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 안 시켜준 가카에 되레 감사”
나꼼수 전 멤버였던 정봉주 전 의원이 수감생활을 끝내고 대외활동을 재개했다. 근데 예전의 그 ‘깔때기’와는 뭔가 좀 다르다. 여전히 들이대긴 하지만, ‘깔때기’가 좀 진지해졌다. 지난 2011년 겨울, BBK사건과 관련해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돼 1년간 수감생활을 마치고 만기 출소한 민주통합당 정봉주 전 의원이 이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그는 출소하자마자 강정마을 등 현장을 누비는가 하면, 수감기간 ‘사색의 결과물’을 정리한 저서 <대한민국 진화론>을 출간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1월 30일 홍대의 한 카페에서 2시간 넘게 진행된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중간 중간 본인 특유의 ‘위트’를 놓치지 않았지만, 시종일관 진지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털어냈다.
▲ 정봉주 전 의원은 “나무가 겨울에 다 죽은 것 같지만 결국 봄이 온다”며 “지금 민주당은 혹독한 겨울이지만 봄은 올 것”이라고 말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반갑다. 요즘 무척 바빠 보인다.
▲이번에 출간한 <대한민국 진화론> 때문에 전국을 돌며 사인회를 하고 있다. 출판사에서 어찌나 그렇게 사인회를 많이 잡아놨던지 소화하느라 아주 힘들다. 사람들은 별로 오지도 않았는데.
―책에 본인의 정치철학은 물론 이번 대선과 남북문제까지 참 많은 내용을 담았더라.
▲수감 시절부터 지승호 작가와 대담형식으로 정리했다. 이 책 한두 번 봐서는 안 된다. 이 한 권으로 정치인들이 모든 공부 끝내게끔 했다. 이것만 보고도 정치 20년은 할 수 있다. 강론에서부터 거대 담론까지 다 담았다. 반짝 히트가 아니라, 향후 2~3년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가 목표다.
―저서 출간도 그렇지만, 출소 이후 정치권 밖 현장 활동이 꽤 많다.
▲그렇다. 출소하자마자, 덕수궁 쌍용차 시위현장, 평택 와락센터, 한진중공업 시위현장, 강정마을 등을 다녀왔다. 쟁점이 있는 곳은 거의 다 다녀왔다. 원래 정치인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은 이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다. 오히려 가서 많이 배웠다. 착한 사람들이 너무 많더라. 와락센터에 가보니, 감옥에서 3년 살다 온 분들이 있더라. 그 사람들이 도둑질을 했나, 강도질을 했나. 월급 더 달라고 파업한 것도 아니다. ‘나도 회사가 돈 버는데 일조했으니, 내쫓지 말아 달라’고 너무나 당연한 것을 요구한 거다. 그런데 국가 권력과 몇몇 기업이 결탁해서 이런 사람들 내 쫓은 거다. 와락센터에 가니 ‘나꼼수 때문에 돈이 많이 들어와서 센터도 만들 수 있었다’며 되레 고마워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사할 줄 아는 그 분들 때문에 내가 참 미안했다.
―이번 대통령 특사 명단에서 제외됐다. 실망했을 법한데.
▲전혀. 내가 복권됐으면 난 죽는 거다.
―무슨 말인가.
▲곧 재보선 선거가 있지 않나. 원래 재보선은 야당에 불리하다. 내년 지방선거까지 민주당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복권되면 당에서는 나보러 재보선에 나가라고 했을 것이다. 그렇게 나가면 무조건 떨어진다. 정봉주가 차기 대선 유력 후보라고 생각하는 민주당 사람들이 날 내보내서 떨어뜨리려고 했을 것이다. 오히려 복권 안 시켜준 이명박 대통령(MB)이 고맙다. 이건 하늘의 뜻이다. 다만 내가 법무부 최종 명단에 올라갔다는 것은 사실이다. 최종적으로 떨어졌지만, 서운한 건 없다.
―당 지도부가 새롭게 꾸려졌지만, 여전히 당내 구심점이 될 만한 ‘인물’이 없다.
▲정봉주 전 의원. |
―안철수 귀국 이후, 당 개편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데.
▲당을 깨거나 다시 만드는 것은 무척 어리석은 짓이다. 내가 출소 이후 국회에 가서 “60년 역사를 갖고 있는 자랑스러운 민주당 당원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하지 않았나. 민주당은 역사가 있다. 국민도 다 안다. 국내 정치사에서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성공한 사례는 없다. 나도 민주당 나갈 생각이 없다. 언젠간 정봉주 때문에 민주당을 지지하는 세월을 반드시 오게 할 거다.
―정봉주가 민주당을 접수한다? 당에서는 무서워하겠다.(웃음)
▲원래 당에서 나와 팬 카페를 무서워한다. 정봉주는 회원 21만 명이 넘는 팬 카페가 있는 사람이다. 현재 민주당에서 활성화된 당원들보다 훨씬 많다. 당이 안 되면 언젠가 내가 더 큰 힘을 갖고 민주당 덮어버리겠다. 내가 당의 확대 발전적 재생산을 할 수도 있다는 거다.
―그럼 현재, 정봉주가 생각하는 당의 개혁은 뭔가.
▲밖에서는 민주당 간판 빼고 모든 것을 다 바꿔야 한다고 하지 않나. 국민들이 욕도 많이 한다. 그런데 뭘 바꾸고 반성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일각에서는 공천을 통해 70~80%를 물갈이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건 현실에서 불가능하다.
―현실적인 방안은 뭔가.
▲준비하라! 그리고 준비는 바로 공부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정책 중 국민들에게 꽂힌 게 있나. 없다. 후보 단일화만 외쳤지 잘 한 게 없다는 얘기다. 앞으로 철저히 반성하고 준비해야 한다. 준비는 어떻게 하느냐. 결국은 의원들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 내가 그동안 갖고 있던 모든 것을 버리고 공부를 통해 국민이 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특히 인문학을 통해 국민의 본성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나마 새누리당 구성원은 각 분야에서 공부하던 사람들이다. 그 철학적 근본이 잘못됐을지언정, 나름의 체계는 다 있다. 그런 면에서 새누리당이 민주당보다 조금 더 낫다고 볼 수도 있다.
―최근 민주당 내에서 여러 정책 연구 모임이 나오고 있기는 하다.
▲방향은 잘 잡긴 했는데, 포인트를 놓치고 있다. 왜 그런 모임들은 하나같이 다 흐지부지되는지 아나? 진짜 공부하려는 게 아니라 오로지 나의 힘을 키우려하기 때문이다. 만약 공부하려고 한다면, 그런 개별 모임보다는 당 차원에서 시스템을 마련해서 체계적으로 했으면 한다. 당이 석학들도 모셔오고 시험도 치고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도올 민주당 회초리 들다’ 같은 제목으로. 안타까운 것은 총선이 너무 멀리 있어서 아직 절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찌됐건 앞으로 5년은 박근혜 시대다.
▲난 박근혜 당선인이 성공하길 바란다. 나 예전에 MB 공격했어도, MB정권 성공하길 빌었다. 어찌됐건 우리 국민들 모두 박근혜가 운전하는 차에 탔다. 이 차가 벼랑에서 떨어지면 국민들 다 죽는 거다. 박근혜를 지지한 51.2%만 탄 게 아니라 전 국민이 탄 거다. 쇼트트랙을 비유하자면, 내가 우승 못했다고 다른 파벌 선수 금메달 못 따게 하면 안 된다는 거다. 박근혜 미워 죽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다고 멸망을 기원해서는 안 된다.
―최근 들어 인수위 내 인사 문제를 두고 벌써부터 박 당선인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런 각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나 스스로 약속했다. 일단 박근혜 욕하지 않겠다고 내 스스로 허니문 기간을 세웠다. 그 대신 ‘잘 해라’ 이거다. 아니면 내 회초리는 무척 매서울 거다. 대선에서 90% 가까이 투표했던 50대 유권자들도 지켜볼 것이다. 이들은 60~70대 지지자처럼 ‘몰빵’한 게 아니다. 6·10항쟁 주역이고, 노무현 정권도 만들었던 비판적 지지자들이다. 잘못하면 바로 뒤돌아설 것이다. 지금은 그냥 지켜보겠다.
―사실 정봉주 하면, ‘나꼼수’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그렇다. 분명 나꼼수를 통해 국민적 지지도가 높아졌다. 사실 내가 나꼼수에 나선 이유는 정치의 ‘탈 권위’ 때문이었다. 그냥 깔때기를 들이댄 게 아니다. 정치를 소프트화 시킬 필요가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 내가 망가진 거다. 원래 정치인은 광대정신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권위주의로 흐른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날 가볍게 보더라. 아무리 좋아도 가볍고 재밌는 사람을 큰 선거에서 찍지는 않지 않나. 이것 때문에 철저한 고민을 했었다. 그런데 문제가 한 방에 해결됐다.
―그 한 방이 뭔가.
▲고맙게도 이명박 대통령께서 나를 감옥에 넣어줬다. 이 한 방이 내 이미지를 변화시켰다. 내가 이제 아무리 까불어도 애잔하게 보더라. 각하가 내 이미지를 바꿔 준 거다. 나의 스토리가 하나 더 생긴 거다. 그 스토리에서 각하는 악역이었고 엑스트라였던 것이다. 다만, 난 MB가 승승장구할 때, 공격한 사람이다. 소설 <레미제라블>에 “권력자가 승승장구할 때, 그를 비판하는 자만이 그가 몰락할 때 심판할 자격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MB를 심판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근데 이제 난 그것을 국민과 역사에 맡겼다. 언젠가 반드시 평가는 나온다.
―이제 ‘나꼼수’ 같은 팟캐스트 방송 계획은 없나.
▲금강경에 이런 얘기가 있다.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리라’. 집착을 버리고 다음 세계에 나가라는 것이다. 나꼼수가 날 만들어줬지만, 거기에 연연하면 안 된다. 이제 정치인의 길을 가겠다.
―사실, 나꼼수의 한계가 지적되기도 한다. 이번에 저서를 통해 쓴 소리도 했다.
▲‘만약 내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수감되고 방송에서 빠지면서부터 결국 나꼼수도 공부 안하고 취재도 안하고 그냥 말로 먹고 살았던 거다. 내가 있을 때와 없을 때를 비교해 봐라. 내가 있을 때는 내용에 대한 긴장감이 있었다. 그런데 이후 그게 다 떨어졌다. 새로운 내용이 없었다. 내가 국회에서 취재거리를 찾으면 주진우가 취재하고 주진우가 정보를 가져오면 내가 묶고, 이런 식으로 진행됐다. 까불고 웃는 건 수단이었다. 그런데 이게 다 붕괴 된 거다. 팥 없는 빵을 만들어 버린 거다. 김어준은 진행자였지, 원래 새로운 내용을 가져온 것은 없다. 내가 빠지고부터 김어준은 자기 추정으로 ‘구라’에 빠졌다. 내용이 뚝 떨어진 거다. 그럼 누가 듣겠나.
―이제 곧 경북 봉화(그의 본관)에 내려간다고 들었다.
▲내일 집 보러 내려간다. 봉화에 내려가는 건, 은둔이 아니라 나도 공부하러 가는 거다. 내가 봉화에 내려간다니까, 거기 청년지도자들이 무척 좋아하더라. 부산 팬 한 분은 내게 당나귀를 보내준다고 했다. 원래 당나귀가 ‘정복’의 상징이다. 몽고 기마병들도 말이 아닌 당나귀를 타고 세계를 정복했다. 거기 내려가면 차 대신, 걔네들 등에 노트북을 매단 안장을 설치해 타고 다닐 거다.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웃음)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도피성 출국 소문의 진실 “김어준·주진우 쫄지말고 돌아와라”
대선 직후인 지난해 12월 22일 돌연 출국한 <딴지일보> 김어준 대표와 <시사인> 주진우 기자는 현재 프랑스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봉주 전 의원은 “얼마 전 주진우와 통화했다. 둘 다 프랑스에 머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상황이 안 좋아서 나간 게 맞다. 주진우는 지금 들어오고 싶어 한다. 통화하면서도 내가 주진우 한테 들어오라고 다그쳤다. 사실 두 사람 모두 현재 상황에 대해 과도한 해석을 하고 있다. 막말로 검찰에서 구속하고 기소하면 그만이다. 많이 살아봤자 8개월 정도다. 나가 있을 이유가 없다. 실제 검찰이 하고 있는 것도 아무 것도 없다. 김어준이 원래 겁이 많은 사람이다. 주진우는 조만간 들어올 수 있어도, 김어준은 5년 동안 안 들어올 수도 있다”며 그간 떠돌던 ‘나꼼수 도피설’이 사실임을 인정했다. 항상 ‘쫄지마’를 외치던 이들의 언행과는 상반되는 행동인 셈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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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클럽 미권스’의 정치실험 협동조합으로 전환 계획
정봉주 전 의원이 본인의 팬클럽 ‘정봉주와 미래의 권력들(미권스)’을 조만간 협동조합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전 의원은 “21세기 운동은 협동조합운동이다. 정당은 앞으로 준 CSO(시민사회조직)가 돼야 한다. 정당이 국민으로 파고들어 가 공부방도 구해주고 결손 아동 밥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거다. 특히 협동조합 운동은 21세기 운동이다. 당이 별도의 협동조합을 만들어 끌고 나가면 진짜 생활정치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선 우리 미권스가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려 한다. 팬클럽을 실천적 조직으로 바꿔나가 보겠다는 것이다. 현재 구체적인 사업과 관련해 계획 중이다”며 자신의 정치 실험에 대해 설명했다. 정치인 팬클럽이 간헐적인 봉사활동과 사회적 기여 활동에 나선 사례는 있었지만, 직접 ‘협동조합’을 조직하는 것은 미권스가 처음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을 새롭게 제정했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농·어업 등 1차 산업에 한정해 협동조합을 구성할 수 있도록 제한했지만, 올해부터는 조합원 5인 이상만 있으면 출자 규모와 상관없이 다양한 분야의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 협동조합은 개인적 이득을 추구하는 기업과 달리 조합원은 물론 사회적 공익을 추구하는 다양한 경제적·사회적 활동을 전개해 나간다. 기존의 사회적 기업과 더불어 대안적 경제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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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 나꼼수 고소·고발건 박정희 명예훼손 혐의 등 8건
현재까지 알려진 나꼼수의 고소·고발 건은 총 8건이다. 박지만 EG 대표는 지난 2011년 11월부터 나꼼수 멤버들을 상대로 박정희 전 대통령 사자 명예훼손과 5촌 조카 살인사건 의혹 등 허위사실유포혐의로 줄줄이 4건의 고소장을 제출했으며 박근혜 당선인은 지난해 5월 나꼼수가 ‘박근혜-박태규(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 커넥션’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것을 문제 삼아 고소장을 제출했다. 총선 직후였던 지난해 4월 16일에는 언론인 신분으로 선거운동기간 동안 수차례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는 것이 문제가 돼, 선관위로부터 고발당했다. 지난해 12월 13일에는 박 당선인의 굿판 의혹과 신천지 관계설을 제기해 새누리당으로부터 고발당한 상태다.
가장 급한 건은 국정원 고소 건이다. 김 대표는 지난해 12월 16일 방송을 통해 당시 박근혜 캠프 SNS 미디어단장 윤정훈 목사 배후에 국정원의 지원이 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은 이를 문제 삼아 다음날 김 대표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 1부는 지난해 12월 20일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지만, 그들에 대한 출두계획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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