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대표팀 이끈 ‘전술가형’ 지도자…선수단 관리·수비 불안은 약점, 6경기서 경쟁력 시험대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전후로 대한축구협회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홍명보 전 감독 선임 과정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홍 전 감독 포함 축구협회 주요 인사들은 국회에 출석해 정치인들의 질문 공세를 받아야 했다. 조별리그 3경기 만에 탈락한 월드컵 이후 상황은 악화됐다.
홍 전 감독이 귀국 이전 월드컵 현장에서 사퇴를 발표하며 대표팀 감독직은 공석이 됐다. 정몽규 전 회장 역시 자리에서 물러났다. 감독 선임 작업을 진행하는 협회 전력강화위원회는 대표팀을 임시 감독 체제로 운영할 것을 결정하고 7월 30일부터 공개 채용을 시작했다.
약 1개월간의 공개 채용 결과, 대표팀 임시 감독으로 선임된 인물은 로베르토 모레노였다. 서류 전형과 온라인 면접이 진행됐고 현영민 전력강화위원장이 팀을 꾸려 유럽 현지에서 협상을 펼친 끝에 계약이 결정됐다. 대표팀 역사상 최초의 스페인 감독이다. 대표팀은 그간 러시아와 네덜란드, 포르투갈, 독일의 지도자와 인연을 맺은 바 있다.
코칭스태프 역시 스페인 출신으로 구성됐다. 에두아르도 도캄포 수석코치, 하신트 마그리냐 코치, 빅토르 브라보 데 소토 코치가 함께한다. 피지컬 분야는 하비에르 초카로 코치, 골키퍼 훈련은 니코 보쉬 코치가 맡는다. 수석 코치와 피지컬 코치는 이전에도 모레노 감독과 한 팀에서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다.
이들의 임기는 올해 11월 A매치까지다. 국제축구연맹은 그간 9월과 10월, 11월까지 세 번의 A매치 기간을 편성해왔다. 올해는 다소 달라졌다. 9월 말부터 10월 초에 걸쳐 4경기를 연달아 치른다. 조직력 증대에 어려움을 호소해온 국가대표팀들은 소집 기간을 보다 길게 가져갈 수 있게 됐다. 모레노 사단에게도 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들은 9~10월 4경기에 11월 2경기까지 총 6경기를 이끈다.
상황에 따라 임기는 늘어날 수 있다. 2027년에는 1월부터 곧장 아시안컵이 이어진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치르는 대회 중 월드컵 다음으로 큰 규모다. 언제나 대표팀은 대회 우승을 노린다. 축구협회 리더십에 공백이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들은 모레노 감독의 6경기 이후 평가를 통해 아시안컵까지 임기를 연장하는 조건을 계약에 포함시켰다.

로베르토 모레노 감독은 유소년 선수로만 활약하다 곧장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인물이다. 역대 대표팀 사령탑 중 성인 무대에서 선수로서 커리어가 없는 인물은 최초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 지도자를 선호해왔던 그동안과는 다른 축구협회의 선택이다. 최근 팀을 이끈 세 명의 외국인 감독(울리 슈틸리케, 파울루 벤투, 위르겐 클린스만)은 모두 자국 국가대표 선수까지 지낸 이들이다. 특히 슈틸리케와 클린스만 전 감독은 당대 최고의 선수로 불렸다. 비교적 커리어가 약한 것으로 평가받는 조 본프레레(2004~2005), 핌 베어백(2006~2007) 전 감독 등도 네덜란드 1부리그 선수로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선수 경력이 없던 그는 비교적 작은 클럽에서부터 지도자 단계를 밟아 나가야 했다. 자신의 출생지인 스페인 바르셀로나 인근의 소규모 구단에서 유소년팀 지도를 맡았다. UE 카스텔데펠스에서는 성인 1군 감독직까지 오르는가 하면 CF 담이라는 바르셀로나 연고의 명성 높은 유소년 전문 클럽에서 일하기도 했다.
모레노 감독이 스페인 축구 주류에 발을 들이기 시작한 것은 2010년이다. 바르셀로나 B팀을 이끌던 엔리케 감독에게 새 분석관이 필요했다. 구단 내에서 모레노와 인연이 있던 인물이 그를 엔리케 감독에게 추천했고 모레노 감독은 곧 바르셀로나 B팀의 분석관 업무를 시작하게 됐다. 이때까지 그는 생계를 위해 은행원 등 직장 생활을 병행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모레노 감독이 분석관으로 합류한 시즌, 바르셀로나 B팀은 2부리그 3위에 올라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이후 이야기는 알려진 대로다. 이후 둘은 AS 로마(이탈리아), 셀타 비고(스페인), 바르셀로나, 스페인 대표팀까지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함께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라리가, 스페인 국왕컵까지 우승하며 '트레블'을 달성했다.
모레노 감독이 엔리케 감독의 그늘을 벗어난 것은 2019년 6월이다. 엔리케 감독이 가족 문제로 갑작스럽게 스페인 대표팀을 떠나면서다. 모레노 감독이 빈자리를 메우게 됐고 9경기에서 7승 2무를 기록, 유로 2020 예선을 가볍게 통과했다. 다만 엔리케 감독이 복귀하면서 스페인 대표팀을 떠나게 됐다.
이후 AS 모나코(프랑스), 그라나다(스페인), 소치(러시아)에서 감독직을 이어갔다. 성과 면에서는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모나코에서는 부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팀의 단장이 바뀌면서 경질됐다. 그라나다에서는 성적이 문제였다. 결국 한 시즌을 마치지 못하고 경질됐고 이후 팀도 강등됐다.
소치에서는 비교적 긴 기간을 보냈다. 리그 최하위를 달리던 팀에 중도 부임했다. 결국 강등을 막지는 못했으나 다음 시즌 곧장 승격에 성공해 1부리그에 복귀했다. 이어진 시즌 초반 일정에서 리그 1무 6패를 기록하자 구단은 모레노 감독과의 결별을 택했다.
#모레노 감독이 보여줄 축구는
그렇다면 모레노 감독은 어떤 축구를 구사하는 지도자일까. 포메이션 측면에서는 수많은 바르셀로나 출신 지도자들이 그렇듯 4-3-3 형태를 기본으로 하되 고집하지는 않는다. 수비 시 4-4-2 형태를 만드는가 하면 공격 상황에서는 측면 수비수들을 높은 위치까지 올려 공격 지역에 5명을 배치하는 형태를 즐겨 사용한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짧은 패스를 지속하던 과거 스페인의 일명 '티키타카' 스타일과도 다소 차이를 보인다. 모레노 감독은 한쪽 측면에서 짧은 패스를 통해 상대 수비를 몰아넣은 이후 반대편 또는 라인 뒷공간을 공략하는 것을 즐긴다. 자기 진영에서 공을 돌리다가도 기회가 생기면 빠르게 공격을 진행하는 것이다. 다만 그는 기회가 생길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공격을 시도하다 공을 빼앗기면 빠르게 압박을 가하는 것을 즐기기도 한다. 최근 월드컵에서 스페인이 우승을 차지한 방식이다. 공과의 거리에 따라 선수의 압박 방식을 디테일하게 조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디어는 유럽 본토에서도 인정받는 인물이다. 결과를 내기까지는 이 같은 구상을 그라운드에서 실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모레노 감독은 그라나다와 소치 모두 성적이 부진했기에 결별을 피하지 못했다.
많은 선수들을 전진시키는 공격 방식은 수비 장면에서 어려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전방에서의 압박마저 시도하기에 상대가 이를 벗겨낸다면 위험한 장면이 나온다. 러시아 무대에서도 공격력만큼은 인정을 받았으나 실점을 억제하지 못했다.
기회가 생길 때까지 공을 점유하는 공격 방식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적극적인 공격을 시도하는 팀을 상대로는 공간이 생겨 수월한 경기를 펼칠 공산이 크다. 반대로 수비 지역에 많은 숫자를 놓는 팀에게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모레노 감독은 팀 관리, 소통 부분이 지적을 받는다. 팀이 위기를 겪는 상황, 선수들의 불만을 잠재우지 못하고 무너졌다. 새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부족함이 있었음을 스스로 인정하기도 했다. 본인은 억울할 수 있겠으나 엔리케 감독과 갈등으로 결별하는 과정, 소치 시절 막판, '인공지능(AI) 툴에 팀 운영을 의존한다'는 루머는 이 같은 약점 지적을 뒷받침한다.
모레노 감독은 전술가적 면모가 도드라지는 지도자다. 프로 선수로서 커리어가 없다. 그럼에도 분석가로서 큰 무대 경력을 시작해 자국 국가대표팀까지 지휘했다. 다만 세계적 명성의 빅클럽을 맡지는 못했다. '3개월 임시 감독' 제한이 달렸음에도 대한민국 대표팀에 지원한 배경은 분명하다. 자신에게도 큰 도전이 될 한국에서의 여정, 능력을 증명해야 할 모레노 감독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