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진 불도 다시 보자” 야구계 좌불안석
검찰이 강동희 감독 외에 승부조작에 가담한 관계자들의 ‘리스트’를 갖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농구계에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강동희 감독은 왜 구속됐나
의정부지검 형사5부(유혁 부장검사)는 강동희 감독에게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의정부지법 이광영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40분 만에 영장 실질심사를 끝내고 “사안의 성격이나 수사 진행 상황을 고려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승부조작 수사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이 밖에서 관련자와 입을 맞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구속 수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강동희 감독은 지금도 승부조작을 하지 않았다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청탁과 금품 수수 여부는 검찰 소환 조사 때 일부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작 승부조작을 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검찰은 강동희 감독이 구속된 브로커 최 아무개 씨와 조 아무개 씨로부터 승부조작의 청탁과 함께 약 4700만 원의 금품을 받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강동희 감독이 경기에서 일부러 패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해도 의심받고 있는 4경기에서 진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 청탁과 금품 수수의 연관 관계가 확인되면 그 자체만으로도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혐의를 벗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승부조작 리스트 더 있다? 수사 확대 여부는?
농구계 분위기를 더욱 무겁게 하는 것은 검찰이 강동희 감독 외에도 승부조작에 가담한 관계자들의 리스트를 갖고 있다는 소문 때문이다. KBL과 각 구단들은 ‘강동희 괴담’으로 불리는 11명의 승부조작 가담 리스트의 존재 여부와 수사 확대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이 공개하지 않는 한 확인하기 어려운 소문이지만, 소문에 따르면 최소 2명 이상의 프로농구 전·현직 감독과 다수의 선수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과연 승부조작 의혹에 연루된 농구인이 비단 강동희 감독뿐일까. 농구계가 우려하는 것은 브로커 최 씨의 이력 때문이다. 최 씨는 10여 년 전부터 스포츠 에이전트를 자처하면서 여러 관계자들을 만났고 인맥의 폭이 넓다. 서울에서 운영한 주점 등에서 여러 관계자들과 친분을 쌓았다. 신기하게도 최 씨를 아는 사람은 확실히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아예 모른다. 최 씨의 구속 사실이 전해진 뒤 평소 최 씨와 친하게 지냈던 감독이나 선수의 이름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불안감 때문일까. 일부는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려 승부조작 수사 확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최 씨와 함께 구속된 브로커 조 씨가 과거 프로야구 무대에서 활약한 선수 출신이라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1년 전 승부조작 파문에 휩싸여 고통을 받았던 프로야구 관계자들이 타 종목으로의 수사 확대 여부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했다.
검찰이 강동희 감독 기소에 초점을 맞출지, 수사를 확대할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일각에서는 강동희라는 농구계의 거물을 쓰러뜨리기 일보 직전에 있는 검찰이 그쯤에서 수사를 마무리할 수도 있지 않겠냐고 말한다. 한편에서는 “이 기회에 농구판에 물든 승부조작을 뿌리 뽑아야 한다. 더 이상 찝찝한 게 없어야 앞으로 팬들이 의심 없이 농구를 보지 않겠나”라며 환부를 완전히 도려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브로커 조 씨가 야구 선수 출신으로 알려져 야구계가 다시 긴장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프로축구의 경우 브로커의 주요 타깃은 득점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골키퍼 그리고 스트라이커였다. 골키퍼는 실수한 척 골을 내주면 되고 스트라이커는 일부러 기회를 날릴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야구는 투수가 타깃이 됐다. 첫 타자 고의 볼넷처럼 승패가 아닌 경기 일부를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프로농구 선수는 브로커의 타깃이 되기에 적합할까. 다수의 농구 관계자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관계자는 “선수 한 명이 전체 승부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고의패배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가만히 보고 있을 감독은 없다. 바로 교체해버리면 그만이다”라고 말했다. 사설 토토에 정통한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불법 토토 사이트에서는 첫삼(첫 번째 3점슛을 넣는 팀을 맞히는 베팅), 첫 자(첫 번째 자유투), 첫리(첫 번째 리바운드), 쿼터별 승패 맞추기 등 세세한 베팅이 이뤄지는데 이는 선수를 포섭했다고 해서 조작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누가 첫 번째 자유투를 얻고 리바운드를 잡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라며 선수의 연관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1919년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일어난 블랙삭스 스캔들처럼 같은 팀 소속 다수의 선수가 엮여있다면 충분히 승패까지도 조작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농구계는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자위하나 불안한 마음은 어찌할 수 없다. 프로농구 구단들은 최근 승부조작 가담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감독 및 코칭스태프, 선수단 개별 면담 등 자체 조사를 하고 있다.
박세운 CBS 체육부 기자
‘무혐의 지지 탄원서’는 아니었다 ‘참고자료’ 전달 시도만 했을 뿐인데…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진실은 이렇다. 허재 감독이 10일 오전 9개 구단 감독들에게 팩스를 돌려 동의를 구한 것은 사실이다. 그 내용은 무혐의를 지지한다는 탄원서가 아니었다. 순위가 결정된 정규리그 막판,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은 팀은 플레이오프에 대비해 주축 선수들을 쉬게 하거나 하위권 팀들은 유망주에게 기회를 주는 등 변칙적인 경기 운영이 관례처럼 이뤄져왔고, 이는 프로농구 리그의 특성이라는 점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즉, 탄원서가 아니라 일종의 참고자료였다. 변호사를 통해 실질심사를 하는 판사에게 전달할 예정이었다. 강동희 감독은 죄가 없다? 선처를 호소한다? 그런 내용은 일체 포함되지 않았다. 참고자료는 아예 전달되지도 않았다. 9개 구단 감독들은 10일 밤에 자료 작성과 전달을 전격 취소하기로 했다. 한 감독은 “자료상 몇몇 문장이 오해의 소지가 있다 판단돼 무산됐다”고 귀띔했다. 그만큼 신중하게 일이 진행됐다. 다수의 감독들은 민감한 사안이라 판단하고 의도와는 달리 오해를 살 여지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가급적 말을 아꼈다. 그러나 다음 날인 11일 오전 감독들이 무혐의 지지 탄원서를 준비했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비난 여론이 고개를 들었고 당일 오후 탄원서 제출이 취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마치 비난의 목소리 때문에 감독들이 몸을 사린 것처럼 비춰졌다. 실제로 그런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문서가 작성되고 취소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은 10일 당일 하루에 끝이 났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반성부터 해야 할 농구인들이 왜 나서냐는 비판의 목소리에는 농구인들 역시 할 말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의도가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오해를 낳았고 그로 인해 과도한 비난을 받은 것 역시 사실이다. 안타까운 해프닝이었다. 박세운 CBS 체육부 기자 |
한선교 총재 ‘독선’ 논란 승부조작 대책에 웬 선수협 창설? 한선교 KBL 총재가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KBL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최근 승부 조작 사태에 대한 사과의 뜻을 밝히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그런데 한선교 총재는 “말이 나온 김에”라며 운을 떼더니 승부조작 의혹에 영향을 끼친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당한 시간을 제도 개선의 필요성 강조에 쏟아 부었다.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먼저 신인드래프트, 자유계약선수(FA)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선수들 스스로 자정의 노력을 기울이고 은퇴 선수들이 훗날 브로커가 될 수 있으니 그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며 선수협의회 창설을 주장했다. 구속 하루 만에 이처럼 다양한 제도 개선 방안이 나왔다는 자체는 반가웠다. 문제는 그 내용이다. 드래프트 확률을 1/n로 동일하게 나눠 상위 신인지명권을 얻기 위해 플레이오프 진출을 기피할 수 있다는 고의패배 논란을 잠재운다, FA 제도를 뜯어고쳐 선수 권리를 강화하고 이적을 원활하게 한다, 더 나아가 선수협을 창설한다, 한선교 총재가 내놓은 개선 방안이 과연 승부조작 재발 방지와 연관이 있느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같은 내용들은 사실 한선교 총재가 취임 초기부터 밀어붙이고자 했던 정책들이다. 그동안 정책 결정권이 있는 이사회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승부조작 파문으로 어떻게든 변해야 한다는 위기 의식과 분위기를 이용해 이사회를 설득,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실제로 한선교 총재는 지난 13일에 개최된 긴급 이사회를 통해 자신의 뜻대로 신인드래프트와 FA 제도를 손질했다. 하지만 선수협 창설은 이번 이사회에서 승인을 얻지 못했다. 프로야구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쉽게 말해 선수 노조의 창설을 반가워 할 구단은 없다. 한 구단의 단장은 “선수협은 선수들이 만들겠다고 나서는 게 정상 아닌가. 연맹이 먼저 나서 만들어주겠다고 한 경우가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장의 분위기도 싸늘하다. 한 감독은 “연맹은 승부조작과 관련 없는 제도 개편안을 해결책으로 들고 나왔다. 먼저 관계자들이 모여 석고대죄하는 마음으로 사과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박세운 CBS 체육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