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녀’ 루이 떠나자 춘추전국시대
최정 3단(왼쪽)이 박지연 3단을 꺾고 여류명인전 2연패를 했다.
국내 여류 기전은 네 개가 있다. 여류국수와 여류명인이 쌍벽이다. 연조와 규모가 비슷하다. 여류국수전은 초창기 몇 년 동안은, 지금은 독일에서 함부르크를 중심으로 바둑을 보급하고 있는 윤영선 5단(36)의 독무대였다. 윤 5단은 1-2-3기와 5기를 제패했다. 4기 우승자는 이영신 5단(36).
그러던 중 1999년 당시 세계 최강의 여류, 세계 유일의 여류 프로9단이었던 ‘철녀(鐵女)’ 루이나이웨이(50)가 한국기원 객원기사로 들어오고, 이후 국내 여류 프로바둑은 루이의 천하가 된다. 루이는 여류국수전에서 6-7-8기, 11-12기, 14-15-16기 등 작년에 중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통산 8기를 우승했다.
여류명인전에서는 더했다. 2000년 창설 첫 해, 제1기는 박지은 9단(30)이 이영신을 이기고 타이틀을 차지했지만 루이는 2기부터 연승에 시동을 걸어 2-3-4기를 3연패했고, 5기 때 잠깐 조혜연 9단(28)에게 양보했으나 이후 2011년까지 6~12기를 7연패했다. 루이는 또 2006년에 생긴 여류기성전에서도 5기가 진행되는 동안 1-2-3기와 5기, 네 번을 우승하고 돌아갔다. 4기 때는 김윤영 3단(24)이 박지연을 꺾고 우승했다.
박지은 조혜연 말고도 루이의 전횡에 저항했던 젊은 후배들이 꽤 여러 사람 있었다. 여류국수전에서는 이지현 4단(34), 이하진 3단(25), 김윤영, 여류명인전에서는 현미진 5단(34)과 이다혜 4단(28), 여류기성전에서는 김세실 2단(25), 김혜민 6단(27), 그리고 가장 최근에 최정 2단이 루이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었다. 그러나 이들 중에 성공한 사람은 없었고, 박지은 조혜연을 포함해 도전자 전체를 통틀어 성공한 사람은 조혜연이 유일했다. 조혜연은 여류국수를 놓고 루이와 6번을 겨루어 1승5패했고, 여류명인에서는 8번을 쳐들어가 1승7패했다. 전적은 상처투성이의 그것이었으나 그래도 루이 일색으로 물들던 판도에 흠집을 내고 루이의 퍼펙트 투구를 저지한 사람은 조혜연뿐이었다. 조혜연은 말하자면 ‘조훈현 시대의 서봉수’였다.
조혜연과 함께 쌍두마차로 불렸던 박지은이 루이와의 타이틀매치는 단 한 번이라는 사실은 뜻밖이다. 박지은은 대신 국제무대에서 성적이 좋았다. 조혜연은 ‘주일 성수’라는 신앙의 지조를 위해, 대개 주말에 대국 일정이 잡히는 국제대회에는 참가하지 않는다.
루이가 떠난 후 ‘여류국수’는 지난해 박지연이 박지은을 제치고 가져갔고, 올해 18기에도 결승에 올라가 2연패를 바라보고 있다. ‘여류명인’은 최정이 지난해 김미리 2단(22)과 겨루어 타이틀을 차지했고, 이번에 박지연을 물리쳤다. ‘여류기성’은 2011년 10월 루이가 최정을 이겨 우승한 후 잠시 중단상태인데, 오는 4월에 6기를 시작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작년에 새로 생긴 여류십단전에서는 조혜연이 김혜민을 꺾고 첫 주인이 되었다. 기량에 비해 운이 따르지 않는다는 말을 종종 듣는, 입단 13년차(해가 바뀌었으므로 14년차)의 김 6단은 여류십단 준우승을 거쳐 1월 30일 국수전 결승에 진출, 박지연과의 3번기를 준비하며 생애 첫 우승을 꿈꾸고 있다. 사려 깊은 청년,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루이 떠난 마당에 요즘은 박지연과 최정이 팬들을 몰고 다닌다. 노래에 춤에 끼도 많아 보이고 자유분방한 이미지의 박지연. 얼른 보면 ‘소녀 이창호’ 같은 분위기지만, 볼수록 귀염성이 넘치는 얼굴의 최정. 오빠 프로기사들은 “최정과 대국할 때는 얼굴을 들지 않는다”고 한다. 최정 얼굴을 보면 그 천진함에 웃음이 나고, 집중이 안 되기 때문이란다. 또 대국 전 숙면은 비장의 무기다. 다음은 3국의 입회인 김덕규 8단(64)이 들려준 얘기다.
“2시부터 시작이지만 도로 사정이 어떤지 몰라 내가 좀 일찍 왔다. 12시 반쯤인가. 그런데 최정은 나보다 먼저 와 있었고, 소파에 앉아 잠을 자고 있었다. 처음엔 그저 눈만 감고 있는 것이려니 했는데, 아니었다. 아주 숙면을 하고 있었다. 1시간은 족히 잤을 것이다…^^ 희한한 일이다. 하하하.”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정의 대국 전 쪽잠-숙면은 아는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얘기. “자고 나면 피곤이 풀리고 기분도 가뿐해진다”는 것이다. 특별한 재주가 아닐 수 없다.
이광구 객원기자
지옥에서 천당으로 제14기 여류명인전 결승 3국 흑 - 최정 3단, 백 - 박지연 3단 <3도>는 <2도>에서 10여 수 진행된 상황. 좌하귀 흑1-3은 기민했다. 끝내기로 크며 지금은 끝내기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백은 4-6-8을 선수하고 10에 갖다 붙였는데 ― <3도> 다음 좌하귀에는 <4도> 흑1-3의 끝내기가 있다. 백은 A로 차단할 수 없다. 흑B로 끊으니까. 또 <3도> 흑1-3은 <5도> 백1을 예방하고 있다. 백1은 익혀둘 만한 산뜻한 맥점. A-B가 맞보기로 흑이 난처하다. <3도> 백10은 <6도> 흑1~7을 유도한 것이라고 한다. 집을 챙기라는 것. 그러면 <7도> 백1-3에서 5로 활용하고, 중앙 쪽의 두터움을 배경으로 좌변 흑을 공격하겠다는 것. 백5가 흑은 특히 아프다. 흑의 <4도> 끝내기가 없어졌다. 그런데 여기서 최정의 반격이 빛났다. <6도> 흑7로 끊지 않고 <8도> 흑1을 선행한 것. 이번에는 흑5가 백은 너무 아프다. 다음 언제든 흑A로부터 B-C-D-E까지가 전부 선수. <1도> 백5를 당해 실점했던 흑이 여기서 만회했다. 이광구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