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이창호 이후 답보 상태, 대다수 기사들 처우 열악…“후원 구조 다변화와 시장 확대 시급”

신진서 9단의 최근 기록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최고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2023년에는 14억 7960만 원으로 역대 연간 최다상금 기록을 세웠고, 2024년에도 14억 5600만 원의 고수익을 올렸다. 2025년에는 중국 갑조리그 미참가 등의 영향으로 총액이 다소 감소했으나, 난양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우승(약 2억 6000만 원)과 쏘팔코사놀 세계최고기사결정전 우승(2억 원) 등 국제무대에서의 활약은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주변국인 중국과 일본, 대만의 상금 현황도 주목할 만하다. 중국은 차세대 주자 왕싱하오 9단이 북해신역배 우승과 난양배 준우승 등을 통해 약 8억 1700만 원(406만 위안)을 벌어들이며 1위에 올랐다. 일본의 경우 올해 상금랭킹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이치리키 료 9단이 약 10억 8000만 원(1억 2181만 엔)을 기록하며 일본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한·중·일 3국의 일인자들이 모두 10억 원 안팎의 상금을 기록하며 각국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이러한 화려한 지표 이면에는 바둑계가 직면한 뼈아픈 현실이 숨어 있다. 신진서 9단이 매년 10억 원 이상의 상금을 기록하며 찬사를 받고 있지만, 이를 냉정하게 분석해보면 바둑 시장의 규모는 사실상 수십 년째 답보 상태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둑계가 가장 아프게 받아들이는 지점은 ‘10억 원 고지’의 상징성이다. 바둑 상금 10억 원 시대는 25년 전인 2001년, ‘신산(神算)’ 이창호 9단에 의해 처음 열렸다. 당시 이 9단은 상금 누계 10억 1800만 원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상금 10억 원 시대를 열어젖혔다. 문제는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지금,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가진 신진서 9단의 상금이 당시보다 고작 4억 원 남짓 늘어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25년간 대한민국의 경제 규모는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등 인기 스포츠 스타들의 연봉은 수십 배가 뛰었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현재의 14억 원은 2001년의 10억 원보다 실질적인 가치가 훨씬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즉, 바둑계의 ‘천장’은 여전히 2000년대 초반의 수준에서 단단히 묶여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바둑계 관계자는 “신진서라는 압도적인 스타의 활약으로 한국 바둑의 위상은 견고해 보이지만, 실제 시장의 체력은 예전만 못하다”며 우려를 표했다. 그는 이어 “최근 신임 이사장 주도로 우승상금 4억 원의 ‘기선전’이 신설되는 등 분위기 쇄신을 위한 파격적인 행보가 이어지고는 있으나, 상금의 정체와 상위권 쏠림 현상은 여전한 숙제”라며 “바둑계 전체의 시장 규모를 키울 수 있는 근본적인 정책 대안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2025년 억대 상금을 기록한 기사는 전년도 16명에서 14명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상위 10위권 기사들의 합산 상금 역시 전년 대비 약 5억 원 감소했다. 이는 상위권 상금 정체는 물론 대다수 프로기사의 경제적 처우가 여전히 열악함을 방증한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전문가는 “25년 전 이창호 9단의 10억 원이 가지는 사회적 위상과 지금 신진서 9단의 14억 원이 가지는 가치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며 “바둑이 단순한 전통 취미를 넘어 하나의 고부가가치 스포츠 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후원 구조의 다변화와 시장 확대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신진서 9단의 6년 연속 상금왕 등극은 축하받아야 마땅한 성과이나 바둑계 전체로서는 큰 숙제도 떠안은 셈이다. 25년째 박스권에 갇혀 있는 상금 규모는 바둑이라는 콘텐츠가 가진 자본적 가치의 정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금 바둑은 25년 전의 영광에만 머물러 있을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시장 가치를 창출하며 도약할 것인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유경춘 객원기자 mast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