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를 죽이겠다…잡을 테면 잡아봐”
용의자로 체포된 가타야마 유스케. 그러나 그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수사 과정에서 무려 4명을 오인 체포해 망신을 톡톡히 당한 일본 경찰. 이미 신뢰를 잃을 만큼 잃어서인지 ‘이번에도 무고한 사람을 잡은 것 아니냐’며 의심받고 있다. 용의자 역시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과연 진범인 것일까. 지난해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던 희대의 사이버 범죄자와 그를 잡기 위해 FBI까지 동원한 일본 수사당국의 힘겨운 숨바꼭질. 마치 한 편의 추리소설 같은 ‘PC 원격조작 사건’을 따라가 봤다.
사건의 시작은 2012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관공서와 니찬네루(2ch) 게시판에는 13차례에 걸쳐 대규모 살인 범행 예고가 올라와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경찰은 아이피(IP) 추적을 통해 글을 올린 사람들을 ‘업무 방해 혐의’로 체포했다. 이 중에는 유명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을 연출한 기타무라 마사키(42)가 포함돼 있어 충격은 더 컸다.
수사 초기 혐의를 부인하던 용의자들은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하나둘 범행을 인정했다. 수사는 순조롭게 풀리는 듯했으나 용의자들이 범행시간에 PC를 사용하지 않았음이 밝혀지고, 컴퓨터에서 트로이 목마 바이러스가 발견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검찰은 용의자들의 컴퓨터가 다른 컴퓨터에서 원격 조종할 수 있는 바이러스 프로그램에 감염된 것으로 보고, 모두 전면 석방하게 된다.
10월 10일, 범인은 스스로 진범이라고 주장하며 또 다른 메일을 방송국으로 보낸다. 여기서 그는 경찰이 언론에 공개하지 않고 협박 혐의로 체포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음을 폭로한다. 범행동기에 대해서는 “경찰과 검찰을 골탕 먹이고 싶었다. 그들의 추태를 폭로하고 싶은 것이 이유다. 경찰과 검찰, 나와 놀아줘서 고마워. 이번에는 이 정도로 끝내지만 또 언젠가 같이 놉시다”라며 수사당국을 비웃었다.
이후 일본 경찰의 체포·수사 과정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는 건 자명한 일이었다. IP주소만을 근거로 PC 소유자를 용의자로 단정하고 검거한 일, 또 용의자가 무죄를 주장했으나 강압수사를 통해 자백을 받아낸 점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실제로 일본 경찰은 용의자에게 “IP 주소라는 증거가 있다. 죄를 인정하면 벌은 가벼워질 것”이라고 유도심문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경찰은 오인 체포됐던 4명의 피해자들에게 공개 사과를 하게 된다.
체면을 단단히 구긴 일본 경찰은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다. 방송국으로 보내진 메일이 다른 나라 서버를 경유한 것이 판명되자 각국에 수사협력을 요구하고, FBI에는 통신기록 해석까지 의뢰하게 된다. 여기서 범인은 한발 물러선다. 11월 13일, 범인은 방송국으로 “내가 실수했다. 게임의 패배다. 잡히는 건 싫으니 목매달아 자살한다. 즐거운 게임이었다”라는 성명을 보내고 종적을 감춘다. 경찰의 수사도 지지부진. 사건은 여전히 미궁 속에 한 해가 저문다.
그리고 2013년 1월 1일, 범인은 침묵을 깨고 ‘근하신년’이란 제목의 메일을 각 언론사에 보내온다. 그는 “첨부파일 안에는 5개의 퀴즈가 있고, 이것을 모두 풀면 범행에 사용한 트로이 바이러스 관련 자료가 저장된 곳을 알 수 있다. 빠른 사람이 승자다. 누군가 퀴즈를 풀어 수사본부에 전해 달라”며 대중을 상대로 아슬아슬한 게임을 제안한다. 이때부터 경찰 및 매스컴, 네티즌들은 앞 다퉈 파일을 분석하고, 추리를 통해 범인이 낸 수수께끼를 모두 풀어낸다. 드디어 범행 증거가 있는 곳이 밝혀지는데, 위치는 도쿄도의 최고봉인 구모토리산(曇取山). 수사당국은 즉시 대규모 경찰 병력을 파견하고 산중으로 몰려가나 허탕만 치고 돌아온다.
SD카드를 목에 건 문제의 고양이.
이로써 희대의 ‘PC 원격조작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붙잡혔다. 경찰은 가타야마가 지난 2005년에도 살해 예고 사건으로 체포돼 실형 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는 점을 확인, 여기에 원한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가타야마는 “에노시마에서 고양이의 사진을 찍었을 뿐, 고양이에게 목걸이를 채운 일은 없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는 바이러스 유포에 대해서도 자신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일본 언론은 용의자 가타야마의 학생 시절을 파헤치는 등 신상보도에 여념 없는 모습이다. 매체에 따르면 가타야마는 도쿄도내 명문 사립중고를 나왔으며 이공계 대학을 중퇴, 전문학교에서 PC를 배워 IT 관련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다고 한다.
용의자가 모든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기 때문인지 일각에서는 ‘과연 진범이 맞는가’라는 의구심을 나타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또 용의자가 진범인 것을 떠나 체포와 동시에 사생활을 파헤치는 미디어와 이에 조력하는 경찰을 향해 “오인 체포의 반성은 없는 것인가”라며 비난하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가타야마 용의자는 진범일까 아니면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일까. 사건의 향방에 관심 집중되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