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라는데 버티니 터는 수밖에…”
이석채 KT 회장이 사업추진 과정 중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입힌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이석채 회장의 혐의는 배임이다. 참여연대는 지난 2월 이 회장이 신사업을 무리하게 추진, 회사에 수백억 원의 손해를 끼쳤다며 이 회장을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또 지난 10월 초에는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실적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KT 사옥 39곳을 헐값에 매각, 869억 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내용으로 2차 고발했다. 1차 고발 당시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검찰이 이번에는 이 회장 주변을 샅샅이 훑을 기세를 보이고 있다.
이 회장을 둘러싼 이 같은 혐의와 의혹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민·노동단체와 KT새노조(위원장 이해관)를 중심으로 제기돼왔다. 그때마다 KT 측은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하며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했다. 그런가 하면 사정기관 주변에서는 이 회장에 대한 내사설이 끊이지 않았다. “조용한 것을 보니 내사를 벌였으나 잡힌 것이 없는 듯하다”는 말까지 들렸다. 하지만 이번 검찰 수사는 간단치 않아 보인다.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받은 다음날 이 회장은 르완다에서 열리는 아프리카 혁신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했다. 그는 이 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다. 검찰이 고강도 압박에도 출국을 강행한 것을 두고 재계에선 이 회장이 자진 사퇴 대신 버티기에 나섰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석채 회장 사퇴설은 박근혜 정부 초부터 흘러나왔다. KT가 워낙 정권 변화에 따라 흔들려왔던 탓이 크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이 회장의 행보도 사퇴설의 한 원인이었다. 이명박 정부와 관련 있는 사람들을 속속 영입하면서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을 받은 것도 치명적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김은혜 KT 커뮤니케이션실장, 오세훈 전 서울시장 여동생인 오세현 KT 신사업본부장(전무), 이명박 정부 대통령직인수위 상임자문위원을 지낸 김규성 KT 엠하우스 사장 등 이 회장은 이명박 정부 인물들을 영입해 요직에 배치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이들을 고속 승진시켰다. 상무로 영입한 오 본부장을 불과 1년 만에 전무로 승진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이 회장은 경영상 주요 결정을 내리는 이사회도 자기 사람 위주로 꾸렸다. KT 사장이자 사내이사인 표현명 사장은 이 회장과 고등학교 동문에다 오세훈 전 시장과는 사돈관계다.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여성부 장관 후보에서 낙마한 이춘호 EBS 이사장은 KT 사외이사다. 이 회장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한 이사장을 가리켜 “고결한 인물”이라며 사외이사로 선임한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KT 이사회는 CEO(최고경영자)를 추천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이사회에서 CEO추천위원회를 결성하며 추천위원회는 KT 사외이사 7명 전원과 사내이사 1명으로 구성된다. 사외이사를 ‘자기 사람’으로 구성하면 연임하는 데 그만큼 수월해진다. 이 회장이 연임을 앞둔 2011년 말 구성된 KT의 CEO추천위원회는 ‘이석채 회장 연임 위원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더욱이 1명의 사내이사는 표현명 사장이었다.
2011년 이명박 대통령이 방송통신인 신년인사회에서 이석채 통신사업자연합회장과 건배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렇다고 경영 능력을 인정받은 것도 아니었다. KT는 통신 3사 중 가장 부진한 실적을 기록하며 ‘통신공룡’의 자존심을 구긴 지 오래다. 롱텀에볼루션(LTE) 부문에서는 오히려 LG유플러스에도 밀리면서 이 회장의 경영 능력에 의구심이 제기됐다. 이 회장은 인적 구조조정과 부동산을 비롯한 KT 보유 자산을 매각해 부진한 실적을 메우기 일쑤였다. 이 과정에서 ‘헐값 매각’ 의혹이 증폭했고 이는 지난 22일 검찰 압수수색의 빌미를 제공했다. 한편에서는 KT새노조를 중심으로 ‘이석채 회장 퇴진운동’이 계속돼왔다.
박근혜 정부 들어 소문으로만 나돌던 이석채 회장 사임설이 꽤 구체적인 경로를 통해 알려진 때도 있었다. 지난 8월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제3자를 통해 이 회장에게 사임할 것을 종용했으나 이 회장이 주파수 경매 등의 이유로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거부했다는 것. “사실무근”이라는 청와대 측의 부인으로 일단락되긴 했지만 그 후폭풍은 거셌다.
이 회장은 지난 8월 30일 주파수 경매에서 그토록 바라던 ‘인접대역’을 확보해 의기양양해 했다. 이를 계기로 이석채 회장 사임설이 수그러드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불과 두 달이 안 돼 검찰이 나섰다. 참여연대의 2차 고발이 있기는 했지만 공교롭게도 주파수 경매가 끝나자마자 이 회장의 자리는 위태롭게 됐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이상 이 회장이 전임 남중수 전 KT 사장의 운명을 닮을 가능성이 커졌다. 남중수 전 사장은 2008년 재임 당시 검찰 수사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 자리를 이어받은 사람이 이석채 회장이다. 이석채 회장 사임설이 한창일 때 한 사정기관 관계자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나가라고 계속 사인을 주는데 끝까지 버티고 있다면 터는 수밖에 없다. KT의 경우 워낙 사업이 다양하고 방대한 데다 얽혀 있는 기업도 많은 터라 비리가 숨어 있을 확률이 높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