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과세’ 힘받아 지배구조 ‘리모델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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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신격호 회장이 보유 주식과 부동산을 증여한 것을 두고 롯데가 2세 체제 강화와 관련이 있다는 추측이 돌고 있다. 롯데백화점(왼쪽)과 신 회장. | ||
신격호 회장은 최근 공시를 통해 보유 주식을 롯데미도파 롯데브랑제리 롯데알미늄 롯데후레쉬델리카 등 네 개 계열사에 증여했다고 알렸다. 이번 증여를 통해 롯데미도파는 롯데제과 등 7개 계열사 지분을 확보해 대주주 명부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지분 가치를 합하면 1700억 원 정도가 된다. 그밖에 롯데브랑제리와 롯데알미늄은 롯데건설 지분을 얻었고 롯데후레쉬델리카는 롯데로지스틱스 지분을 새롭게 보유하게 됐다. 3개 계열사가 취득한 지분 가치는 총 300억 원에 이른다.
경영권 승계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 롯데의 신 회장이 2세가 아닌 계열사들에 2000억 원대 지분을 증여한 이유에 대해 롯데 측은 ‘재무구조 개선 목적’이라 밝힌다. 해당 계열사들이 모두 결손법인들이라 총수 개인 재산을 증여해 이를 기반으로 재무상태를 개선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업계 인사들은 결손법인에 대한 증여가 별도의 세금을 물지 않는 것을 들어 ‘무과세 증여를 위한 선택’이었다는 데 무게를 싣는다. 롯데미도파와 롯데브랑제리는 롯데쇼핑이 각각 79.01%와 93.3%를 보유해 절대적 최대주주로 군림하는 회사들이다.
롯데쇼핑은 신 회장 차남이자 한국롯데를 물려받을 신동빈 부회장이 14.59%, 장남이자 일본롯데를 맡게 될 신동주 부사장이 14.58%의 지분을 보유해 최대주주에 올라있는 기업. 신동주-신동빈 형제 소유 회사에 신 회장 지분을 증여세 없이 몰아줘 향후 두 아들이 챙기게 될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번 증여를 롯데의 지주회사제 전환과 연결지어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롯데그룹은 롯데쇼핑과 롯데제과가 여러 계열사들 지분을 골고루 보유한 것을 골자로 해서 계열사 간 지분 보유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당장 롯데그룹 지배권이 위협받을 일은 없겠지만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 요구가 빗발치면서 롯데 역시 조만간 지주회사제로 전환될 가능성이 거론돼 왔다.
만약 롯데가 롯데쇼핑과 롯데제과를 양 축으로 유통과 제조업 분야로 나눈 양대 지주사 체제로 가려 한다면 이번 신 회장의 증여는 롯데쇼핑의 유통 자회사들의 재무구조를 튼실하게 해주는 작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신 회장의 이번 증여 과정은 지주회사제와 더불어 롯데가 2세들 간의 분가 가능성도 부채질하고 있다. 롯데후레쉬델리카는 신 회장으로부터 롯데로지스틱스 지분 4.99%를 증여받아 새롭게 대주주 명부에 이름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롯데후레쉬델리카는 지난해 10월 신 회장의 딸들인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과 신유미 씨가 각각 9.31%씩의 지분을 확보해 개인 공동 최대주주에 오른 회사다.
이 회사 지배구조에 총수일가 중 신 회장 딸들만 참여하게 돼 훗날 분가를 위한 포석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거론돼 왔다. 신동빈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롯데쇼핑 경영자로서 후한 점수를 받아온 신 부사장과 마찰이 없게끔 하려는 신 회장의 분가 작업 일환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얼마 전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신영자 부사장이 지배하는 계열사에 롯데쇼핑이 부당지원을 해줬다며 과징금 3억 원을 부과한 바 있다. 당시 공정위는 부당지원을 통해 발생한 배당금으로 총수일가가 롯데후레쉬델리카 지분을 사들였다고 밝혀 신 회장의 분가작업 진행에 대한 구설수를 낳기도 했다.
신 회장의 증여로 롯데후레쉬델리카가 대주주로 참여하게 된 롯데로지스틱스는 지난해 10월 물류사업 통합화 명분으로 롯데냉동과 합병한 뒤 지난해 12월 롯데쇼핑의 계열사에서 제외됐다. 결국 ‘딸들의 기업’으로 평가받는 롯데후레쉬델리카를 신동빈 부회장의 롯데쇼핑에서 분리한 뒤 사업영역과 지분율을 확장시켜줘 훗날의 분가 구도에 대비하려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롯데쇼핑은 앞서 거론한 대로 롯데후레쉬델리카를 계열사에서 제외했지만 최근 들어 해외 계열사 추가와 타 법인 지분 출자를 통해 몸집을 더욱 키우고 있다. 특히 최근 롯데장학재단과 관련된 부동산 매수과정이 눈길을 끈다.
롯데쇼핑은 지난해 11월 9일 그룹 산하 공익재단인 롯데장학재단으로부터 경기도 오산시 부산동 2번지와 4-1번지 일대 토지 10만 2399㎡(34만여 평)를 부지 확보 목적으로 사들였다. 공시된 매수가격은 약 1030억 원이다.
원래 이 부동산의 주인은 신격호 회장이었다. 신 회장은 해당 토지를 지난 1973년 3월에 사들였는데 지난해 10월 17일 토지 소유자가 롯데장학재단으로 변경됐으며 등기부등본엔 신 회장이 장학재단에 증여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 개발이 한창인 곳이라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금싸라기 땅을 공익법인에 넘겨준 것이라 더욱 눈길을 끈다. 그리고 불과 20여 일 만인 11월 9일 롯데쇼핑이 이 토지를 매입한 것으로 나타나있다.
이에 대해 롯데 관계자는 “해당 토지는 원래부터 롯데마트 물류센터 부지였으므로 완공에 맞춰 롯데쇼핑이 이를 인수하게 된 것”이라 밝혔다. 신 회장이 롯데장학재단에 증여하고 나서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이를 롯데쇼핑이 사들이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친 것에 대해 롯데는 “(신 회장이) 장학재단 기금 마련 차원에서 증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 회장은 장학재단에 거액의 부동산을 증여하는 과정에서 별도의 세금을 낼 필요가 없었다. 결국 롯데쇼핑이 1000억 원을 지불해 롯데장학재단의 몸집을 불려준 것이다. ‘공익’을 위한 장학재단을 튼실하게 한 것이 문제가 될 이유는 없어 보인다.
한데 최근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에 따라 공익재단에 대한 대기업 계열사의 무과세 지분 증여한도가 10%까지 확대된 것과 신 회장의 부동산 증여와 연결 지어 보는 ‘삐딱한’ 시각도 없지 않다. 롯데장학재단은 롯데삼강(4.46%) 롯데제과(6.81%) 롯데칠성(6.28%) 롯데정보통신(0.94%) 등의 지분을 골고루 확보해 이미 그룹 지배구조의 한 축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여러 가지 증여 건으로 구설수에 휩싸인 신 회장이 롯데장학재단 같은 공익재단을 적절히 활용할 가능성이 고개를 드는 대목이다.
신격호 회장의 장학재단 살찌우기가 지배구조와 관련 없는 ‘진짜 선행’이 아니라는 반증은 없다. 하지만 일각의 삐딱한 시선이 가시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