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쯤 발행되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수영복 특별판이 난데없는 ‘인종차별’ 논란에 휘말렸다. 논란에 불을 댕긴 사진들은 아프리카와 중국에서 촬영된 사진들로, 모두 지역 원주민들을 배경으로 손바닥만 한 비키니를 입은 백인 모델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 구도로 이뤄져 있다.
‘전 세계 7개 대륙’을 주제로 한 이번 화보가 비난을 받고 있는 이유는 이 사진들이 마치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는 데 있다. 말하자면 비서구권을 향한 서구권의 오만한 태도가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여성 전문 블로그인 ‘제제벨’의 도대 스튜어트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낡은 고정관념은 과거 식민지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백인 모델들을 중심에 세운 채 마치 원주민들을 패션 액세서리처럼 다루고 있다”고 비난했다.
가장 문제가 된 사진은 중국 광시좡족자치구 구이린의 강에서 촬영한 사진이었다. 이 사진에는 금발의 백인 모델인 안네 브이가 뗏목 위에 앉아 요염한 포즈를 취하고 있고, 뒤에는 허름한 옷을 입은 중국 노인이 노를 젓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 사진에 대해 스튜어트는 “중국에는 수없이 많은 고층빌딩이 있고, 뉴욕 저리가라 할 정도의 현대적인 도시들도 많다. 그런데도 이 사진은 구닥다리처럼 오래된 이미지만을 재현하고 있다. 즉, 비서구적인 것들은 모조리 진기하고, 미개하며, 빈곤하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프리카 님비아에서 촬영된 사진도 도마 위에 올랐다. 모델 에밀리 디도네이토가 반라 상태로 비키니를 입은 채 서 있고, 그 옆에는 역시 반라 상태로 부족 의상을 입은 원주민 한 명이 서 있는 이 사진은 몇몇 전문가들 사이에서 ‘모욕적’이라는 비난을 샀다. 스튜어트는 이 사진에 대해 “아프리카 대륙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대륙이 한때 문명의 발상지였는데도 불구하고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아직도 서구인들의 과거에만 집착하고 있다. 아프리카인들을 여전히 미개인으로 묘사하고 있다”라고 비꼬았다.
워싱턴주립대학의 비판적 문화, 성, 인종 연구학 교수인 데이비드 레오나르드 박사 역시 이에 동의했다. 그는 <야후! 샤인>과의 인터뷰에서 “사진 속에 배경처럼 서있는 원주민들이나 유색인종들은 마치 문명화된 것처럼 보이는 백인 미인들과 대비되어 모두 이국적인 미개인처럼 표현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원주민들은 단지 소품으로 사용됐을 뿐만 아니라 이국적인 모험을 즐기는 백인들을 즐겁게 해주는 하인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