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 살해·존속범죄·아동학대 사망 잇따라…폭력·갈등 누적에도 신고·분리 등 예방체계 허술
가장 가까운 관계인 가족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경찰청 범죄통계를 분석한 결과 최근 3년 동안 살인기수(피해자가 숨진 살인사건) 혐의로 검거된 피의자 가운데 피해자가 가족·친인척인 비율은 절반 안팎을 유지했다. 가족 내부에서는 폭력과 경제·재산 갈등, 오랜 불화가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채 누적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사적인 가족 문제로 치부해 신고와 외부 개입이 늦어지면서 강력범죄로 번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관계성 범죄에 “전쟁을 선포한다는 각오로 대응하라”고 지시했지만, 반복되는 폭력을 조기에 포착하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 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지가 관건이다.

지난 10월 11일 서울 송파구에서는 김성우(26)가 별거 중인 아내의 어머니를 흉기로 살해하고 아내를 차량에 태워 납치한 혐의로 구속됐다. 김성우는 앞서 아내를 폭행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었으며 법원은 8월 22일부터 9월 30일까지 퇴거와 100m 이내 접근금지 등의 임시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김성우는 임시조치 기간에도 9차례에 걸쳐 아내를 스토킹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10월 6일 추가 접근금지를 신청했지만 법원의 결정이 나오기 전에 범행이 발생했다. 김성우는 지난 9월 16일부터 범행 당일까지 모두 18차례 처가 주변에서 아내를 기다리는 등 스토킹한 것으로 파악됐다.

자녀가 부모를 공격하는 존속범죄도 잇따랐다. 10월 22일 서울 강서구에서는 40대 여성이 함께 살던 60대 친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돼 구속됐다. 하루 전에는 서울 강동구에서 30대 여성이 말다툼하던 60대 아버지를 흉기로 찌른 혐의로 현행범 체포됐다. 지난 9월 경기 안산에서도 50대 여성이 노모를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반대로 보호자여야 할 부모가 자녀의 생명을 빼앗는 사건도 이어졌다. 지난 3월 울산 울주군에서는 30대 아버지와 7세·5세·3세 딸, 생후 5개월 아들 등 5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와 부검 결과 등을 토대로 아버지가 네 자녀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판단했다. 해당 가정은 건강보험료와 월세를 체납하는 등 생활고를 겪고 있었고, 자녀의 무단결석과 연락 두절로 학교와 관계기관이 여러 차례 가정을 방문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위험 신호가 포착됐지만 가족 전체의 위기를 살피는 적극적인 개입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최근 잇따른 사건이 예외적인 몇몇 사례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경찰청 범죄통계를 보면 살인사건에서 피의자와 피해자가 가족·친인척 관계인 비중은 최근 3년 동안 절반 안팎을 유지했다.
‘일요신문i’가 최근 3년간 경찰청 범죄통계의 ‘피의자와 피해자의 관계’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3년 살인기수로 검거된 피의자 291명 가운데 피해자와 가족·친인척 관계인 피의자는 160명으로 55.0%를 차지했다. 2024년에는 276명 중 131명으로 47.5%, 2025년에는 247명 중 126명으로 51.0%였다.

관계별로 보면 배우자와 전 배우자, 사실혼 배우자를 대상으로 한 살인기수 피의자는 2023년 55명, 2024년 51명, 2025년 48명이었다. 부모·조부모를 대상으로 한 경우는 같은 기간 43명, 30명, 36명이었고 자녀·손자녀 대상은 49명, 39명, 32명으로 집계됐다. 형제자매·사촌·기타 친족을 대상으로 한 피의자도 각각 13명, 11명, 10명이었다.
가족·친인척 관계인 살인 피의자의 절대적인 수는 2023년 160명에서 2025년 126명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전체 살인 피의자 수도 같은 기간 291명에서 247명으로 줄면서 가족 대상 범죄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절반 안팎에 머물렀다. 가족관계에 따른 강력범죄가 특정 관계나 일부 사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것으로 풀이된다.
신이철 원광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일요신문i’에 “일반적인 대인 범죄는 우발적인 시비나 금품 문제가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가족 대상 강력범죄는 가정폭력과 재산 갈등, 오랫동안 누적된 불화가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발생하는 특성이 있다”며 “서로 가까이 지내는 만큼 갈등이 더 커질 수 있고, 가족 내부의 문제로 여겨 신고가 늦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가족 대상 강력범죄가 잇따르자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10월 15일 가정폭력 등을 포함한 관계성 범죄와 무차별 흉악범죄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다는 각오로 대응하라”며 범정부 합동 대응기구 구성을 지시했다. 이어 23일 열린 ‘초안전사회 범정부 대응회의’에서는 가정폭력 발생 시 피해자가 집을 떠나는 대신 가해자를 주거지에서 우선 분리하는 ‘가해자 격리시설’ 운용 방안과 ‘친밀관계폭력 사망검토제’ 도입 등이 논의됐다.
신이철 원광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가정폭력은 가벼운 폭행으로 시작하더라도 반복되면서 강도가 세지고 결국 강력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반복 신고 등 위험 요소가 드러난 경우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더라도 위험성을 면밀히 평가해 고위험군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