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자’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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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종용 부회장(가운데)과 이중구 사장이 전격 퇴진함에 따라 향후 이재용 전무(왼쪽)의 총수 입성이 기정사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하다. | ||
이번 인사에서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역시 삼성전자 대표이사인 윤종용 부회장의 퇴진이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서도 ‘삼성전자=윤종용’ 등식이 각인돼 있을 정도로 상징성이 큰 윤 부회장은 삼성전자를 초일류 기업 반석 위에 올려놓은 일등공신이다. 특검 수사기간 동안 주요 임원들이 출국금지에 발 묶여 있을 땐 해외를 누비며 고군분투하기도 했다. 윤 부회장은 그룹 내에서 이학수 부회장(전략기획실장)의 위용에 유일하게 비교될 수 있는 인물이다. 이학수 부회장 퇴진 선언으로 리더십 부재가 우려되는 삼성그룹의 중심을 지킬 것으로 보였기에 그의 퇴진 발표는 더욱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진다.
윤 부회장과 더불어 그룹 내 대표적 고참 경영자인 이중구 삼성테크윈 사장도 자진 퇴진함에 따라 삼성그룹의 대외 행보를 주관할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의 대표성이 더욱 공고해졌다는 평이다. 지난 2002년 이후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수빈 회장이 이학수-윤종용 두 실세 부회장처럼 그룹 살림을 쥐락펴락하기보다는 이재용 전무로의 안정적 경영권 승계를 위한 후견인 성격을 지닐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이 전무 승계에 부담이 될 수 있는 대표적 중역들이 특검과 이번 인사를 통해 물러나게 됐다고 풀이되는 것이다.
특검 수사 종료 이후 발표된 삼성 쇄신안에선 이건희 회장의 퇴진과 더불어 이재용 전무가 삼성전자 고객총괄책임자(CCO) 자리에서 물러나 ‘백의종군’하기로 한 것이 눈길을 끌었다. 4월 22일 쇄신안 발표 당시 이학수 부회장은 “앞으로 이재용 전무가 주주, 임직원, 사회로부터 경영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서 승계 받을 경우 회사나 이 전무에게도 불행한 일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전무로의 경영권 대물림을 무조건 확신할 수만은 없다는 뉘앙스였지만 재계에선 이미 삼성에버랜드 지분 25.10%를 확보해 그룹 순환지배구조 장악에 별다른 장애물이 없는 이 전무의 총수 입성을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
삼성 쇄신안에 따라 전략기획실이 오는 6월 말 해체를 앞둔 가운데 이 전무 승계작업을 위한 새로운 ‘헤드쿼터’는 그룹의 간판 격인 삼성전자가 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이런 까닭에 윤 부회장을 대신해 삼성전자를 총괄하게 된 이윤우 부회장 체제는 이재용 전무의 회장 등극으로 가는 과도기적 성격을 지닐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건희 회장과 더불어 삼성전자를 세계 초일류 기업 반석 위에 올려놓은 주역들의 보직 변경을 이재용 전무 시대로 가는 전초단계로 보는 시선 또한 늘고 있다. 이기태 부회장이 기술총괄에서 대외협력담당으로, 황창규 사장이 반도체총괄에서 기술총괄로 보직이 바뀌게 된 것이 여러 말들을 낳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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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점에서 주목받는 인사가 바로 최지성 정보통신총괄 사장이다. 최 사장은 지난해 초 정기인사에서 이기태 당시 정보통신총괄 사장이 기술총괄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정보통신총괄직을 물려받아 ‘이 부회장이 뒷방지기가 됐다’는 입방아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난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 가전 전시회 ‘CES 2007’에선 이재용 전무와 동행하면서 이 전무를 정보통신 전문가로 만들어줄 조타수로 부각되기도 했다. 최 사장은 이번 인사에서 유임됐지만 윗선의 보직 이동으로 인해 삼성전자 내 입지가 더욱 탄탄해졌다는 평을 듣게 됐다.
삼성전자 홍보팀장인 이인용 전무의 향후 역할도 주목을 받는다. 지난해 초 정기인사에서 삼성전자 홍보팀의 상징적 존재였던 김광태 전무가 안식년을 떠나면서 입지가 강화된 이인용 전무는 이재용 전무의 서울대 동양사학과 직속선배이기도 하다. 이재용 전무가 사회 전반에서 글로벌 기업의 차기 총수감으로 인정받기 위한 홍보기능의 중요성 때문에 이인용 전무의 보폭이 넓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재용 전무의 신뢰가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김인 삼성SDS 사장도 주목받는 인사 중 하나다.
일각에선 사장단 인사 완료 이후 진행될 전략기획실 해체 작업이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한다. 계열사 직원 파견 형태로 운영돼 온 전략기획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온 것은 삼성전자 출신들이었다. 삼성은 전략기획실 해체 이후 전원 원대복귀 수순을 원칙으로 천명했다. 그러나 전략기획실을 이끌어온 팀장급 인사들이 계열사 최고경영자로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웬만한 계열사 고위직보다 높은 영향력을 행사해온 전략기획실 임원들이 소속사 복귀를 앞두고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주요 보직 인사를 끝낸 삼성전자로 전략기획실 인사들이 복귀하는 과정에서 일부는 다른 계열사로 배치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그로 인한 볼멘소리들이 들려올 것으로 보인다. 전략기획실 해체로 그룹 차원의 홍보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향후 입지가 불투명한 몇몇 고위 임원이 이 같은 정서를 부채질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들의 후일을 위한 삼성전자 조직 리모델링 작업 외에도 조직 내부의 불만 여론을 수습해야 할 숙제가 이건희 회장 앞에 남아 있는 셈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