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바꾸기’에 영세 업체 ‘빚폭탄’
민주당이 지난 대선에서 선거 운동을 하는 모습. 최초 트레스트코리아에 요구한 유니폼 색상은 초록이었지만 K 사가 유니폼을 제작할 때 노랑으로 바뀌어 의문이 일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판촉 전문 업체인 ‘트러스트코리아’을 운영하고 있는 H 대표. 그는 대선을 코앞에 둔 지난 10월, 민주통합당 홍보국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당시 당 홍보국 관계자는 그에게 선거 유니폼 발주를 제안했다. 조건은 까다로웠다. 첫째, 새누리당과의 비교 우위를 점할 수 있게 유명 디자이너를 섭외할 것. 둘째, 대선 과정 홍보를 위해 유니폼 생산은 개성공단에서 진행할 것 등이었다. 또한 애초 당 홍보국 담당자가 요구한 유니폼 색상은 ‘초록색’이었다.
까다로운 조건이었지만, H 대표는 민주당의 선거 유니폼 제작에 참여하기로 결정했고 일은 착착 진행됐다. 그는 이 과정에서 동대문의 한 원단 업체와 계약을 맺기로 했고 이 원단 업체는 민주당의 요청대로 개성공단의 한 의류제작 업체와 하청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유명 디자이너 안 아무개 씨와 별도의 디자인 계약까지 체결했다. 지난 10월 23일, 민주당 홍보국 실무자들은 안 씨를 직접 당사로 불러 미팅을 갖고 디자인과 관련한 구체적인 요구사항까지 전달했다고 한다.
지난 10월 30일, H 대표는 유니폼 샘플을 만들어 당에 전달했다. 그 전까지 그는 유니폼 색상과 원단 등과 관련해 당 실무자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며 일을 진행했다. 유니폼 샘플에 대한 당내 품평회를 거친 뒤, H 대표는 당 실무자로부터 “유니폼 제작업체로 선정됐으니, 발주 및 생산을 실행하라”는 구두 통보를 받는다.
이에 따라 H 대표는 아무런 의심 없이 일을 진행했다. 당 실무자의 구두 통보가 있었고, 더군다나 11월 24일까지 급박한 마감시일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하청 업체들에게 생산을 주문한 것. 그런데 11월 7일, H 대표는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조정식 당시 선거대책위원회 소통1본부장의 한 보좌관으로부터 “지금까지의 일은 당 실무자였던 A 국장 임의대로 진행한 것”이라며 “아무 것도 결정된 사항이 없으니 유니폼 생산을 중단하라”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이나 다름없었다.
H 대표는 “황당할 따름이었다. 이미 모든 부자재가 개성에 넘어간 시점이었고, 다음날 새벽, 계약을 맺은 개성공단 업체에 원단이 올라가 오더를 내린 상황이었기 때문에 생산을 중단할 수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생산량은 유니폼 6000장, 금액으로 따지면 3억 2400만 원에 달했다. 여기에 디자인 비용까지 합치면 3억 4000만 원에 육박했다. 대부분 판촉업체가 그렇듯, 영세업자로서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지난 10월 작성된 대선 선거운동원 유니폼 제작 계획안. 제작 진행 업체가 트러스트코리아로 명시돼 있다. 맨 오른쪽은 현재 개성에 쌓여 있는 민주당 대선 유니폼.
당시 실무를 맡았던 민주당 A 국장은 <일요신문>과 만나 어느 정도 잘못을 인정했다. 그는 “잠정적으로 유니폼 생산 업체로 선정된 것은 트러스트코리아가 맞다. H 대표에게 구두로 이를 통보하고 발주를 요청했던 것이 사실이다. 도의적 책임은 있다”고 시인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식 계약 상태까지는 아니었지만, 업체 입장에서는 우리가 요구한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생산에 빨리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A 국장은 대선 당시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소통본부에서 잠시 물러났지만 다시 당직에 복귀했다.
트러스트코리아에 발주를 취소하고 제작업체로 선정된 K 사가 제작한 유니폼은 촉박한 마감 기일 탓에 올곧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할 수 없었다고 한다. 선거 운동원들은 사이즈, 색상, 품질 불량 유니폼 때문에 불만들을 쏟아냈다. 일각에서는 “왜 민주당의 전통색인 초록색이 아닌 친노를 상징하는 노란색을 선정했느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때문에 업체 선정과정에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A 국장은 이에 대해 “원래 색상은 초록색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윗선에서 유니폼 색상을 노란색으로 하라고 통보했다”며 “소통본부 내 한 친노 인사가 윗선에 이를 야기시킨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A 국장은 또한 “나도 업체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위에서는 이를 받아들여주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더 놀라운 것은 트러스트코리아가 지난해 대선뿐만 아니라 총선 당시에도 민주당에 이와 비슷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H 대표는 “지난 총선에서도 당에서 1억 원에 해당하는 선거 유니폼을 발주했다. 그런데 그 당시도 윗선에서 갑자기 또 다른 업체로 변경하는 바람에 피해를 본 바 있다”며 “민주당의 이러한 주먹구구식 업체 선정 일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나 말고도 피해본 업체는 더 많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2010년 이전에는 새누리당과 각종 판촉물 계약을 맺은 바 있는데, 이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정작 서민을 위한다는 민주당은 영세 업체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에 대해 당시 선대위 소통1본부장을 맡은 조정식 민주통합당 의원은 “그 문제는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무자였던 A 국장 차원에서 행한 실수였다. 그는 본부에서 이를 책임지고 물러났다”며 “더군다나 당시 업체는 정식으로 계약이 이뤄지지도 않은 상황으로, 우리 쪽에서는 해당 업체에 생산을 중단하라고 분명히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앞서 밝혔듯, 민주당이 업체에 생산 중단을 통보한 시점은 모든 부자재가 개성에 넘어갔고 이미 생산 오더가 내려진 상황이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