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국민이 들여오면 밀수인데 장관은 공식 석상에서 대놓고 써도 되느냐”는 공분이 터졌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지금, 무대와 소품만 바뀐 같은 연극이 다시 상연되고 있다. 이번 소품은 아이패드가 아니라 자동차, 정확히는 자동차 안에 담긴 소프트웨어다.
7월 10일 테슬라코리아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FSD 라이트’의 국내 배포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 배포지로 한국을 택한, 상징성이 작지 않은 결정이었다. 지난 5월 국산차를 모두 제치고 월간 판매 1위에 오른 차가 바로 테슬라 모델Y다. 그런데 정작 그 모델Y를 산 사람들 대다수는 이번 배포 대상에서 빠졌다.

대상 차량이 애초에 많지 않기도 하지만, 국내 2000명이 넘는 테슬라 오너가 모인 대표 카카오톡 단체방을 둘러봐도 실제로 FSD 라이트를 받았다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라, 대규모 적용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그중에서 필자는 오래전 구매 당시부터 FSD 옵션을 넣은 초기 미국산 모델을 몰고 있어, 순차 업데이트가 내 차에 닿기를 기다릴 수 있는 처지다.
회사의 약속 하나만 믿고 값을 미리 치른 뒤 몇 해를 묵묵히 기다린 사람에게 먼저 차례가 오는 것은 그 나름의 순리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순서를 정한 것은 그 기다림이 아니다. 내 차가 미국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 그것 하나다. 더 많이 팔린 중국산 모델Y를 산 이웃들은 더 새 차를 몰면서도 아예 대기 줄 밖에 서 있다.
순서를 기다리는 쪽이든 아예 줄 밖에 선 쪽이든, 지금 우리가 함께 들여다보는 것은 먼저 받은 이들의 영상이다. 초기 리뷰는 화려하다. 의정부에서 부산까지 451km를 단 한 번의 개입 없이 달렸다거나, 폭우로 차선이 지워진 길에서 스스로 가상의 차선을 그려 주행했다는 식이다.
그러나 같은 영상들을 끝까지 보면 아직 한계도 또렷하다. 하이패스 앞에서 차선을 고르지 못해 결국 사람 개입이 필요하고, 점멸등 앞에서는 과하게 멈춰서 뒤차를 당황시키며, 빗줄기가 굵어지면 ‘일시적 사용 불가’를 띄우고 스스로 물러나기도 한다. 애초에 FSD 라이트가 구동되는 3세대 하드웨어는 카메라 화질도 연산 성능도 4세대에 크게 못 미친다. 큰 모델을 압축해 옮긴 것이 원본과 같을 수도 없다.
그런데 중국산이 빠진 이유는 이런 하드웨어의 한계가 아니다. 국내에 팔리는 중국산 모델3와 모델Y는 이미 미국산 최신 차종과 같은 4세대 하드웨어를 얹고 있어, 연산 성능만 보면 부족할 것이 없다. 진짜 장벽은 서류에 있다. 미국산 테슬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안전기준 상호인정 조항 덕분에 미국 기준을 통과한 것만으로 국내에서도 자기인증을 받은 것으로 간주된다.
반면 중국산 차량은 유럽식 국제기준으로 인증됐고, 이 기준은 차선 변경을 어디까지나 운전자가 방향지시등을 손수 조작하는 것을 전제로 허용한다. 결국 기술의 우열이 아니라 무역협정이 어느 도로에서 손을 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셈이니, 소비자로서는 실소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오래된 의심 하나가 고개를 든다. 국내 완성차 업체가 자율주행 기술을 따라잡을 시간을 벌어주려 정부가 규제의 빗장을 서둘러 풀지 않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아예 현대차와 국토부를 합친 ‘현토부’라는 별명까지 붙였다. 그런데 이 장면도 낯설지 않다. 16년 전, 아이폰은 모든 휴대전화에 한국형 무선인터넷 표준 ‘위피(WIPI)’를 얹도록 한 규정 탓에 첫 출시국 명단에서부터 빠졌고, 국내 진입은 2년 가까이 늦어졌다.
그사이 삼성과 LG는 대응 전략을 짤 시간을 벌었다. 훗날 이석채 당시 KT 회장은 사내 이메일에서 “혁신의 아이폰을 도입했지만, 우리는 두 재벌회사가 그렇게 강력한 차단에 나설지 예상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삼성전자 이재용 당시 부회장이 최태원 SK 회장에게 아이폰 도입 유보를 요청했고 SK텔레콤이 실제로 이를 미룬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규제 당국이 음모를 꾸민 것은 아니었지만, 경직된 규제가 결과적으로 자국 산업의 방패가 되었고 그 그늘에서 기업이 움직일 여지가 생겼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이 의심을 사실로 단정하는 것도 성급하다. 국내 규정이 따르는 국제 안전기준 자체가 운전대에서 손을 완전히 떼는 방식을 아직 허용하지 않아, 국토부가 마음대로 빗장을 열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미국의 도로교통안전국조차 지금도 테슬라 FSD의 신호 위반과 악천후 성능을 조사하는 마당이니, 생명이 걸린 영역에서 정부가 신중한 것은 그 자체로 정당하다.
그러나 신중함이 곧 멈춰 서 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네덜란드는 유럽 도로에서 쌓인 수백만km 주행 데이터를 검증한 뒤, 테슬라가 '완전 자율주행'이라는 이름이 주는 환상을 걷어내고 '운전자가 감독하는 보조 기능'임을 인정한다는 조건으로 비로소 문을 열었다.
다시 16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그 소동에는 뜻밖의 반전이 있었다. 여론이 폭발한 바로 다음 날 방송통신위원회는 개인용 무선기기를 1인당 1대에 한해 전파인증에서 면제하겠다고 밝혔고,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해외 직구 인증 면제 제도가 그렇게 태어났다. 다만 뒷맛은 씁쓸하다. 규제가 스스로 앞서 나아간 것이 아니라, 여론이 터진 뒤에야 등 떠밀리듯 열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율주행 기술이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질문은 ‘자동차가 스스로 도로를 달릴 수 있는가’가 아니라 ‘제도가 스스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인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이슈가 터지기 전에, 스스로 판단해 열 수 있을 것인가. 16년 전 그 브리핑장이 그러했듯,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자동차 한 대도 결국 기술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얼마나 준비돼 있는지를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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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석 마이크로소프트 Tech PM journali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