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재원 마련이다. 박 당선인은 증세 없는 재원조달을 공언했다. 세출구조개선, 비과세감면축소, 지하경제양성화 등을 통해 전액을 조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마른 수건을 짜는 식으로 소요재원의 절반도 마련하기 어렵다. 더구나 소요재원을 과소하게 계산하여 실제 270조 원의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공약의 실현 가능성이 낮다. 공약을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오히려 경제불안, 재정위기, 복지위축의 3대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우선, 박 당선인은 세출구조개선을 통해 81조 원의 예산절감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는 전체 예산의 절반가량인 재량예산의 10% 이상의 절감을 요구하는 것으로 사실상 수용이 어렵다. 더욱이 재정사업을 축소할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를 더 위축시킬 수 있다.
25조 원 이상으로 예상하고 있는 비과세 감면의 축소도 쉽지 않다. 대기업의 최저한세율 인상, 금융소득종합과세 강화 등의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나 추가세수가 많아야 수천억 원 수준이다. 여기에 근로장려세, 부동산취득세 등의 감면을 확대하는 정책도 있어 비과세감면축소는 유명무실화할 소지가 있다.
더욱 문제는 29조 원의 세수를 창출하겠다는 지하경제의 양성화다. 물론 고소득층과 기업의 차명거래, 해외재산도피, 역외탈세 등은 철저히 막아야 한다. 그러나 지하경제의 전면적인 양성화는 국세청이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거래정보를 이용해 가족과 친지 간 금전대차, 자영업자 권리금거래, 혼례와 상례 부조금 등 관행적으로 과세가 이뤄지지 않았던 부문의 과세를 추진하는 것이어서 조세저항이 클 수밖에 없다. 특히 금융정보분석원의 정보가 탈세혐의가 없는 일반시민의 금융거래까지 노출시켜 사생활을 침해하고 국가가 감시와 통제를 위해 개인정보를 이용하는 빅 브라더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
한편, 정부부채가 468조 원으로 사상최고 수준인 가운데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빠진 것도 걸림돌이다. 지난해 우리 경제는 2.0%의 저성장률을 기록했다. 올해에도 이러한 저성장 기조는 계속될 전망이다.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세수는 2조 원이나 감소한다.
이렇게 볼 때 복지공약의 수정보완은 불가피해 보인다. 우선 복지정책의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의료비 지원이나 빈곤층 생계보조 등 급한 것부터 선별적으로 복지정책을 시행하고 점차 경제를 살리며 보편적 복지로 확대하는 단계적 추진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한편 우리 경제의 경우 기업 간, 계층 간 격차가 크다. 따라서 대기업의 법인세와 고소득층의 소득세의 세율을 높이는 부자증세방안을 사회적 동의를 거쳐 마련하여 복지재원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성장동력과 일자리 창출을 서둘러 복지수요를 줄이고 세수를 늘리는 정책을 펴야 한다.
선거공약은 무조건 실천하는 것이 최선은 아니다. 올바르게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신뢰의 정치이고 나라 발전의 길이다.
고려대 교수·전 총장 이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