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큰불 이후 여전히 수천명 임시주택 신세…‘사회재난’ 분류 지원 미흡 우려, PTSD 등 주민 건강 문제도
2026년 새해, 몹시 달갑지 않은 통계가 나왔다. 산림청에 따르면 올 1월 한 달 동안에만 전국에서 62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전년도 같은 기간에는 44건이었다. 2024년에는 18건이었다. 자연재해가 잦아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재난의 여파가 사회적으로 취약하고 소외된 지역 주민들에 집중된다는 점이다. 관심은 잠시 머물다 사라지고, 복구와 회복은 뒷전으로 밀린다. 일요신문은 지난 5년 사이 치명적 자연재해로 이웃을 잃고 눈물에 잠겼던 지역들을 다시 찾았다. 2022년 초대형 산불이 난 경북 울진, 이듬해 2023년 산사태로 물에 잠긴 경북 예천, 지난해 2025년 불지옥을 연상케 한 경북 안동시 등이다. 현장은 회복을 포기한 듯한 분위기였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어느 쪽을 향한 기대도 엿보이지 않았다. 주민들이 마지막으로 호소한 대상은 시민사회였다. [편집자주][일요신문] 2025년 3월 22일부터 30일까지 경상북도 안동시와 의성·청송군 등지에서 발생한 산불 피해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주민이 수천 명에 이른다. 새집 공사의 첫 삽조차 뜨지 못한 곳이 대부분이다. 최근 '경북 산불 피해구제 특별법'이 시행되며 추가 보상의 길은 열렸다. 그러나 한계가 뚜렷하다.
일요신문은 안동을 다시 찾았다. 주민들은 심각한 트라우마와 2차 피해를 걱정했다. "산불 끄니 산사태가 걱정" 등 우려가 컸다.

지난 1월 27~28일 찾은 안동은 어쩐지 한국답지 않은 풍경이었다. 사방이 푸르렀던 산은 완전히 사라졌다. 언뜻 보면 이집트 피라미드가 곳곳에 세워진 듯 참담한 이국적 광경이 이어졌다. 불에 타 죽거나 베어낸 나무들로 산 전체가 황색 빛 민둥산이 돼 버렸다.
시골마을로 향하는 길목에는 집 같기도, 컨테이너 같기도 한 구조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산불 피해 이재민들이 머무는 임시주택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 1월 13일 기준 경북 지역에서 임시주택에 거주하는 산불 피해 주민은 4102명에 달한다. 지역별로는 △안동시 1532명 △영덕군 1341명 △청송군 696명 △의성군 375명 △영양군 158명 등이다. 2025년 3월 산불 발생 후 6개월 지난 9월에도 4467명이었다. 이재민 상당수가 여전히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주민들은 일상 회복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아 보였다. 경로당에서 만난 70대 주민은 "나이 든 마당에 좋은 집이 뭐가 필요 있겠냐"며 "비닐하우스 하나 지어 거기서 살아도 된다"고 말했다. 농사가 더 문제다. 그는 "원래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났는데 불 난 뒤로는 땅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아무 것도 안 나온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렇게 눈물 난 적이 없었다"며 "나무에 대추도 안 열린다"고 걱정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재난·안전관리 기본법' 등에 따라 각종 피해보상과 지원을 받았다. 액수는 넉넉하지 않다. 피해 유형에 따라 다르지만 주택 기준 전파(전소)는 최대 3600만 원, 반파는 최대 1800만 원 수준이다. 여기에 주거비와 생계비 등을 최대한 더해도, 대개 1억 원 안팎이라는 게 주민들 설명이다. 최근 급등한 건축 자재비와 인건비를 고려하면 자기 부담 없이 새집을 짓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부 주민들은 은행 대출을 알아보고 있지만, 상당수는 여전히 선택지를 고민하고 있다.

정부는 안동 등 경북 산불 피해 주민을 대상으로 한 특별법 시행령을 지난 1월 29일부터 시행했다. 피해 구제 범위와 생계지원을 확대한 게 골자다. 하지만 현장에선 웃기도, 울기에도 모호한 반응이 주를 이뤘다. 안동 임하면에서 만난 60대 주민은 "더 지원해준다니 다행"이라면서도 "큰 기대는 없다"고 말했다.
"안동에 이런 큰 산불은 처음 나가꼬 그런지, 공무원들도 전부 우왕좌왕하대이. 집만 문제인 게 아이고, 옷이랑 생필품도 우리 쓰라꼬 준 기라예. 근데 그게 말이 됩니꺼. 쓸모 있는 기가 거의 없었데이. 나만 그런 기도 아니고예. 옷 같은 거는 사이즈도 안 맞고. 그때 나눠준 2080 치약도 얼마 전에 뉴스에 나오더만예. 불량이라꼬 반품하라 카대이. 에이, 다 갖다 버렸지 뭐. 정부라 카든지, 도청이라 카든지, 시청이라 카든지… 하는 짓이 다 그짝 그짝입니더."실제 특별법이 시행돼도 보상·지원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북 산불이 '사회재난'으로 분류돼 있기 때문이다. 안동시의회와 시민단체 등은 이를 '자연재난'으로 바꾸길 계속 요청했지만 관철되지 않았다. 사회재난은 자연재난보다 각종 보상·지원 수준이 낮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2025년 6월 '영남지역 산불 피해와 농업 부문 대응 과제' 보고서에서 "사회재난은 응급복구비와 생계비 지원 위주로 재정이 투입돼 피해 회복에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반면 "자연재난으로 분류되면 재해복구비와 재난지원금, 농작물재해보험 보장 범위 등이 확대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국무조정실 산하 정부출연기관이다. 그런데 정작 정부가 다른 시각을 띠고 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일요신문에 "산불은 관련 법률에 따라 사회재난으로 분류되며, 사회재난이든 자연재난이든 보상·지원 기준은 동일하다"며 "오히려 자연재난으로 분류될 경우 실손 피해 보상 한도가 5000만 원으로 제한되는 등 불리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동 산불 피해 지역에서는 주민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논과 밭, 집과 경로당까지 대부분 텅 비어 있었다. 수소문해보니 "노인들이 많아 대부분 병원에 다닌다"는 답이 돌아왔다. 안동 대곡2리에서 마주한 주민들도 일제히 건강 문제를 토로했다. 이 마을 일대에서만 산불 직후 2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한 주민은 "정확한 병명은 모르겠지만 다들 산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한 사망자의 부인은 "우리 아저씨가 80대지만 건강했다"며 "산불 나고 대피소에서 며칠 지내다 돌아와서는 집이 다 타버린 걸 보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수개월 앓다 작년(2025년) 초가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도 산불 이후 밝은 곳에 들어가면 검은 반점 같은 게 떠다닌다"며 "나이 들면 원래 그렇다고는 하는데 아무튼 산불 나고 이렇게 됐다"고 토로했다.
산불 피해 주민들의 건강 문제는 일찌감치 우려돼 왔다. 매캐한 연기와 냄새로 인해 노인층의 폐·호흡기 질환 위험이 제기됐고, 정신적 충격도 컸다. 2025년 12월 그린피스와 녹색전환연구소 등이 발표한 '2025 경북 산불 피해주민 실태조사' 결과, 3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응답자가 261명(87%)에 달했다.
정부는 심리 치료를 포함한 의료 지원을 이어가고 있지만, 현장에서 체감하기는 쉽지 않았다. 일요신문이 길안면과 임하면 일대에서 만난 주민 가운데 실제 심리 치료를 받았다고 답한 이는 없었다.

주민들의 불안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 1월 10일 의성군에서 다시 산불이 발생하면서 마을 전체에 사이렌이 울리고 대피령이 내려졌다. 지역 일대가 아비규환이었다고 한다. 당시 산불은 3시간 만에 진화했다. 하지만 주민들 사이에선 사람의 힘이 아닌, 당일 내린 눈 덕분이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설마 똑같은 사태가 1년 만에 재발할까. 주민들은 이제 산불보다 산사태가 더 걱정이다. 지역 사방이 민둥산이 돼 버린 탓이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산불이 발생한 곳은 토양의 영양분이 대거 빠져나가 일반 산보다 산사태 가능성이 최대 200배까지 높아진다.
특히 이 지역 주민들로선 2023년 바로 옆 지역 예천에서 발생한 산사태 악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관련기사 [르포] '대피한 후에야 대피 문자가…' 산사태로 무너진 예천 벌방리). 게다가 현재 임시주택에 거주하는 산불 이재민 대부분은 재난 지역 인근에서 그대로 지내는 상태다. 산불이든 산사태든 발생하면 관련 피해를 고스란히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안동 일직면 임시주택 단지에서 만난 70대 주민은 "산사태 걱정은 당연한데, 주변에 임시주택 단지로 쓸 땅이 없어 별 수 없이 여기서 지낸다"며 "그래도 가끔 공무원들이 나와서 산을 훑어보고 가더라. 산사태 나지 않을 정도로 산이 튼튼한지 보고 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경북도 관계자는 "산불 진화 이후부터 각 시·군과 협조해 산사태 우려지역 조사를 진행했고, 긴급한 지역 위주로 인근에 사방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지금은 동절기라 잠깐 공사를 멈췄지만, 우기 전에 마무리하도록 '총력전'을 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또 "2023년 예천 등에서 발생한 산사태의 경우 안동 등 산불 발생지와 다른 면이 있다. 통상 산사태는 큰 산맥 뒤에 위치한 지점이 발생 가능성이 높은데, 일단 안동 등지는 여기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하면서 "산림청 등과 함께 산사태 예측정보시스템도 고도화해 가동 중으로 예방 활동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안동=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