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꿔주고 고리로 ‘뇌물’ 받았다
이번에 적발된 공무원들은 서류 허위 조작은 물론 ‘대부업’을 연상케 하는 신종 뇌물 수수 수법으로 충격을 줬다.
지난해 12월 원주시청 상하수도본부 소속 공무원들의 비리 정황을 잡고 사무실에 출동한 경찰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발견했다. ‘기동수리반’이라 불리는 공무원 9명이 모두 비슷한 겨울 점퍼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조금씩 달랐지만 한 벌에 40만 원에 달하는 유명 메이커의 점퍼를 입고 있는 게 영 수상했다. 경찰이 이를 따져 묻자 기동수리반장 A 씨는 “팀원들이 겨울철에 궂은일을 많이 하고 고생하기에 점퍼를 구입해 주었다. 점퍼 비용은 건설업자가 대 주었다”고 순순히 시인했다.
A 씨는 납품을 하지도 않은 제품을 건설업자가 제공했다고 서류를 허위 조작해, 공금 575만 원을 편취하고 건설업자와 나눠 갖는 방식으로 점퍼 구입에 보답했다.
상하수도본부 소속 공무원 주 씨가 뇌물을 수수한 방식은 A 씨보다 더 대범했다. 주 씨가 건설사 대표 김 씨를 처음 만난 건 2000년대 초반. 주 씨가 활동하는 공무원 계모임에 김 씨가 가입한 게 얼굴을 트는 계기가 됐다. 6명 정도가 모인 계모임 인원 중 공무원이 아닌 사람은 김 씨 한 사람뿐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김 씨가 그 사이에 낀 건 소위 공무원들의 밥값을 계산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라고 전했다.
비슷한 연령대인 주 씨와 김 씨는 금방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둘만의 공생도 함께 시작됐다. 주 씨는 2003년 5월부터 2008년 10월까지 김 씨로부터 물품납품과 상하수도 관련 공사 계약체결 명목으로 2150만 원을 받았다. 때문에 김 씨의 건설사는 물품납품과 상하수도 수의 계약 명단에서 빠지지 않았다.
주 씨는 이 과정에서 서류조작도 서슴지 않았다. 당시 계약 관련 실무를 담당하고 있었던 주 씨는 2009년 3월부터 6월까지 시청 소속 기동수리반원들이 진행한 원주시 일대 노후계량기 교체공사를 김 씨의 회사에서 진행한 것처럼 서류를 허위 조작했다. 김 씨는 이 서류를 원주시에 제출하여 공사비 1370만 원을 지급받았다. 김 씨는 이중 250만 원을 다시 주 씨에게 돌려주었다.
주 씨의 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주 씨는 2001년 은행에서 대출한 3000만 원을 김 씨에게 빌려주고 이자를 받았다. 연이율이 24%인 대부업을 연상케 하는 고리였다. 이자를 통해 뇌물을 받는 ‘신종 수법’을 사용한 것이다. 이렇게 주 씨가 매달 받은 금액은 60만 원. 이렇게 10년 동안 이자로 받은 뇌물 금액만 1억여 원에 달했다.
경찰에 적발된 주 씨는 “개인 채무 관계일 뿐이다. 뇌물이라면 이렇게 계좌 거래를 버젓이 할 수 있겠느냐”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 씨가 주 씨에게 이자를 꼬박꼬박 넣어준 통장을 경찰이 발견하는 바람에 주 씨의 행각은 탄로가 났다.
경찰 관계자는 “김 씨는 지인을 통해 주 씨 통장으로 이자를 넣어 줬다. 고리를 이용해 뇌물을 받는 건 처음 보는 광경”이라고 전했다. 주 씨는 자신이 은행에서 빌린 개인 채무 3000만 원 중 600만 원을 다른 건설사 업자인 윤 씨에게 대신 갚게 하기도 했다.
주 씨가 김 씨에게 뇌물을 거리낌 없이 요구할 정도로 김 씨는 회사의 미래를 뇌물에 ‘올인’ 하다시피 한 인물이었다. 김 씨는 건설사를 10년 가까이 운영하면서 자신의 가족, 친구 등을 통해 6개의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각기 회사에 지인들을 위장취업 시킨 후 통장과 도장을 가져오게끔 했다.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줄 차명계좌를 운영한 것이다. 경찰이 사무실을 급습할 당시 김 씨의 사무실에는 지인들 명의의 통장과 도장이 수북했다고 한다.
김 씨가 원주시 공무원들의 신상명세를 빼돌린 것도 로비를 위해서였다. 김 씨는 공무원 계모임에서 만난 시청 소속 인사과 직원 B 씨와도 친분 관계를 쌓았다. 이후 김 씨는 B 씨에게 인사발령 시기마다 시청 소속 공무원들의 개인정보를 메일로 보내게끔 했다. 원주 시청 공무원들의 ‘위치 변경’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지난 2011년부터 2012년까지 빼돌린 개인정보는 총 4회. 1300여 명의 개인정보가 김 씨의 손으로 흘러들어 갔다. 개인정보는 근무처, 학력, 주소, 인적사항, 심지어 혈액형까지 적혀있는 자세한 정보였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B 씨는 당시 입사 1년차밖에 안된 젊은 새내기 공무원이었다. B 씨가 김 씨에게 받은 금액은 한 푼도 없었다. 오로지 친분 관계로만 ‘순수하게’ 개인정보를 넘겼던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원주시청 상하수도본부 관계자는 입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현재 해당 공무원들에 대해 조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입장을 말하기엔 곤란한 부분이 있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기자가 직접 찾아간 상하수도본부 내부에서도 이번 사건에 대해 쉬쉬하는 분위기가 가득했다.
현재 경찰은 이들의 뇌물 수수 수법이 과감하고 다양한 점을 감안해 고위층이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을 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과장, 계장 등 직급이 그다지 높지 않은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진 뇌물 수수 사건이라 그보다 윗선이 연관됐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의심스러운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