡은 지역별 지리적 특성을 반영한 산물을 재료로 활용하고 있다. 감자와 옥수수의 산출이 많은 강원도에서는 ‘감자시루떡’·‘찰옥수수시루떡’ 등이 전승되고 있고, 예로부터 쌀이 귀하고 팥·메밀·조 등 잡곡이 많이 생산돼 온 제주도에서는 ‘오메기떡’·‘빙떡’·‘차좁쌀떡’ 등이 전승된다.
서애 류성룡 종가에서 청태콩을 소로 넣어 송편을 빚고 있다. 사진=국가유산청 제공19세기 말 서양식 식문화의 도입으로 인해 우리 고유의 식생활에 변화가 생겼고, 떡 만들기 문화도 일부 축소됐다. 또한 떡 만들기가 분업화되면서 떡의 생산과 소비 주체가 분리되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다양한 떡이 지역별로 전승되고 있으며, 떡을 의례, 세시음식으로 활용하고 이웃과 나누는 문화가 그 명맥을 잇고 있다.
떡은 한국인이 일생동안 거치는 각종 의례와 행사 때마다 만들어서 사회구성원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 음식으로 ‘나눔과 배려’, ‘정을 주고받는 문화’의 상징이며, 공동체 구성원 간의 화합을 매개하는 특별한 음식이다. 또한 각종 의례에 사용되는 떡은 저마다 상징적 의미가 깃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무형적 자산이다.
‘떡 만들기’는 2021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됐는데, 한반도 전역에서 온 국민이 전승·향유하고 있는 문화라는 점에서 특정 보유자나 보유단체는 따로 인정되지 않았다. 우리 떡에 관심을 갖고, 떡에 깃든 의미를 떠올려보고 또 함께 나눈다면 우리 모두가 전승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