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의 ‘빛바랜 덩치’ 해뜰 날 올까
▲ 서울시내에도 1억 원 미만의 아파트가 아직 남아있다. 왼쪽 위는 안암동의 대광 아파트, 아래는 천호동 성동 내쉬빌, 오른쪽은 쌍문동 한양아파트, | ||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써브’에 따르면 서울 시내에서 매매가격 1억 미만 아파트는 총 2146가구인 것으로 집계됐다. 현재 서울 시내에 위치한 아파트의 총 가구 수가 110만 호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0.2%도 안 되는 극소수인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1억 미만의 아파트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특히 서울 시내에서도 가장 금싸라기 땅이라 할 수 있는 강남구 대치동 한복판에도 1억 미만의 아파트가 위치해 있다는 사실은 일종의 충격이었다. 과연 이 아파트들은 어떤 이유로 이처럼 저렴한 가격에 매매되고 있는지 <일요신문>이 찾아가봤다.
성북구 안암동에 위치한 대광아파트. 신설동역에서 내려 안암 로터리 쪽으로 걷다가 좌측 편에 보이는 이 아파트는 멀리서 보면 빼곡히 들어서 있는 일반 주택에 가려 아파트 이름만 살짝 볼 수 있다. 주택가 사이에 나있는 좁은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가파른 언덕길을 만나게 된다. 이 언덕을 따라가면 빛바랜 회색 아파트를 마주하게 된다. 한눈에 보기에도 아주 오래됐다는 느낌을 받는 이 아파트는 관리인들조차도 정확한 건축연도를 알지 못한다. 다만 70년대 초반 즈음에 건축됐다는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다.
인근 한 부동산 관계자는 “이 아파트 주민들이 몇 해 전부터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지만 워낙 지대가 높아 허가가 나지 않는다”며 “회현동이나 서대문 등의 오래된 아파트들은 철거를 앞두고 있어 거래되는 매물이 없지만 이 아파트는 아직 철거나 재건축 예정이 없기 때문에 매물이 나와 있다”고 설명했다.
‘달동네’에 위치한 ‘오래된’ 아파트라는 공간적, 시간적 특성 때문인지 비교적 도심에 가깝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1억 원을 넘지 않는 가구가 전체의 30%를 차지한다. 이 아파트 49㎡(14평형)의 매매 하한가는 7500만 원이고 총 348가구 중에 96가구가 여기에 해당한다. 56㎡(16평형)의 매매가도 8500만 원이다. 66㎡(19평형)가 넘어야만 1억 원 정도에 거래된다.
대광아파트와 담장을 맞대고 있는 삼익아파트도 허름하기는 매한가지. 하지만 비교적 최근에 건축됐고 언덕 밑에 위치해 있다는 장점 때문일까 평당 매매가가 대광아파트의 2배가 넘는다. 서대문구 충정로에 위치한 미동아파트, 중구 성요셉 아파트 등도 대광아파트와 사정은 비슷하다.
1억 미만의 아파트 중 가장 대표적인 유형은 건축한 지 30년 이상된 데다 재개발이 어려워진 곳들이다. 하지만 인근 지역이 한꺼번에 재개발된다면 이 허름한 아파트들이 순식간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다. 위험부담이 커질수록 이익도 늘어나는 재테크의 함수관계가 어김없이 적용된다고나 할까.
대광아파트는 단지 전체면적이 6340㎡(약 1918평)나 되고 네모 반듯하게 생겼으며 차량통행에도 큰 불편이 없기 때문에 통째로 매입할 수만 있다면 다른 용도로 얼마든지 개발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 주변 부동산업자들의 말이다.
강동구 천호동에 위치한 성동내쉬빌도 일부가 1억 원 이하다. 이른바 ‘버블 세븐’ 중 하나인 송파구에 인접해 있다는 지리적 여건 때문인지 인근 아파트의 가격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고가 아파트 숲 가운데 둘러싸여 단 한 동만 홀로 서 있는 이 5층짜리 아파트는 외관은 ‘아파트’보다는 ‘빌라’에 더 가깝다.
부동산써브 관계자는 “아파트와 빌라의 구분이 애매모호하지만 일반적으로 20가구 이상이면 아파트로 분류한다”고 말했다.
겉에서 보기에는 ‘20가구 이상이 이 건물에 들어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이 작은 곳에 38가구가 자리잡고 있었다. 굳이 들어가 보지 않아도 가구당 면적수를 짐작할 수 있다. 1억 미만에 거래되는 면적은 33㎡(10평, 7700만 원), 36㎡(11평, 9000만 원) 등이다.
인근 H 부동산 업자는“재산 가치가 거의 없기 때문에 실제 매매가 이뤄지는 경우도 드물며 오히려 인근에 싼 값에 얻을 수 있는 오피스텔들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이곳 아파트의 거주자는 전체 38가구 중에서 25가구가 세입자들이다. 앞서의 부동산 업자는 “대부분 집주인들이 살기 편한 곳으로 이사를 가면서 세를 놓은 것이다. 당장은 재산 가치가 없기 때문에 재건축에 일말의 희망을 걸고 매각하지는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에서 1억 미만에 거래되는 아파트들 중 대부분은 이처럼 외부는 빌라 형태에 내부는 원룸에 가까운 것들이다. 따라서 거주민의 상당수가 미혼이며 주거형태도 전세, 월세 등이 다수다. 일가족이 살기에는 면적이 너무 작다는 것이 거주민들의 설명이다.
대치동에서 거래되는 1억 미만의 아파트도 비슷한 형태다. 실제 면적이 30㎡(9평) 미만으로 방1, 화장실 1개가 전부다.
쌍문동, 면목동 등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도 간간이 1억 원 미만의 아파트가 눈에 띈다. 쌍문동 한양아파트 2, 3, 4차, 면목동의 한신아파트 등이 대표적인 예. 가장 작은 평수인 36㎡(11평)가 8000만 원에서 9500만 원 사이에서 거래된다. 외형은 전형적인 아파트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내부는 역시 원룸에 가깝다.
한편 서울에서 매매가격이 1억 원 미만인 아파트는 2006년 9월 4만 7516가구에서 2146가구로 1년 반 만에 4만5370가구가 감소했다. 하지만 부동산협회의 자료에는 1억 미만에 거래가 된다고 집계되어 있지만 실제 호가는 1억 이상을 상회하는 아파트도 상당수다. 따라서 실제 1억 미만에 거래가 되는 아파트는 2000가구가 채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써브 관계자는 “전세수요가 소형 매매수요로 전환된 데 이어 가격이 저렴했던 강북 지역이 뉴타운과 경전철 등 잇따른 개발호재로 가격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