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잡음 커질수록 ‘남’(남중수 전임 사장)의 일 오버랩
재계 일각에서 전임 남중수 사장(오른쪽)의 예처럼 이석채 KT 회장의 퇴진이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지난 15일 열린 KT 정기주주총회는 꽤 소란스러웠다. 안에서는 고성이 오가고 밖에서는 KT새노조와 참여연대 등이 ‘이석채 회장 처벌 탄원서’를 받았다. 이들은 이 회장의 노동인권 유린·사기·배임 혐의 등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어느 기업이든 주총이 마냥 순조로울 리 없지만 최근 들어선 KT만큼 요란한 주총도 드물다.
비록 이석채 회장이 지난해 연임에 성공했지만 이대로라면 남은 임기를 채우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KT새노조 등이 계속 이 회장 퇴진운동을 벌이고 있는 데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도 이석채 회장의 비리를 지적, 검찰에 고발하는 등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노동인권단체도 가만히 있지 않는 분위기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 대기업과 달리 KT의 경우 잡음이 많으면 정부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현 정부 주변에 KT 회장직을 원하는 인사가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KT가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정부의 눈치를 본다는 것은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사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KT가 ‘낙하산 인사 천국’이라는 말이 무성하다는 것. 이석채 회장부터가 2009년 KT 사장으로 취임할 당시 낙하산 논란에 휩싸인 인물이다. 남중수 전 사장이 2008년 연임에 성공했음에도 바로 그해 10월 비리 혐의로 퇴진한 후 뒤를 이은 사람이 이 회장이다.
형식적으로는 당시 사장추천위원회(사추위·현 CEO추천위원회)가 여러 명의 후보 중 이석채 회장을 추천, 이 회장이 사장 자리에 올랐으나 남 전 사장의 자진 사임에 대한 의혹과 사추위가 정관을 개정하면서까지 이 회장을 추천하는 등 과정이 깔끔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당시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은 이 회장의 취임을 두고 ‘낙하산 인사’라고 맹비난했다.
KT 수장에 오른 이후 이 회장은 한편으로는 수천 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청와대 대변인 출신의 김은혜 전무, 오세훈 전 서울시장 동생인 오세현 전무 등 ‘친 정부 인사’로 분류되는 사람들을 대거 영입했다. 그런가 하면 2008년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여성부 장관 후보에서 낙마한 이춘호 EBS 이사장을 “고결한 인물”이라며 KT 사외이사에 선임했다. 이 이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절친’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 회장의 이 같은 인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낙하산 인사 근절’과 배치된다.
KT새노조, KT민주동지회, KT노동인권센터 등이 이석채 회장 퇴진을 주장하고 있는 것도 이 회장과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 참여연대는 지난 2월 27일 KT의 ‘스마트애드몰’ 사업 등과 관련해 이 회장이 회사에 200억 원의 손해를 끼쳤다며 업무상 배임 혐의로 이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KT는 중소기업과 관계도 원만하지 않다. 부당한 처사로 중소기업들을 줄도산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비난을 사고 있는 상황이다. 그중 대표적인 예가 국내 IT업체인 ‘엔스퍼트’의 공정거래위원회 재심 사건. 엔스퍼트 측 대리인 법무법인 푸르메에 따르면 KT가 태블릿PC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엔스퍼트 측에 20만 대의 물량을 약속하고 주문했으나 사업성이 떨어지자 4만 대만 발주했다는 것. 이 때문에 20만 대 분량의 부품 등을 선주문한 엔스퍼트는 물론, 이와 관련된 하도급 중소기업을 줄도산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푸르메 김태연 변호사는 “대기업의 강요에 의한 부당한 계약”이라며 “이 같은 대우를 받는 중소기업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으며 공정위 재심 결과와 상관없이 민·형사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예는 대기업 횡포에 민감하고 중소기업을 중시하는 현 정부의 기조에도 어긋난다.
이석채 회장의 임기는 2015년까지다. 그러나 전임 남 사장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이 없다. 회장 연임 시점과 정권이 바뀐 시점도 비슷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여야가 바뀌지 않았고 박근혜 정부의 인사 검증 시스템이 비난의 도마에 올라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해관 KT새노조위원장은 “이 회장은 경영 성과를 떠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도덕적인 부분에서 허술한 인사 검증 시스템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교체 가능성이 더 크다”고 단언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