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군 투입은 경찰 요청” 기록엔 ‘선제적 배치’…지금도 ‘북한개입설’ 낡은 프레임 되풀이
1980년 5월 28일 한 신문의 '계엄군, 광주 장악-17명 사망, 295명 보호 중' 보도 일부다. 기사는 시민을 '폭도'로, 진압을 '보호'로 표현했다. 물론 명백한 거짓이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은 군에 직접적 위협을 가하지 않은 시민들에게도 발포했다. 어린아이 등 평범한 시민까지 총격 대상이었다.
5·18 민주화운동 이후 반세기 가까이 흐른 지금까지도 가짜뉴스가 버젓이 활개치고 있다. 유포 방식만 달라졌을 뿐이다. 과거에는 계엄사의 일방적 발표를 받아쓰는 방식, 현재는 디지털 환경 등에서 '북한 개입설' 등 음모론이 확산한다. 5·18 단체들은 매년 고소·고발과 정정 요구를 이어가지만 수사는 더디다.

오랜 기간 소문과 증언 등에 갇혀 있던 5·18 민주화운동은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를 계기로 공적 검증 대상이 됐다는 평가다. 1995년 서울지방검찰청·국방부 검찰부의 '5·18 관련사건 수사'가 대표적이다. 검찰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는 등 완벽한 수사 결과는 아니었다. 다만 계엄군 투입·발포·지휘체계·시민 피해를 국가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이후 5·18 특별법 제정과 전두환·노태우 재판의 토대가 됐다는 평가다.

당시 전두환 등 내란 혐의 피의자들은 "비상계엄인 데도 전국에 시위가 벌어지자 경찰이 군 투입을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또 "시위대가 차량 돌진으로 계엄군을 공격하자 위협을 느낀 현장 병력이 자위 목적에서 우발적으로 발포했다"고 했다.

서울에는 수도경비사령부 작전통제 아래 연세대·명지대 1공수여단, 고려대 5공수, 동국대 11공수, 성균관대 13공수, 서강대·한양대·경희대·건국대·홍익대 등에 20사단을 투입했다. 지역에는 부산대·동아대 39사단과 해병 1개 연대, 전남대 7공수 33대대, 전북대 7공수 31대대, 충남대 7공수 32대대, 조선대 7공수 35대대를 배치했다.
충청·호남 지역에 7공수를 주로 투입한 이유는 이 부대가 전북 익산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7공수는 출동 불과 약 1~2시간 만에 첫 희생자를 발생시켰다. 현재 5·18 민주화운동 최초 희생자로 기록된 전북대 농학과 2학년 고 이세종 열사다(관련기사 [인터뷰] "미안하다 세종아" 5·18 최초 희생자 이세종 열사의 벗 전희남 씨).
#어린이에 총격…'간첩 몰이' 병행
같은 날 오후 광주 상황은 유독 참혹했다. 검찰 수사 기록에는 이같이 기록돼 있다.
공수부대원들은 M16소총을 메고, 손에는 진압봉을 들고 진압대형 유지한 채 진군. 진압봉으로 시위대를 타격하는 방식의 해산 작전. 그 과정에서 시위대의 투석으로 군 부상자가 발생. 흥분한 공수부대원들은 인근 점포나 골목, 건물 안까지 추적해 시위대를 체포. 공수부대원들은 도주를 방지한다며 체포한 시위대의 상의, 하의, 혁대를 벗기고 머리를 땅에 처박게 함. 이날 273명 체포.다음 날인 5월 19일. 공식 기록상 계엄군의 최초 발포가 이뤄진 날이다. 검찰 수사 기록에는 이 사실이 누락돼 있다. 그러나 이날 11공수 등 투입 및 과잉진압 등으로 광주 시민들 저항이 격화한 시점임은 또렷이 드러난다.
시위 중이던 학생이 공수부대원에 쫓겨 YWCA로 들어가자, 공수부대원들은 직원이 내린 셔터를 올리고 안으로 들어가 진압봉으로 가격하며 학생들과 신협 직원들까지 끌어내 도로에 무릎을 꿇리고 머리를 땅에 처박게 함. 건너편에서 이를 목격한 무등고시학원 학원생들이 '때리지 말라' 소리치자, 공수부대원들은 학원으로 몰려가 학원생들을 진압봉과 소총 개머리판으로 가격하고 밖으로 끌고 나와 트럭에 실어 연행.이날 오후 2시쯤 윤흥정 전투교육사령관과 광주 도지사, 시장 및 주요 기관장들은 회의를 가졌다. 기관장들은 "진압이 지나치게 과격하다" "어느 나라 군대인지 의심이 든다" 등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윤흥정 사령관은 정웅 31사단장과 최웅 11공수여단장에게 "가혹한 진압은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5월 20일: 광주에 공수부대 3개 여단 10개 대대 투입. 전투교육사령부, 500MD 헬기 3대와 공수여단 2개 부대 추가 투입 요청. 31사단, 광주시내 예비군 무기 6508정과 실탄 42만 발 회수.신군부는 '간첩' 프레임을 진압 명분으로 활용했다.
5월 21일: 시위대의 차량 돌진 등으로 위험을 느낀 대대장들이 실탄 지급 요청. 최세창 3공수여단장, 밤 10시 30분쯤 경계용 실탄을 각 대대에 전달하라 지시. 일부 대대에 실탄이 전달, 광주역 이동 과정에서 M60 기관총 위협사격, 권총·M16 공포 사격, E-8 발사기 최루탄 발사. 시위 진압 과정에서 15세가량의 성명불상 남자와 14세 여성이 각각 두부총상, 칼빈총상 등으로 사망.
5월 22일: 광주에서 목포로 승용차를 탄 민간인 일행이 새벽에 20사단 61연대 2대대 검문 통과. 근처에 매복해 있던 61연대 수색중대의 오인 사격으로 사망.
5월 24일: 11공수가 무장시위대와 총격전 벌이다 주변 10세 어린이와 13세 중학생에게 사격해 숨지게 함.
5월 23일: 계엄사령부, 내부 회의에서 시위대 중 '서울에서 온 대학생'이라고 밝힌 이들과 복면시위대 등 놓고 '마치 간첩을 의심케 한다'며 전남도청 진압 작전 조기 착수 방침.5월 25일 최규하 대통령이 광주를 방문했고, 26일 정호용 특전사령관은 가발과 민간인 복장을 공수해 광주에 도착, 예하부대를 격려하고 전남도청 진압작전을 보고받았다. 이어 계엄군은 27일 전남도청을 장악했다.
5월 24일: 서울시경 "북한 간첩이 광주에 들어가 폭동 유도하려는 목적으로 침입 시도하다 붙잡힘" 발표.

수사 기록에서 보듯 신군부는 광주 시민을 '폭도'로, 저항을 '간첩'과 연결하는 방식으로 폭력 진압을 정당화했다. 문제는 이 낡은 프레임이 지금도 5·18 가짜뉴스 행태로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번 퍼진 허위사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바로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책임을 묻는 수사가 워낙 더디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5·18기념재단이 고소·고발한 5·18 허위사실 유포 사건 상당수는 불송치·약식기소 등으로 마무리됐다. 일부는 아직도 수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대표 사례가 옛 '스카이데일리' 관련 사건이다. 이 매체는 5·18 왜곡 보도로 기자 개인부터 대표·발행인, 필진, 법인 등이 일제히 수사를 받게 됐다.
허 아무개 전 스카이데일리 기자는 여러 건의 '북한개입설 등 허위사실 보도'로 2024년 1월 10일 피소됐다. 수사 결과는 1년 2개월여가 지난 2025년 3월 30일에야 나왔다. 일부 기사는 송치됐지만, 일부 기사는 '개인 의견일 뿐'이라는 등 이유로 불송치됐다.
조정진 전 스카이데일리 대표·발행인은 2025년 5월 1일 5·18특별법 위반 및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됐다. 이 사건은 2026년 2월 4일에야 서울경찰청으로 이송됐고, 1년 이상 흐른 현재까지 수사가 이어지고 있다.

비교적 속도를 낸 수사도 없지는 않다. 스카이데일리 필진 일부가 최근 검찰에 넘겨졌다. 필진 조 아무개 씨는 2023년 10월~2024년 3월 칼럼 5건에서 5·18 북한군 개입설 등을 유포한 혐의로 2025년 11월 17일 고발돼 올 4월 16일 서울북부지검에 송치됐다. 같은 매체 필진 박 아무개·정 아무개 씨도 각각 2024년 작성한 칼럼에서 같은 취지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2025년 12월 18일 고발됐고, 지난 3월 검찰로 넘겨졌다.
왜곡은 온라인상에만 머물지 않는다. 교육 현장에도 남아있다. 최근 전국 17개 시·도 169개 학교 도서관에서 5·18 역사왜곡 도서 331권이 소장·열람 중인 사실이 확인됐다.
'5·18 정신 헌법 수록'은 이런 실태를 개선할 한 가지 수단으로도 꼽힌다. 헌법 수록이 곧바로 5·18 왜곡의 법적 처리 기준을 바꾸진 못해도, 이를 단순 명예훼손이 아니라 민주헌정질서와 역사적 진실 훼손으로 볼 근거는 한층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국회는 지난 5월 8일 5·18 정신 수록 등을 담은 대한민국 헌법 개정안을 상정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국민의힘 불참으로 의결정족수에 미달한 탓이다. 5·18 단체 등 260여 개 단체로 구성된 5·18 정신헌법전문수록국민추진위원회는 "역사적 책무를 저버린 정치적 배신"이라며 "국민의 요구를 외면한 정치에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규탄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