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 주고 정 줬더니 ‘단물’만 꿀꺽
▲ 신준호 회장이 부산의 향토기업인 대선주조의 지분을 전량 매각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 ||
‘시원소주’의 대선주조는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부산 소주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알짜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1997년 IMF 사태 당시 부도가 나기도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회생, 2006년엔 178억 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부산의 주류시장은 배타적”이라며 “부산에서 대선주조를 이길 회사는 없다”고 말했다. 그만큼 부산 시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대선주조에게 지난 2004년 위기가 찾아왔다. 부산의 소주시장 진출을 노리던 경남지역 주류업체 무학에 적대적 M&A를 당할 위기에 처한 것. 이때 ‘백기사’로 등장한 이가 바로 대선주조 최병석 전 회장의 사돈이었던 신 회장이다. 신 회장은 2004년 5월 대선주조 지분 50.79%를 사들이며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그 이후 꾸준히 대선주조의 지분을 사들여 현재 신 회장과 그 일가가 가지고 있는 대선주조 지분은 98.97%에 달한다.
그런데 느닷없이 신 회장이 이 지분 전량을 매각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대선주조 측에 따르면 총 매각금액은 3500억 원가량이라고 한다. 신 회장 일가가 대선주조 지분을 획득하는 데 들어간 돈이 360억 원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불과 3년 만에 3000억 원대 차익을 남기게 된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부산의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다. 한 부산 시민은 “키워줬더니 은혜도 모른다”라며 신 회장을 비난했다. “신 회장은 투기꾼”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왜 그럴까. 대선주조는 부도가 났을 때 약 2000억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회사다. 또한 부산시에서도 직·간접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부산시는 신 회장이 대선주조를 인수한 후 신규 공장설립을 요청하자 그린벨트를 해제하면서까지 승인해줬다고 한다. 자연녹지였던 기장군 부지를 산업단지로 지정해줬던 것. 이것은 부산의 향토기업인 대선주조에 대한 애착이 컸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따라서 신 회장에 대한 부산시민들의 배신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대선주조 측은 이런 악화된 여론에 당황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회사 관계자는 “우리도 신 회장이 지분을 팔 줄은 몰랐다”며 “대선주조라는 회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부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이순전 팀장은 “신 회장의 지분은 사모펀드가 인수했다. 가격만 맞으면 누구에게도 다시 지분을 팔 수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즉 “이제 대선주조가 부산을 대표하는 향토기업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얘기다.
한때 대선주조의 경영권을 놓고 신 회장과 대립했던 무학 측은 신 회장의 지분 매각을 ‘호재’라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번 일로 인해 대선주조의 독점적인 지위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무학의 한 관계자는 “이제 부산사람들이 굳이 대선주조의 소주를 고집하겠느냐”라며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했다. 그동안 무학은 ‘우리가 대선주조와 남이가’라는 정서에 막혀 부산 소주시장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
▲ 대선주조의 시원 소주. | ||
이 때문에 “신 회장이 대선주조의 지분을 매각한 돈을 대선건설에 쏟아 붓는 것 아니냐”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 하지만 부산 시민들은 “도의상의 문제” “어떻게 롯데가 우리한테 이럴 수 있느냐”라며 신 회장을 성토하고 있다.
신 회장이 대선건설을 위해 대선주조를 이용했을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또 다른 정황이 있다. 대선건설은 2006년과 2007년에 각각 120억 원과 380억 원가량의 공사를 수주하며 급성장했다. 이 두 공사는 모두 대선주조에서 발주한 것. 2006년엔 대선주조 기룡지방산업단지 공사였고 2007년은 대선주조의 기장공장 신축공사였다.
2007년 공사는 부산시가 그린벨트까지 풀어주며 대선주조에 용지를 공급했던 공사이기도 하다. 회사명과 대주주만 같을 뿐 전혀 관련이 없는 대선건설과 대선주조의 이러한 거래에 대해 대선주조 측에서는 “그런 것은 최고경영자가 판단할 문제였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대선건설 역시 최근 논란에 휩싸인 탓인지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어찌됐건 신 회장은 대선주조 덕분에 대선건설을 빠른 시일 내에 키울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선주조를 매각하면서 막대한 차익도 챙기게 됐다. 부산시의 적극적인 지원 등으로 기업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부산 주류업계에서 “신 회장에게 향토기업 대선주조가 이용당했다”라는 말이 나돌고 있는 이유다.
신 회장의 지분 매각으로 심정적인 피해를 봤을 법한 곳이 부산 시민들 말고 또 있다. 바로 롯데그룹. 사실 신 회장이 회장으로 있는 롯데우유는 현재 롯데그룹과는 별개의 회사다. 지난해에 그룹으로부터 분리됐기 때문. 상호명도 올해까지만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롯데그룹 입장에서는 이번 일로 ‘롯데’가 거론되고 있는 것이 억울할 법도 하다.
더욱이 신 회장은 신격호 회장과의 사이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지난 1996년에 땅 소유권 문제로 소송까지 벌이며 다퉜기 때문. 그 이후 신 회장은 사실상 그룹 경영에서 제외됐으며 그러다가 지난해 롯데그룹으로부터 분가한 것이다.
재계 일각에서 신 회장의 건설 사업에 주목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지금은 어렵겠지만 후일 신 회장의 대선건설이 신격호 회장의 롯데건설과 경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롯데건설은 신 회장이 1982년부터 대표이사를 맡아 10년을 넘게 몸담았던 ‘친정’이기도 하다. 대선주조와 관련한 부산 시민들의 비난 여론을 뒤로하고 건설업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는 것으로 보이는 신준호 회장. 그의 ‘홍심(紅心·과녁의 정중앙)’에 무엇이 들어있을지는 그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