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보드 최가온 골절 투혼 최연소·최초 설상 금메달…쇼트트랙 김길리 2연속 ‘꽈당’ 사고 딛고 2관왕 쾌거

여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종목에 출전한 최가온은 대한민국 선수단의 이번 대회 첫 금메달 소식을 전했다. 예선을 6위로 가볍게 통과한 그는 본선에서 90.25점을 획득, 시상대 최상단에 올라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가온은 당초 대한민국 선수단 내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히던 인물이다. 올림픽 이전 열린 국제스키연맹 스노보드 월드컵에서 세 번 연속 1위를 기록하며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앞서 두 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한국계 미국 대표 클로이 김의 독주를 막을 대항마로 주목을 받았다.
운명의 결선 당일, 날씨가 말썽을 부렸다. 경기가 열린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 눈이 내린 것이다. 실제 경기 중 넘어지는 선수들이 속출했고 최가온도 마찬가지였다. 반원통형 슬로프를 내려오며 점프와 함께 화려한 기술을 뽐내는 하프파이프 종목 특성상 날씨가 중요했다.
1차시기에 나선 최가온은 두 번째 점프 과정에서 넘어졌다. 특유의 높은 점프 탓에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파이프 중간에 쓰러져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의료진도 곧장 투입됐다. 일정 시간이 지나 최가온은 들것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털고 일어났다. 보드를 타고 파이프를 미끄러져 내려가는 그의 모습에 관중석에선 환호가 쏟아졌다.
2차시기 최가온의 순서, 큰 충격에 경기를 포기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으나 그는 출발 지점에 섰다. 망설임 없이 경기에 나섰으나 첫 번째 기술을 선보인 이후 착지하는 과정에서 다시 넘어졌다. 유력한 금메달 후보라던 최가온에게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눈발이 굵어진 3차시기 최가온은 다시 경기에 나섰다. 실수 없이 기술을 선보였고 경기를 마무리한 그는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점수는 90.25점. 단숨에 선두로 올라섰다. 결국 금메달은 그의 차지였다.
17세 스노보드 소녀는 단숨에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두 번의 실수에도 포기하지 않고 경기에 나서는 모습에 박수가 쏟아졌다. 특히 1차 시기에서의 사고는 충격이 적지 않아 보였다. 이후 귀국한 최가온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골절 진단을 받았음을 전할 정도로 타격은 심했으나 이를 극복해냈다. 메달 획득 소감을 말하며 두쫀쿠, 마라탕 등 먹고 싶은 음식을 밝힐 때마다 화제를 모았다.
최가온은 각종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대한민국 동계올림픽 역사상 최초의 설상종목 금메달이었다. 동계올림픽 하프파이프 종목에서 최연소 금메달리스트로 새로운 역사를 쓰기도 했다.

쇼트트랙은 전통적인 효자종목으로 불린다. 종목이 올림픽에 도입된 시기부터 대한민국 대표팀은 성과를 냈다. 매 대회마다 숱한 스타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번 2026 밀라노 코르티나 올림픽에서 스포트라이트를 챙긴 이는 김길리였다. 김길리 역시 기대주로 꼽히던 인물이다. 한 시즌간 여러 차례 열리는 국제스케이트연맹 월드컵 시리즈의 종합우승자에게 주어지는 크리스털 글로브(2023-2024시즌)를 이미 수상한 경험이 있다. 동계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 등 각종 대회에서 성과를 낸 바 있었다. 다만 21세 어린 선수인 김길리에게 올림픽만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김길리는 혹독한 올림픽 데뷔전을 치렀다. 대회 첫 일정인 혼성 2000m 계주에 나서 준결승 경기 중 넘어지는 앞 선수를 피하지 못해 함께 넘어진 것이다. 이에 대표팀은 결승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경기를 마친 김길리는 아쉬움에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 후 인터뷰도 마다해 김길리 없이 나머지 3명의 선수만이 소감을 전해야 했다. 또한 넘어지는 과정에서 출혈이 있는 등 부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진 여자 1000m 종목에서도 준결승을 치르다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다행이 어드밴스를 받아 결승에 진출했고 동메달 획득에 성공했다. 생애 첫 올림픽 메달이었다. 메달 획득이 확정된 김길리는 다시 한 번 아쉬움과 안도감이 섞인 눈물을 쏟아냈다.
대망의 여자 3000m 계주 결승전. 김길리는 2번 주자의 중책을 맡았다. 2번은 골인 시점 최종 주자를 맡게 된다. 통상적으로 팀의 에이스가 책임을 지는 자리다.
접전 끝에 김길리는 마지막 배턴을 넘겨받았다. 당시 대표팀의 순위는 이탈리아에 이은 2위였다. 김길리는 첫 코너를 돌아 나가는 동시에 선두 자리를 빼앗았다. 이후 침착한 경기 운영으로 자리를 내주지 않았고 첫 올림픽 금메달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냈다. 동료들과 손을 맞잡고 코칭스태프와 얼싸 안은 김길리에 눈에는 다시 한 번 눈물이 쏟아졌다.
마지막 일정은 김길리의 주종목 1500m였다. 메달 획득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점쳐졌고 실제 이번 시즌 1500m 랭킹 1위에도 올라 있었다. 주요 경쟁자들이 준결승에서 대거 탈락한 가운데 김길리는 '우상' 최민정과 함께 경기에 나섰다.
레이스 초반 김길리가 4위, 최민정이 5위 자리를 지키며 경기 흐름을 살폈다. 먼저 움직인 쪽은 최민정이었다. 골인까지 7바퀴를 남긴 시점 속도를 올렸고 2위 자리까지 올라갔다. 곧 김길리도 최민정의 뒤를 따랐다. 이후 2바퀴를 남기고 둘은 선두로 달리던 미국의 코린 스토다드마저 제쳐냈다. 곧 김길리는 최민정을 앞질러 나갔고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최민정은 은메달을 따냈다.
이로써 김길리는 대한민국 선수단 내 유일한 '멀티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동시에 유일하게 3개의 메달을 목에 건 선수로 남았다. 쇼트트랙 왕국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일인자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김길리는 남다른 '스타성'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심석희, 최민정이 비교적 냉정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과 달리 김길리는 감정 표현을 주저하지 않는다. 눈물도 많고 웃음도 많다. 경기장에 입장할 때나 골인 지점에서 자신만의 손동작으로 팬들을 즐겁게 했다. 마지막 금메달을 목에 걸던 1500m 시상대에 오르면서는 폴짝폴짝 뛰는 모습으로 기쁨을 만끽했다.
이외에도 이번 올림픽에는 또 다시 새로운 스타들의 등장으로 팬들을 흥분시켰다. '쇼트트랙 신성' 임종언은 고교생 신분으로 출전, 남자 5000m 계주에서 은메달, 남자 1000m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성공적인 올림픽 데뷔전을 치렀다. 또한 선수용이 아닌 일반인용 보드를 타고도 여자 스노보드 빅에어 동메달을 따낸 유승은, 선수 생활을 이어가려 일용직으로 일해야 했던 남자 스노보드 평행 대회전 은메달리스트 김상겸 등이 감동을 안겼다.
이번 대회 대한민국 선수단은 금메달 3개, 은메달 4개, 동메달 3개를 기록했다. 효자 종목 쇼트트랙이 메달 7개(금2 은3 동2)를 따내며 기대만큼의 성적을 냈고, 스노보드 종목에서 메달 3개(금1 은1 동1)를 따는 이변을 보였다. 이전까지 대한민국의 스노보드 메달은 단 1개에 불과했다. 향후 쇼트트랙이 아닌 종목에서도 대한민국이 강세를 보일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