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적 수색 끝에 찾은 배낭·신발 수사 혼선 야기…3주 만에 시신 발견, 등교시켜줬다던 양부 체포 ‘충격’

지난 3월 23일, 일본 교토부 난탄시에서 아다치 유키 군(11)이 행방불명됐다. 유키 군의 아버지는 “오전 8시경 학교 인근 주차장에 내려줬다”고 설명했다. 평소에는 스쿨버스로 등교했지만, 이날은 시간이 늦어져 직접 차로 데려다줬다는 것이다. 마침 그날은 졸업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5학년인 유키 군은 재학생으로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차에서 내린 지점에서 학교 건물까지는 약 150m. 도보로 몇 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다. 그러나 유키 군은 등교하지 않았다. 학교 측이 결석 사실을 보호자에게 알렸고, 가족은 정오 무렵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유키 군은 휴대전화 등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기기를 소지하지 않은 상태였다.

수색 범위는 빠르게 확대됐다. 경찰은 약 1000명을 투입해 인근 산과 하천은 물론 저수지의 물까지 빼며 샅샅이 뒤졌다. 지역 주민들도 수색에 합류했지만, 결정적인 단서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실종 6일째인 3월 29일, 수사는 새로운 단서를 맞았다. 유키 군의 통학용 배낭이 발견된 것이다. 발견자는 유키 군의 친족이었다. 그러나 이 발견은 오히려 의문을 키웠다. 배낭이 발견된 곳은 학교에서 서쪽으로 약 3km 떨어진 산속. 주민들은 “아이 혼자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어른도 꺼리는 곳”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의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수사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여러 차례 철저히 수색이 이뤄진 곳으로 당시에는 배낭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실종 이후 비가 내렸음에도 배낭은 거의 오염되지 않은 채 마른 상태였다는 점도 의혹을 키웠다. 일각에서는 “최근까지 가방이 실내에 보관돼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4월 12일에는 유키 군의 것으로 추정되는 신발이 추가로 발견됐다. 이번에는 학교에서 남서쪽으로 6km 떨어진 산중으로 앞서 배낭이 발견된 지점과는 동선상 연결이 어려운 위치였다. 신발 역시 오염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단서가 나올수록 사건은 더욱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유키 군의 실종 소식은 연일 보도되며 일본 사회를 뒤흔들었다.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지 않은 가운데 불안감이 빠르게 번졌고, 이를 틈타 각종 추측과 확인되지 않은 정보도 확산됐다. 소셜미디어(SNS)에서는 피해자 가족을 향한 의심이 제기되며 논란이 일었다. “근거 없는 의혹 제기가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수색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사건은 학교와 지역 사회의 안전 대책을 재점검하는 계기도 됐다. 유키 군이 다니던 소노베초등학교는 CCTV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추가 설치를 결정했다. 현재 교내에는 두 대의 CCTV가 운영되고 있지만, 어느 영상에도 유키 군의 모습은 포착되지 않았다. 시교육위원회는 “시내 다른 초·중학교 10여 곳에서도 필요에 따라 추가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소노베초등학교는 보호자들의 요구를 반영해 그동안 원칙적으로 반입을 금지해 온 휴대전화와 위치 추적이 가능한 GPS 기기의 지참을 허용하기로 했다. 상담 인력의 근무 시간을 늘리고, 교직원과 경찰의 순찰을 강화하는 등 학생 안전 대책도 병행할 방침이다.
수색이 이어지던 가운데, 사건은 3주 만에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4월 13일 유키 군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발견 장소는 초등학교에서 남서쪽으로 약 2km 떨어진 지점으로, 자택과 학교 사이였다. 관련 소식이 전해지자 무사 귀환을 기원해 온 지역 사회는 깊은 충격과 슬픔에 잠겼다.

시신은 법의학 감정을 거쳐 유키 군으로 최종 확인됐다. 타살 가능성을 염두에 둔 수사가 이어졌다. 경찰에 따르면 시신에는 매장되거나 은닉된 흔적이 없었고, 베이거나 찔린 상처 등 뚜렷한 외상도 확인되지 않았다. 발견 당시 신발은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사망 시기는 ‘3월 하순’으로 추정되며, 사인은 확인되지 않았다. 당국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인 규명에 주력하고 있다.
4월 15일에는 수사가 다시 크게 움직였다. 경찰이 시신 유기 혐의로 유키 군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한 것이다. 이는 발견 당시 정황 등을 종합해 강제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조치로 보인다. 가택수색은 법원의 영장을 전제로 이뤄지는 만큼, 일정 수준의 소명 자료가 확보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유키 군의 가정환경을 둘러싼 보도도 이어졌다. ‘주간신조’에 따르면, 유키 군의 어머니는 과거 도쿄에서 결혼해 유키 군을 낳았으나 이후 이혼했고, 고향으로 돌아온 뒤 지난해 12월 재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웃에 따르면, 유키 군은 대가족이었다고 한다. 어머니와 계부, 외조모와 증조모, 그리고 어머니의 형제 가족까지 약 10명이 본채와 같은 부지 내 별채에서 생활해왔다.

3주간 일본 사회를 뒤흔들었던 사건은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진실은 아직 다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수사는 이제 사건 경위를 규명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