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유출 놓고 ‘콩이야 팥이야’
▲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사건은 지난 2005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CJ제일제당 식품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던 A 씨는 경력 연구원 모집을 통해 풀무원으로 직장을 옮겼다. 그로부터 8개월 후인 2006년 3월 풀무원은 ‘비단두유’를 출시했다. 매년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며 2700억 원대 규모(2006년 기준)로 커진 두유시장에서 풀무원이 CJ제일제당에 한 발 앞선 것. 당시 CJ제일제당도 두유 출시를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풀무원이 두유를 출시했던 2006년 3월 CJ제일제당은 내부감사를 통해 A 씨가 회사의 영업비밀을 빼낸 것을 적발해내고 A 씨를 8월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에 따르면 A 씨는 두유개발에 관한 기술 530여 건, 냉동케이크와 젤리 등에 관한 기술 2300여 건을 빼냈다. 또한 CJ제일제당의 영업기밀정보도 개인용 하드디스크에 불법 다운로드했다고 한다.
CJ제일제당의 고발 후 풀무원은 같은 해 11월 비단두유 판매를 중단했다. CJ제일제당 측은 풀무원의 판매 중단에 대해 “문제가 될 것 같으니까 발을 뺀 것 아니냐”라고 공세를 폈다. 하지만 풀무원 측은 “당시 비단두유는 정식 제품이 아닌 ‘테스트용’이었다. 그래서 싱가포르에서 일단 만들어 국내로 들여왔는데 반응이 신통치 않아 판매를 중단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CJ제일제당의 한 관계자는 “굳이 싱가포르에서 제품을 만든 것도 뭔가 꺼림칙한 게 있어서 그런 것 아니냐”라고 맞받았다.
지금 양측에서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부분은 풀무원이 사용한 기술을 고유의 영업비밀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비단두유는 콩가루에서 직접 두유를 추출하는 기술을 이용한 제품이다. 콩을 찌는, 가열처리를 거쳐야 하는 기존 두유에 비해 비린내가 없고 장기보관도 쉽다고 한다. 설비비도 20억 원가량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알짜배기’ 기술로 볼 수 있는 셈.
그러나 풀무원은 이 기술을 ‘공개된 것’이라고 말한다. 외국에서는 이미 일반적인 기술이기 때문에 그것을 사용했다고 해서 기술유출이라고 하면 곤란하다는 말이다. 풀무원의 한 관계자는 “인터넷에도 나오는 방법을 가지고 도난이라고 한 것에 대해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마음까지 든다. 식품업계 1위가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며 CJ제일제당을 비난했다.
CJ제일제당도 강경해 보인다. 풀무원이 뭐라고 하던 자사의 ‘핵심기술’이 분명하다는 것. 단지 콩가루에서 두유를 추출하는 기술만 가지고 고발한 것은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한 관계자는 “무슨 기술인지는 정확히 말해줄 수 없다. 그래서 영업비밀 아니냐”라고 설명했다. 풀무원 관계자는 이런 CJ제일제당의 주장에 대해 “일단 발목부터 잡고보자는 속셈이다. 떳떳하면 어떤 기술이 도난당했는지 공개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에 유출된 기술이 두유 기술이 아닌 CJ제일제당의 또 다른 영업기밀일 수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 지금 CJ제일제당이 공개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CJ제일제당과 풀무원의 ‘악연’을 거론하기도 한다. 그동안 쌓였던 앙금이 폭발했다는 것. 지난 2005년 CJ제일제당은 풀무원이 독점하고 있던 두부시장에 뛰어들면서 ‘첨가제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당시 CJ제일제당은 자사의 두부가 기존 제품과 달리 첨가제를 사용하지 않는다며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이에 풀무원은 “소비자를 현혹하고 있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CJ제일제당이 출시한 두부는 지난해 점유율 20%를 넘기며 2년 만에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더욱이 CJ제일제당의 두부개발은 풀무원에서 이직한 B 씨가 주도한 것이어서 풀무원으로서는 아플 만도 했다. B 씨는 지난해 12월 풀무원에서 이직한 지 5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이번 사건이 터지자 풀무원 측에서 “CJ제일제당도 우리 쪽 직원이 가서 두부를 개발하지 않았느냐. 그것도 기술유출이냐”며 강력히 반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검찰 관계자는 양측의 첨예한 대립 때문인지 사건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하면서도 피의자 A 씨가 혐의의 상당부분을 인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풀무원으로서는 불리한 부분이다. 하지만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란 게 풀무원 측 입장이다.
CJ제일제당은 검찰수사와는 별도로 민사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을 도난당해 500억 원가량의 손해를 입었다는 것이 CJ제일제당의 주장이다. 기술개발비 및 제품 예상 판매비 등을 감안한 금액이다. 풀무원은 이에 대해 “해도 해도 너무 한다”며 CJ제일제당을 강하게 성토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