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 군살 빼고 ‘훨훨’, 두산 - 근육 키워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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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LG그룹의 외형은 자꾸만 작아져 갔다. 외환위기 때는 LG반도체를 현대그룹에 내줘야했고 2002년에는 카드사태 와중에 LG카드를 팔아야했다.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는 LG증권도 남의 손에 넘겼고, 구씨 가문과 허씨 가문이 50년간의 동업을 청산하면서 주력 계열사 중 일부가 GS와 LS로 간판을 바꿔다는 과정도 지켜봐야 했다.
이렇게 살림살이를 하나둘 처분하면서 LG는 어느덧 ‘재계 4위’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덩치를 부쩍 키운 현대차와 SK가 재계 순위에서 LG를 앞지른 것. LG그룹은 누가 뭐래도 재계 2위라는 자존심만큼은 내주지 않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간판기업인 LG전자가 실적 부진의 늪에 빠져드는가 하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돼줄 것으로 믿었던 LG필립스LCD마저 패널 값 하락으로 고전해야 했다.
하지만 LG그룹은 주식시장에서 숨겨졌던 가치를 인정받았다. 올해 들어 계열사들의 주가가 급등하면서 지난해 말 36조 원이던 시가총액이 60조 원을 돌파한 것. 특히 그룹의 대표 상장사인 ㈜LG, LG전자, LG필립스LCD 삼총사가 일제히 시가총액 10조 원을 넘어서며 새로운 중흥기를 맞았다.
물론 주가가 오른 기업은 LG만이 아니다. 하지만 LG그룹 계열사들의 주가상승은 다른 그룹들에 비해 괄목할 만한 수준이다. 주력 계열사인 LG전자의 경우 연초 5만 7500원이던 주가가 10만 원을 넘어서 있다. 11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주가가 70% 가까이 오른 것이다.
자존심을 회복한 계열사는 LG전자뿐이 아니다. ㈜LG는 연초 3만 원도 안 되던 주가가 지금은 7만 원에 육박하고 있다. 주식시장이 한창 좋던 10월 말에는 9만 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연초 대비 두 배 이상 오른 수치다. LG필립스LCD 역시 3만 원에 못 미치는 가격으로 출발한 올해 주가가 5만 원을 넘보고 있다.
반면 LG를 제치고 SK가 재계 3위에 오르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던 SK그룹의 간판기업 SK텔레콤의 경우 연초 22만 2500원으로 시작한 주가가 12월 20일 기준으로 26만 1000원에 그치고 있다. LG전자가 70%가량 오르는 동안 한자릿수 상승률에 그친 셈이다.
현대중공업의 급격한 주가 상승도 현대가(家)의 대표 주자가 누구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고 있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현대중공업 계열사는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2개사뿐이지만, 이 둘만으로도 시가 총액이 45조 원에 육박한다. 특히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시가총액이 12조 원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히 폭발적인 성장을 보였다고 평가할 만하다.
대표기업인 현대중공업의 주가는 올 초 12만 5000원에서 40만 원대로 껑충 뛰어올랐다. 지난 11월 7일에는 주가가 사상최고액을 경신하며 한때 55만 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현대미포조선도 6만 원이던 주가가 26만 원을 넘나들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사상최고치를 기록하던 날 현대미포조선 역시 주가가 동반 폭등해 40만 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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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간의 재산다툼으로 위상이 추락했던 두산그룹도 주가 대박으로 자존심을 되살리고 있다. 우선 지주회사인 ㈜두산의 주가는 연초 5만 7000원에서 18만 원대로 치솟았다. 11월 초에는 30만 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주가상승률이 무려 300%를 넘는 셈이다.
특히 두산그룹은 최근 몇 년간 인수합병(M&A)을 통해 사들인 회사들의 주가가 폭등하면서 M&A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지난 2001년 인수한 두산중공업의 경우 인수 당시 주가가 주당 8150원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13만 원에 육박하고 있다. 인수 당시와 비교하면 주가 상승률이 무려 1400%에 육박하고 4만 4000원이던 연초 주가와 비교해도 세 배 가까이 오른 수치다.
지난 2005년 인수한 두산인프라코어도 제법 짭짤한 주가차익이 생긴 것은 마찬가지. 회사를 사들일 당시 주가는 주당 약 2만 2000원이었다. 이 회사는 1년 넘게 주가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해 인수당시와 거의 같은 가격인 약 2만 2000원으로 2007년을 출발했다. 하지만 지금은 주가가 3만 원을 넘보고 있는 상태다.
이런 현상은 비단 재벌기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올해는 M&A와 이를 통한 주가폭등으로 재계 판도를 바꾸고 있는 기업이 다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STX그룹. STX그룹 소속 상장사는 올해 9월 상장한 STX팬오션을 포함해 4개사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들 중 지난해까지 시가총액 1조 원이 넘는 계열사는 STX조선 한 곳뿐이었고, 상장 3개사의 시가총액을 모두 더해도 2조 3000억 원 남짓에 불과했다. ‘재계 순위’에는 감히 명함도 내밀기 힘든 수준이었던 셈.
하지만 올해 들어 STX는 적어도 시가총액 기준으로는 이미 ‘10대 그룹’ 반열에 올라섰다. 금호아시아나 GS 한화 한진 등을 따돌린 상태고 주당 가격이 100만 원을 넘는 롯데칠성 등의 ‘황제주’로 무장한 롯데그룹마저 넘보고 있다. 3개사의 주가가 폭등하면서 시가총액이 20조 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는 지난 9월 말 상장한 STX팬오션의 약진이 깔려 있다. 2000원 남짓으로 시작된 STX팬오션의 주가는 한 달이 채 못 돼 5000원을 뚫고 올라갔다. 주식시장 전체가 조정을 겪고 있는 지금도 STX팬오션 주가는 3000원을 넘나들고 있다. 그룹 지주회사인 STX㈜도 한몫 단단히 했다. 올해 초 1만 7000원가량이던 STX㈜의 주가는 8만 원에 근접하고 있다. 11월 초에는 15만 원을 넘기도 했다.
이밖에 포스코가 ‘시총 4대 그룹’에 진입한 것도 큰 변화다. 포스코는 작년까지 시가총액 면에서는 5위권에 머물렀으나 SK와 현대차가 주춤하는 사이 3위로 올라섰다. 이런 현상에 관해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주가는 오르고 내리기 마련”이라면서도 “주가는 기업의 미래가치를 반영하는 만큼 앞으로의 재계 판도 변화를 읽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