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기량 떨어지지 않았지만 박수칠 때 떠나…가요계 “대중은 알 수 없는 대가들의 기준 있는 것”

당시 그는 “한 발 또 한 발 걸어온 길이 반백 년을 훌쩍 넘어 오늘까지 왔습니다. 마이크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이렇게 용기가 필요한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라며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쉽고 간단한 말의 깊은 진리의 뜻을 저는 따르고자 합니다”라고 밝혔다.
은퇴 이유에 대해 구구절절이 늘어놓지도 않았다. 다만 “세월의 숫자만큼이나 가슴에 쌓인 많은 이야기들을 다 할 수 없기에 ‘고마웠습니다’라는 마지막 인사말에 저의 진심과 사랑 그리고 감사함을 모두 담았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이후 나훈아는 약 1년에 걸친 은퇴 투어에 돌입했다. 항간에는 건강 이상설이 불거졌다. 과거 긴 공백기를 갖던 시기, 신체 훼손설까지 감내해야 했던 그는 참지 않았다. 공연 도중 일본어로 쓰인 건강검진표를 공개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는 “내 건강한 두 다리로 걸어다닐 수 있을 때, 그만두고 좋은 거 먹고 좋은 거 보러 다니겠다”고 거듭 밝혔다.
나훈아의 은퇴에 따른 아쉬움의 씻기기도 전, 이번에는 ‘엘리지의 여왕’이라 불리는 이미자가 공식 은퇴할 뜻을 밝혔다. 1959년 데뷔 이후 66년 만이다. 그는 2025년 3월 ‘이미자 전통가요 헌정 공연-맥(脈)을 이음’ 개최를 알리는 기자간담회에서 “‘은퇴’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도 “마지막이라고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을 때”라고 밝혔다.

당시 그는 “이렇게 든든한 후배들을 제가 고르고 골라서 전통가요의 맥을 대물림해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기에 ‘아∼ 이것이 이루어졌구나’라고 느꼈다”면서 “후배들과 우리의 맥을 이을 수 있는 물려줄 수 있는 공연을 할 수 있어서 끝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후 나훈아와 이미자의 행보는 다소 다르다. 나훈아는 지난 전국 투어를 끝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SNS도 하지 않는 그의 소식을 어디서도 듣기 힘들다.
반면 이미자는 2025년 11월에 40주년을 맞은 ‘가요무대’에 등장했다. 그는 은퇴 공연 당시에도 “후배들이 불러준다면, 제가 필요하다면 게스트로 출연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단서를 달았다. “특별 출연은 싫고, 내가 주인공인 것도 싫다”고 선을 그었다. 즉, 이미자의 은퇴는 완전히 무대를 떠난다기보다는 자신의 자리를 대신할 후배들을 위해 무대를 열어준다는 의미가 더 크다.
그리고 최근 임재범이 배턴을 이어받았다. 올해는 그의 데뷔 40주년이기에 더욱 충격적인 발표였다. 게다가 그의 나이는 아직 62세다. 이미자가 84세, 나훈아가 77세에 은퇴의 뜻을 밝힌 것과도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는 “무대에 서면 여전히 심장은 뜨겁지만, 그 뜨거움만으로 다 감당하기엔 제가 가진 것들이 하나둘 제 손을 떠나고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면서 “여러분은 제 노래의 시작이었고, 제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였다. 남아 있는 마지막 무대들에서 제가 가진 모든 것, 남아 있는 힘과 마음을 다해 여러분께 드릴 것이다. 이 여정을 제 방식대로, 조용하지만 진심으로 끝까지 마무리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미자는 “마지막을 이야기하는 것은 노래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기’ 때문”이라며 “노래가 안 되지만 후배들과 전통가요의 맥을 잇겠다는 마음으로 공연을 열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이미자의 말에 마지막 공연의 MC를 맡은 황수경 아나운서가 “노래 잘되고 계세요”라고 만류했지만, 이미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스스로가 세운 기준으로 봤을 때는 자신의 노래, 무대가 성에 차지 않는다는 뜻이다.
임재범의 은퇴 선언도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호랑이가 포효하는 듯한 임재범의 무대 위 카리스마는 그 누구도 범접하기 어렵다. 그만큼 노래, 무대에서 만큼은 자신에게도 자비는 없다. 하지만 스스로 그에 부합하는 퍼포먼스를 내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주저 없이 마이크를 내려놓겠다는 결심을 세우게 된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대가들의 방식이자, 그들이 대가로 불릴 수 있었던 이유다. 나훈아는 마지막 콘서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은퇴한다고 하니 서운하나? 그러니까 떠나는 거다. 떠난다고 했을 때 서운해 하지 않으면 내가 슬프지 않겠나?”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mast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