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편 장이머우+기타노 스타일로”
단편영화 <주리>로 감독에 데뷔하는 김동호 위원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일본 최남단 섬 오키나와에서 23일에 개막한 오키나와영화제에 연출 데뷔작 <주리>를 들고 찾은 김 위원장은 술잔에 술 대신 물을 가득 채웠다. 상대와 건배를 하고나서 그 잔에 담긴 물을 단숨에 비우기를 반복했다. 요즘 그는 ‘술 폭탄’ 대신 ‘물 폭탄’을 즐긴다고 했다. 7년 전 술을 끊은 뒤에는 한 잔도 입에 대지 않았다.
“술자리에 보통 새벽 한 시까지 있다고 치면 그 자리에서 마시는 물 폭탄은 열대여섯 잔 정도가 된다. 술보다 먹기 힘들 때도 많다.”
사람들과 깊이 대화하고 즐기는 술자리를 마다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음주에 대한 부담은 커지면서 선택한 게 ‘물 폭탄’이다. 그는 “예전에는 술로 위세척을 했지만 요즘엔 물로 세척한다”며 웃었다.
김동호 위원장은 3년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자리에서 내려왔다. 15년 동안 해온 묵직한 책임을 덜어냈지만 오히려 그 이후에 더 바빠졌다. 올해는 영화감독으로 변신했다. 첫 번째 연출 영화 <주리>는 국제영화제에 모인 심사위원들이 최우수작품을 선정을 놓고 벌이는 다툼을 그린 코미디 영화다. 국제영화제 심사위원만 27번, 그중 심사위원장만 17번이나 했던 김 위원장의 경험에서 출발한 이야기다.
단편영화이지만 <주리>에 참여한 배우, 스태프의 면면은 화려하다. 주인공은 배우 안성기와 강수연. 조감독은 <만추>의 김태용 감독이 맡았고 영화 편집은 <실미도> <이끼>의 강우석 감독이 담당했다. 내로라하는 영화인들이 김동호 위원장의 감독 데뷔작을 위해 뭉친 셈이다. 내친김에 안성기와 강수연은 앞으로 김동호 위원장의 영화에는 ‘무조건’ 출연하기로 약속했다. 김동호 위원장은 “앞으로 만들 영화에 두 배우에게 맞는 역할을 만들어볼 생각”이라며 “연출을 해보니 배우를 캐스팅하는 게 만만치 않더라”며 안성기 강수연의 참여를 반겼다.
“내 친구들 다 불러서 보라고 해도 관객 1000명은 찰 것 같은데? 하하! 기록이라고 하니까. 물론 의미가 있는 건 맞다. 단편영화가 12개 극장에서 개봉했다는 것 자체가 그렇다. 극장 개봉은 나에게 상당한 부담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괜찮다’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한국 단편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 테니까.”
김동호 위원장은 ‘친구’가 많기로도 유명하다. 나이, 국경 불문이다.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인 티에리 프레모가 시간을 쪼개 몇 년째 부산국제영화제를 찾는 건 김동호 위원장과의 친분에서 비롯됐다. 김 위원장은 티에리 프레모, 대만 인기 감독 허샤오시엔 등과 함께 ‘타이커 클럽’도 만들었다. 자신의 이름인 ‘호랑이 호’자를 따서 만든 모임이다. 매년 이들은 부산국제영화제 때 만나 ‘진한 술’을 마신다.
“중국 장이머우 감독이나 일본 배우 기타노 다케시가 부산에 몇 번 왔는데, 돌아갈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평생 먹은 술보다 김동호와 부산에서 마신 술이 더 많다’는 이야기다.”
탁월한 유머 감각도 그가 인기 있는 이유다. 오키나와영화제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내년에 장편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해 2년 뒤엔 연출할 계획을 공개한 그는 “구상 중이긴 하지만 나의 첫 번째 장편 영화는 장이머우의 영화 <책상 서랍 속의 동화> 같은 농촌 분위기를 배경으로 기타노 다케시의 유머 감각을 섞고 싶다”고 했다.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두 감독이 이 말을 들으면 ‘턱도 없는 소리’라고 하겠지?(웃음) 장편을 연출한다는 건… 이제 망하는 길로 접어드는 것이고. 하하!”
김동호 위원장은 오키나와영화제 이후에도 빡빡한 ‘영화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4월 19일 개막하는 이탈리아 우디네영화제에 <주리>가 초청받았고 이후 칸 국제영화제, 캐나다 몬트리올 영화제에도 간다. 그는 “부산영화제 위원장일 때보다 지금 더 바쁘고 벅차지만 하는 일 모두 재미있어서 즐기고 있다”고 했다.
빠듯한 해외 일정에도 그는 자신이 머무는 곳이 어디이든지 매일 새벽 5시께 일어나 조깅을 한다. 폭우, 폭설이 내리지 않는 한 하루도 빼놓지 않는다. 오키나와영화제를 찾은 2박3일 동안에도 매일 아침 묶고 있는 호텔 주위를 뛰었다. 운동화와 운동복은 그가 해외 출장에도 빼놓지 않고 챙기는 필수품이다.
오키나와(일본)=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
김동호의 직함 “‘위원장’ 달고 ‘감독’ 꿈꿨다” 김동호 위원장은 여러 개의 직함으로 불린다. 15년 동안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았고 여전히 명예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는 까닭에 ‘위원장’이 가장 널리 알려진 호칭이다. 여기에 <주리>를 통해 ‘감독’ 타이틀이 생겼다. 지난해부터 단국대학교 영상콘텐츠전문대학원 ‘원장’도 맡고 있다. 일주일에 3시간씩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이기도 하다. 그가 가장 듣기 편하고 좋아하는 호칭은 여전히 ‘위원장’이다. “아직까지는 위원장이란 직함에 익숙하다. 내가 선호하는 직함이기도 하고. 앞으로 장편영화까지 찍으면 아무래도 감독으로 불리는 게 좋겠지. 영화제를 많이 다녔다. 지금까지 심사위원도 스물일곱 번 정도 했었고. 그래도 영화제의 꽃은 감독이다. 여러 영화제를 다니며 감독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기 시작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