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침해”…할말 많지만 일단 백기
대기업농업생산진출저지 춘천시공동대책위가 4일 춘천시청 앞에서 동부팜한농의 유리온실 사업권 반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동부그룹의 농화학 계열사인 동부팜한농과 이 회사의 자회사이자 온실사업의 실주체인 동부팜화옹은 지난 3월 26일 경기도 화성시 화옹지구의 토마토 재배용 첨단 유리온실 사업에서 전격 철수한다고 밝혔다. 직접적인 이유는 ‘골목상권 침해’를 명분으로 농민들이 들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농민단체들은 동부의 비료, 농약, 음료뿐 아니라 보험 등의 상품들까지 불매운동을 펼치겠다며 동부의 사업 철수를 압박해 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농업 사업에 열정을 보이던 김 회장도 뜻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동부는 사업 중단을 선언한 만큼 기존 출하 계약을 맺은 일본의 메이저 유통업체 4곳의 공급분에 대해서만 공급을 진행할 계획이다. 동부팜 한농 관계자는 “사업 시작 첫해인 올해 연간 3000톤 생산을 계획했고, 현재 그 절반인 1500톤가량을 생산할 수 있는 수준의 토마토를 재배하고 있는 상태”라며 “2주 전(3월 셋째 주)에 첫 출하가 시작돼 일본 업체 4곳에 상품을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생산 완전 중단 시기는 정해져 있지 않다. 이 관계자는 “토마토는 1년간 한 나무에서 여러 번 토마토가 열리고, 계약을 물량이 아닌 기간 단위로 하기 때문에 당장 생산을 중단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다른 사업자로의 사업 승계가 빨리 이뤄지기만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사진공동취재단
당사자인 동부 측도 일부 영농법인 등과 접촉하며 손실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동부팜한농 관계자는 “몇 군데 영농법인에서 문의가 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농림부와 농협의 도움 아래 여러 곳의 영농법인들이 조직화를 통해 연합하는 방법으로 인수에 나서는 방안을 농협 측에서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 영농법인들의 규모가 대부분 영세한 데다, 연합의 형태를 취하기 위한 조직화의 과정이 길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단기간에 마땅한 인수자를 찾기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농협도 동부의 사업 중단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태다. 애초 정부의 농식품수출전문단지 조성 사업 대상자는 ‘세이프슈어’라는 회사였다. 이 세이프슈어의 모회사 세실이 부도 위기에 빠지자 동부그룹 계열사인 동부팜화옹이 이를 대주주인 농협으로부터 인수해 사업권을 승계 받았다. 동부 측은 사업 승계의 현실적 대안이 농협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남이 하면 불륜이고 자기들이 하면 로맨스’라는 볼멘소리를 되뇔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상황을 차치하고라도 이미 380억 원의 투자를 진행했음에도 사실상의 사업 중단에 들어간 만큼 오래 끌수록 손해가 커지는 동부 입장으로서는 애가 탈 만한 상황이다. 최근 이동필 농림부 장관은 “(동부그룹의 농업 진출 포기는) 아쉬움이 있다”며 “처음 시작할 때 공감대를 더 다졌다면 많은 돈을 투자해 놓고 철회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림부 관계자는 “애초 90% 이상의 토마토 제품을 수출용으로 계획했기 때문에 농민들의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다”며 “올해 초부터 표면화된 농업 생산자 단체 등의 주 타깃은 비단 이 사업뿐 아니라 동화청과, 가야농장, 몬산토코리아 등의 계속된 인수를 통해 전방위적으로 농업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동부였다”고 말했다.
화성 사업과 별개로 동부가 새만금간척지에 추진 중이었던 유리온실 사업에도 제동이 걸리게 됐다. 동부 관계자는 “새만금의 경우 아직 부지 조성도 되지 않은 상태긴 하다”면서도 “하지만 이번 화옹 유리온실과 똑같은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만큼 논란의 효과적 해소가 있지 않은 이상 기존 계획대로 사업을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
동부 금융지주사 전환 급물살 까닭 장남 경영권 승계 프로젝트? 김남호 부장. 이번 조치로 동부화재 중심의 금융지주사 전환 작업이 완성에 더 가까워졌다. 동부는 그룹 내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계열사 지분 관계를 단순화하기 위해 제조부문은 동부CNI, 금융부문은 동부화재를 정점으로 하는 두 개의 소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관련 재계에서는 최근 김준기 회장 장남 김남호 동부제철 부장(38)의 다음 직장이 동부화재가 될 것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 동부가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온 지주사 전환 작업이 결국은 김 부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프로젝트라는 것이 재계의 중론이다. 하지만 동부그룹 측은 지주사 전환을 전혀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최근까지도 인수·합병(M&A)을 공격적으로 하고 있는 상황이라 자금 수요가 늘 있는 데다, 아직 재무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이미 실질적으로 김 부장이 지분 면에서는 아버지인 김 회장을 앞서고 있을 정도로 안정적이라 승진은 물론 지주사 전환도 전혀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동부그룹 측에서 어림잡아 제시한 지주사 전환 작업 진행률은 80% 정도다. 특히 순환출자 구조 해소는 95%의 진척도를 보이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1~2년 안에도 지주사 전환을 법적으로도 완벽히 마무리할 수 있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1남1녀를 두고 있다. 김 부장보다 두 살 위의 김주원 씨가 장녀지만, 김 씨는 지분만 일부 보유하고 있을 뿐 그룹 경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 구도 없이 김 부장의 원활한 단독 승계가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