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절대 정신병자 아니야. 미치지 않았어.”
그는 정신이 말짱하다는 걸 극력 강조했다. 흥분한 그의 감정을 진정시키고 싶어 물었다.
“엄마하고 어떻게 살았어?”
엄마나 자식을 연상시키면 대개 부드러워졌었다.
“엄마? 깩했지.”
죽었다는 뜻이다. 그는 갑자기 엄마가 생각났는지 뒤로 넘어가면서 오열했다. 그는 변호가 아니라 치료의 대상이었다. 그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가 그의 내면에 뭐가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물었다.
“왜 때렸어?”
그는 버스정류장에 앉아있는 멀쩡한 여자의 뺨따귀를 후려치고 감옥에 들어와 있었다.
“그 애? 고급아파트에 살아. 거기 외부인 출입금지야. 경비가 아무도 못 들어가게 해. 대한민국에 그런 X 같은 데가 많아. 이명박 X 같은 새끼야.”
그의 내면에는 독한 증오가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증오에 분노의 불씨가 떨어져 폭발이 되고 자신마저 찢겨나간 경우였다.
지금 우리사회의 밑바닥에는 중세의 페스트균같이 질투와 증오가 만연되어 있는 것 같다. 총리나 장관후보자에게 묻은 먼지 한 점까지 까뒤집는 현상의 배경에는 독한 시기와 미움의 균들이 가득한 느낌이다. 조금이라도 눈에 띄는 사람은 미움의 대상이 된다. 시장, 성직자, 연예인 등 잘나면 댓글과 모함으로 죽이려고 한다.
이 세상 60년을 살아본 결과 어차피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거다. 머리가 둔한 난 학생시절 수재를 보고 기가 죽었다. 부잣집 아이가 부러웠다. 어른이 되어서는 잘나가는 동료들을 보고 샘이 났다. 질투와 시기는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홧병을 가져올 것 같았다. 불공평한 세상 그 자체를 인정하기로 했다. 어차피 조물주는 사람마다 아이큐를 다르게 만들었고 돈복에 차이가 나게 했다. 인정하지 않으면 어쩌란 말인가. 내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엊그제 신문 사회면에 난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다. 서울남부교도소 324명이 다시 쓰는 인생노트를 감사, 두 글자로 채우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오늘은 번호가 아니라 교도관이 내 이름을 불러주어서 고맙다는 문장도 있었다. 교도소의 국과 밥이 따뜻해서 감사하다는 것도 보였다. 숨 쉬는 것조차 감사하는 순간 인간의 모든 세포는 생생하게 살아난다. 대한민국도 따뜻해지려면 복지와 함께 ‘감사’ 운동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