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경제 활성화? 죽은 도시 됐다
[1] 한 집 걸러 한 집이 전당포인 읍내는 마치 ‘전당포 타운’ 같았다. [2] 한 전당포 앞에 주차된 차량들. 모두 카지노 고객들이 돈을 빌리며 맡긴 것이다. [3] 장기 주자 차량에 붙어 있는 경고문.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정선군에서 터를 잡고 살던 주민들은 치솟은 땅값과 물가를 감당하지 못하고 돈을 벌기 위해 하나둘 외지로 떠나갔다. 주민들이 떠난 빈자리에는 한탕의 꿈을 품은 뜨내기 도박꾼들과 그들에게 기생하는 장사꾼들로 채워지고 있다. 정선 거리는 적막하고 사람들은 생기를 잃고 있었다. 정부의 장밋빛 청사진과는 달리 ‘도박 좀비’들의 도시로 전락할 위험에 처한 정선군 사북읍과 고한읍을 직접 찾아 그곳 상황을 살펴봤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던 지난 3월 6일, 기자는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내에 들어섰다. 낮 1시쯤 된 점심시간이었지만 읍내는 조용했다. 길거리에는 돌아다니는 사람도 몇 명 없었다. 한집 걸러 한집 간격으로 전당포들이 늘어서 있었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주인의 전화번호만 덩그러니 꽂혀 있었다. 식당에도 손님이 없이 한산했다. 곳곳에는 ‘점포임대’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왜 이렇게 사람이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사북읍에 살고 있는 A 씨는 “여기 사람들이야 강원랜드 카지노에 갔겠지, 어디 갔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도박에 빠진 사람들은 아침 카지노 개장 시간(오전 10시)에 강원랜드에 올라가 새벽 폐장(오전 6시)하기 전까진 내려오지 않는다. 읍내 시장에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장사가 되며, 지역에 돈이 돌겠느냐”고 덧붙였다.
이곳 주민들은 “강원도 광산이 폐쇄되면서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일환으로 정선 강원랜드 카지노가 세워졌지만 이후 10년 동안 정선군은 갈수록 살기 어려워졌다”고 입을 모은다. 고한읍에 사는 B 씨는 “강원랜드가 처음 들어서면서 폐광으로 직장을 잃은 사람들에게 정규직을 제공해 일자리를 창출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지금 강원랜드에서 청소부로 일하거나 잡일,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에 비해 강원랜드가 세워지면서 정선군의 집값, 땅값, 물가는 뭐 하나 오르지 않은 게 없다. 원주민들은 버티고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현실이 돼버렸다. 과거 사북 원주민은 3만여 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다 떠나고 고작 2000명 남짓 남아있다. 이게 무슨 지역 경제를 살리는 거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주민들이 떠난 빈자리에는 외지인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들은 전당포나 숙박업소 등 사업을 하기 위해 유입된 경우이거나,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기 위해 아예 터를 잡은 상습도박자들이 대부분이다. 사북읍에서 전당포를 운영하는 C 씨는 “현재 정선군에서 전당포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라며 “그들이 전당포 사업을 시작하면서 서로 협조도 안 되고 우후죽순 너무 많이 생겨나 손해가 심각하다”고 밝혔다.
사북읍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사람 없는 한산한 거리에 비해 읍내 곳곳에 먼지가 자욱이 쌓인 차 량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주차단속원인 D 씨는 이 차량들이 모두 전당포에 맡겨진 차라고 했다. D 씨는 “주차된 차가 주민 수에 비해 몇 곱절은 많을 거다. 모두 도박하다 돈을 잃은 사람들이 전당포에 맡긴 차다. 아님 이런 시골마을에 외제차가 왜 이렇게 곳곳마다 세워져 있겠느냐”고 귀띔했다. 전당포 주변에 주차를 하다가 포화상태가 되자 거리 아무 곳에나 주차를 해서 생긴 상황이라고 한다.
[4] 찜질방에서 쪽잠을 자며 카지노에 출근 도장을 찍는 상습도박자들. [5] 철거된 ‘복지 아파트’에서 사채 빚을 진 도박꾼이 숨어지내기도 한다. [6] 복지 아파트 한 곳에 이불과 신발이 놓여 있는 모습.
사북에는 대박의 꿈을 품고 외지에서 정선 강원랜드 카지노로 흘러들어온 도박꾼들도 많이 있다. 정선군의 한 안마시술소에서 일하는 여성 E 씨는 “안마방이나 티켓다방을 찾는 남성들은 대부분 카지노에서 도박하는 사람들”이라며 “주말엔 손님이 많아 쉴 틈이 없다. 안마시술소의 7개 정도 되는 수면실도 남자들로 꽉 차 일하는 아가씨들이 자는 방까지 내줘야 할 정도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도박으로 돈을 잃고 노숙을 하는 앵벌이들은 많이 줄었다고 한다. 사북읍 주민 A 씨는 “사북읍 주변 아파트 중에 도박꾼들을 위해 월세로 나온 방이 꽤 있다. 그런데 월세방 구해서 사는 도박꾼들은 그나마 사정이 좋은 거다. 돈 없는 사람들은 찜질방이나 민박집을 구해서 지낸다”고 설명했다. 사북읍의 한 민박집 주인도 “방이 30개인데 모두 다 찼다”며 “거의가 월방으로 계약을 했는데 도박하려고 와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4~5명이 방 하나를 구해 같이 생활한다”고 전했다.
도박으로 돈을 다 잃고 최악의 상황까지 내몰린 ‘막장’ 도박꾼들은 과거 탄광촌 광부들의 사택으로 쓰이던, 지금은 철거돼 뼈대만 남은 ‘복지 아파트’에 숨어들어가 살기도 한다고 한다. 복지 아파트 근방에 사는 한 주민은 “복지 아파트에 현재 2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도박을 위해 사채를 썼다 갚을 능력이 없는 도박꾼들이 사채업자들을 피해 복지 아파트로 흘러들어 온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실제 기자가 철거된 복지 아파트 한 곳을 들어가 보니 버려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술병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사람이 머물렀다는 증거였다.
심지어 한 집은 사람이 터를 잡고 살고 있는지 벽은 방풍재로 마감 처리돼 있었고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또한 맞은 편 집에는 연탄이 잔뜩 쌓여 있었다. 기자가 복지 아파트를 둘러보고 있을 때 사채업자로 보이는 일행도 폐허가 된 아파트에서 누군가를 찾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선군 사북역도 도박꾼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사북역의 한 관계자는 “카지노가 폐장하는 새벽 첫차 시간이면 도박꾼들이 몰려온다. 그들 중에는 역무원에게 무조건 차표를 내놓으라고 떼쓰고 화풀이를 하는가 하면, 돈을 다 잃었다며 철로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하는 등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앞서의 주차단속원 D 씨와 기자가 사북읍을 돌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1톤 트럭 한 대가 일행 앞에 멈춰 섰다. 트럭 안에는 50대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 4명이 타고 있었다. 운전자는 우리에게 “카지노로 가려면 어디로 가요”라고 물었다. D 씨가 길을 알려주자 그들은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카지노로 향했다.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D 씨는 “또 한 집이 패가망신하게 생겼다”며 혀를 찼다.
이어 그는 “오는 6월 정선 강원랜드가 지금의 두 배 크기의 카지노를 증설해 개장한다. 워터파크도 건설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도박 때문에 문제가 심각한데 카지노가 계속 세워진다면 정선군뿐만 아니라 한국 전체가 망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정부의 거창한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과는 달리 강원도 정선은 ‘도박 좀비’들에 야금야금 점령당해 그 활기를 완전히 잃고 있었다. 취재차량은 길가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먼지투성이 차들을 뒤로하고 서울로 향했다.
강원 정선=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전당포 ‘개점휴업’한 까닭 불법 대부업자들 카지노 앞 ‘장사진’ 전당포를 운영하고 있는 최 아무개 씨는 “정선군 사북읍 같은 경우 정식허가를 받은 전당포가 120여 개인데 실제 영업하는 곳은 60여 개 정도다. 그마저도 장사가 안 돼서 자고 일어나면 주인이 바뀐다”라고 전했다. 이어 최 씨는 “정선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전당포가 아니라 카지노 앞에서 판치고 있는 불법 대부업자들”이라며 “그들은 한창 많았을 땐 1000명가량이 카지노에 상주하면서 높은 이자로 사채, 대출, 카드깡 등 온갖 불법적인 일을 저지른다. 심지어 돈을 갚지 못하면 산에 끌고 가 밀어서 떨어뜨리는 등 상해를 가하거나 심지어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는 소문도 있다. 그런데 불법 대부업자들은 한데 뭉쳐 단속이 나오면 바로 숨어버리기 때문에 금융감독원이나 경찰에서는 이들을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그러니 애꿎은 전당포만 단속하고 있는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럼에도 하루에 한두 명 정도는 전당포를 찾는다고 최 씨는 말했다. 기자가 최 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중에도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지만 30대 중반 남성이 손목시계를 맡길 수 있는지 묻고 갔다. 최 씨는 “전당포에 맡기러 오는 물건 중에는 시계, 노트북, 골프채, 아기 돌반지뿐만 아니라 집문서, 인삼밭, 강남빌딩 땅문서 등 없는 게 없다”고 말했다. 그중 전당포 업주들의 골치를 가장 썩이는 건 바로 차량. 전당포 주인 김 아무개 씨는 “전당포에서 차량을 맡아두긴 하지만 주차할 곳도 없고 관리가 힘들다. 돈을 빌려간 차 주인이 전당포 몰래 비상키를 이용해 차를 훔쳐 달아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한 전당포는 예전 사북 공영주차장을 인수해 차량을 보관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그곳에 세워진 차들은 100% 전당포에서 맡아놓은 차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차 은 전당포에 한번 맡기면 되찾기 힘들다고 보면 된다. 돈이 부족한 전당포는 차를 이용해 돌려막기 때문에 소유권이 불분명해진다. 그런 차량들이 대포차가 되는 거다. 보험비도 안 나가고 가격도 싸서 심지어 공무원들까지 대포차를 사러 많이 온다”고 덧붙였다. 강원랜드가 온갖 불법행위의 온상지가 되는 셈이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