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당하는 인수위…허니문 벌써 끝?
▲ 진영 부위원장(왼쪽)과 윤창중 대변인이 인수위 비공개회의에 대한 브리핑을 하는 모습. 기자들이 인수위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오전과 오후 브리핑이 전부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현재 인수위 출입 기자는 세 부류로 나뉘고 있다. 하나는 박근혜 당선인의 집무실이 있는 통의동과 삼성동 자택 앞에서 ‘뻗치기’를 하는 말진 기자군, 공동기자회견장과 브리핑1, 2, 3룸에서 하세월하고 있는 중진 기자군, 그리고 사내 인트라망만 켜놓은 채 인수위 주변에서 놀고먹는(?) 선임 기자군이다. 고생하는 부류 따로, 노는 부류 따로인 통에 언론사 내부에서의 선후배 관계가 헝클어지고 이에 대한 탓을 인수위로 돌리는 웃지못할 해프닝도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새 정부의 청와대 2진으로 출입하라는 지시를 받은 한 중앙지 기자의 말이다.
“각 언론사가 영남권 출신 기자들을 찾아 청와대로 가라고 하고 있지만, 대언론관이 적대적으로 보이는 새 정부를 꺼리는 고참 기자들이 많아 애를 먹고 있다. 출근한 오늘 인수위 기자회견장은 평소보다 사람들이 절반가량 줄었다. 밥 사주는 사람도, 술 한 잔 하자는 사람들도 없어 월급이 축나고 있다는 푸념도 많다. 청와대에 출입하면서도 이런 언론 접촉 기피 현상이 이어지면 개고생 할 수밖에 없어서 선뜻 내가 하겠다고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인수위 내부구조도 기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인수위 브리핑룸이 모두 틔어 있어 단독 기사나 특종 기사를 쓰기 어렵다고 판단한 중앙지 A 사, 중앙경제지 B 사, 공중파 C 사 등이 인수위 주변에 있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를 임대했지만 결과적으로 “너무 오버한 것 아니냐”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대선 정국에서 다소 박 당선인에게 우호적이었던 다른 중앙언론도 정보 차단의 예외가 아닌 통에 인사와 관련해 비판조로 돌아서기도 했다. 특히 김용준 첫 국무총리 지명자에 대한 검증 보도에 가장 열성적으로 임하면서 특종을 한 것도 이들 언론사였다.
뒷얘기지만 김 전 후보자가 사퇴하기 직전 이들 언론사는 국회 도서관과 법조타운 등으로 기자들을 보내 ‘김용준 판결 내역’을 샅샅이 뒤졌다는 후문이다. 아들의 병역, 부동산 투기 등 도덕성뿐만 아니라 ‘사법부의 수장’으로서의 이미지도 흠집 내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비쳤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를 출입하면서 인수위에 파견된 기자들은 그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청와대의 불만을 전하기도 했다. 사실 인수위로 쓰이는 한국금융연수원과 청와대 기자실인 춘추관은 지척 거리에 있다. 춘추관 내에는 체력단련실과 목욕탕이 설치돼 있는데 이곳을 오가는 기자들이 많다. 그들이 들은 ‘청와대의 불만’은 이랬다. “인수위 내에서 기삿거리가 너무 없으니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 사면 기사나 4대강에 대한 감사원의 부실의혹 결과 발표 등이 너무 부각되는 것 아니냐?” “정권이 교체되는 것보다 더하다”는 것 등이다.
문제는 언론이 새 정부에게 다소 적대적인 분위기로 전환하면서 ‘충돌의 세기’가 점차 커질 것이란 우려에 있다. 김용준 전 총리 후보자가 그 직을 사퇴한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지난달 29일 오후 7시쯤이다. 약 1시간 20분 전인 오후 5시 40분에 인수위 기자실로는 떡볶이와 귤이 배달됐다. 김 당시 후보자가 기자들에게 수고한다는 차원에서 돌린 것인데 일각에서는 “언론의 매운 맛을 톡톡히 봤다. 너희들도 매운 맛 좀 보라”는 차원이 아니었겠느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너무 매워서 다음날 고생한 기자들도 있었다고 한다. 우호적인 제스처도 기자들 사이에서 삐딱한 시선으로 해석되는 것만 봐도 현재 인수위와 언론의 소통이 얼마나 먹통인지 알 수 있다.
기자들이 정보원과 ‘거래’가 안 된다는 푸념도 심심찮게 들린다. 원래 정치권은 정치부 기자들로부터 상대 당의 정보를 전해 듣는다. 언론은 정치권의 동향을, 정치권은 언론 동향을 교환해 보이지 않는 ‘거래’가 성사돼 온 셈이다. 하지만 박 당선인 주변부와 인수위 측에서는 최근 그 어떤 동향 파악도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안이 언론에 흘러들어갈 경우 경위를 파악하기 때문이란 말도 들리고 있다.
최근 각 언론사는 ‘박근혜 다시보기’에 돌입하고 있다고 한다. 당선 전후를 살펴 박 당선인의 통치능력에 의문을 표하겠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첫 번째가 박 당선인의 공약 검증이라고 한다. 처음부터 실현가능했는지, 어떤 절차와 과정으로 공약화됐는지, 재원 마련에 대한 구체적 해법이 있었는지를 캐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가 인선 과정 캐기다. 박 당선인의 ‘친정 체제 구축’ 가능성이 커져 당사자들과의 연관 관계를 아주 과거에서부터 취재하겠다는 계획이라고 한다. 자기편만 쓰는지 여부를 따져 박 당선인의 일성인 ‘대탕평을 통한 대통합’을 이뤄냈는지를 근본부터 파헤친다고 한다.
그 다음은 박 당선인의 최대 약점으로 꼽히는 ‘소통’ 문제를 짚을 것이라고 한다. 원래 대변인 제도라는 것은 해외 출장 등 당선인이 할 수 없는 상황에 있거나 필요한 경우로 한정되는 것인데 박 당선인은 모든 입장을 대변인을 통해 밝히고 있다는 것을 문제삼을 기세다. 미국의 대통령이 카메라 앞에 자주 서서 국민과 소통하던 사례와 빗댄다는 이야기도 있다. 후보 시절 전국을 돌며 현장을 찾을 때와 당선 이후 칩거하던 모습을 대조적으로 다룰 가능성도 있다.
임명됐을 때부터 논란이 된 윤창중 인수위원회 대변인은 인수위 초반, 민감한 질문을 던지는 기자들에게 번번이 “어디 소속이냐?”고 물었던 것에 대해 기자들이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것이란 말도 있다. 소속을 물어 새 정부에서 불이익을 주겠다는 뜻으로 읽혔다는 것이다. 최근 박근혜 당선인의 한 측근이 기자들과 만나 이런저런 사정을 전해들은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전해만 듣고 대책이 없다면 만사불통이다.
선우완 언론인
정치인 언론 기피 신풍속도 ‘기사에서 내 이름은 빼다오’ 김황식 총리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반대로 흐르는 묘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조각 하마평에 자신의 이름을 쓰지 말아달라는 로비가 잇따른다는 것이다. 최근 모 장관직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인사의 말이다. “그 직이 싫어서가 아니다. 언론에 이름이 나오면 기용이 안 된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언론에 이름을 타는 사람을 박 당선인이 싫어한다는 이야기도 있더라. 박근혜 당선인 주변부에서도 바라보는 시각이 그렇다고 한다. 언론을 통해 ‘자가발전’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되도록이면 내 이름은 좀 빼달라.” 지난 대선정국에서 신문과 방송은 새누리당 의원 모시기에 애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박 당선인의 의중과 다른 발언을 했다간 눈 밖에 나기 때문에 ‘언론 기피 현상’이라는 신풍조가 조성된 바 있다. 당선 이후에도 이런 분위기가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다. 김용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 국무총리로 지명되기 전, 기자들 사이에서는 ‘김황식 유임론’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사람을 찾지 못해 애를 먹기보다는 현직 총리를 6개월 정도 유임해서 쓰면서 사람을 찾을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논리도 있었고, 호남 출신(전남 장성)이니 박 당선인의 ‘대탕평’과도 어느 정도 궤를 같이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특히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김 총리가 이명박 정부에서 가장 잘한 인사였다는 말과 함께, 총리실 내부에서도 김 총리 천거에 대해 부정적인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한다. 특히 연평도 포격 1주기 추모식에서 비가 내리자 경호팀장이 우산을 펼쳤는데 “됐습니다. 우산 치우십시오”라고 한 것, 지난해 정부 시무식에서 권위주의적인 냄새가 난다며 “차렷, 경례 하는 절차는 빼라”고 한 것을 두고 “소탈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그 유임론은 기자들이 그의 유임을 원했기 때문에 알아서 쓰지 않은 케이스라고 한다. 언론의 하마평에 오르면 무조건 쓰지 않는다는 기류가 커서 김 총리 유임을 원하는 정치권과 기자들 사이에서 “거론하지 말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김 총리가 자신의 유임설이 조금씩 나오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이라며 일축하자, 많은 사람들이 크게 실망했다는 이야기가 회자하고 있다. 총리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김능환 전 선거관리위원장의 입에서 “사법부의 최고위직인 대법관을 지낸 (자신이) 행정부를 총괄하는 총리를 맡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한 것을 두고 법조계 출신 총리는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인선의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지 못하는 것을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언론과 너무 거리를 두고 있는 박 당선인이 자초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선우완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