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투성이? 행복한 통증!
얼마 만에 들어보는 하이톤의 목소리인가. 신시내티 레즈로 이적 후 연일 상승세를 달리고 있는 추신수(31)는 연신 몸에 맞는 공들이 속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통증’이라며 몸 상태는 괜찮다고 말했다. 출루할 수만 있다면 멍이 들 정도의 몸에 맞는 공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것.
세인트루이스 원정경기 중인 추신수와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어느 해보다 좋은 스타트를 보이고 있다. 팀을 옮긴 게 가장 큰 이유가 되겠나.
▲글쎄, 아무래도 그 요인도 포함되지 않았을까 싶다. 스프링캠프 동안의 훈련 과정이나 시범경기 때의 성적이 아주 좋았다. 너무 좋아서 불안했을 정도로. 그게 시즌까지 이어지고 있고, 팀 성적이 뒷받침되면서 개인 성적까지 좋아진 듯하다. 신시내티 타선과 마운드가 정말 막강하다. 지고 있어도 막판에 뒤집어서 역전시킬 수 있는 저력이 있다. 선수들도 이 팀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이전 팀이었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는 내가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컸지만 여기선 내가 못해도 뒤에서 잘 쳐주는 선수들이 있으니까 부담 없이 타석에 들어선다.
―신시내티 경기를 보면 더그아웃의 더스티 베이커 감독을 종종 비추는데 그때마다 이쑤시개를 물고 계시더라.
▲이쑤시개뿐만 아니다. 선수들이 차는 손목보호대도 하신다(웃음). 그게 그 분의 트레이드마크이시다.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내가 실수를 해도 미디어 앞에선 공개적으로 감싸고 들어가신다. 당연히 고맙게 생각하지만, 더 잘해야겠다는 책임감도 같이 생기더라.
―시즌 초반부터 3경기 연속 홈런을 터트렸다. 메이저리그에선 처음 있는 일 아닌가.
▲3경기 연속 홈런은 처음이다. 그러나 2010년 9월 캔자스시티 원정경기에서 한 경기 3연타석 홈런을, 그것도 투런, 만루홈런, 솔로포를 터트린 적이 있었다. 첫 번째 홈런은 신시내티 홈구장의 이점을 통해 나온 것이다. 클리블랜드 홈구장인 프로그레시브필드였다면 담장 맞고 나왔을 공이다. 타자친화형인 그레이트아메리칸볼파크가 나한테 행운을 가져다준 셈이다. 홈런은 타자한테 에너지로 작용한다. 좋은 기운을 받고 있는 중이다.
―지난 9일(한국시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원정경기에서 수비 실책이 2개나 나오면서 패배의 빌미를 줬다가 9회 결승 득점과 3타점을 올리며 대반전을 연출했다. ‘지옥’이었다가 ‘천당’으로 마무리한 셈이다.
▲아마 그 날 그런 반전이 없었다면 난 제대로 ‘매장’ 당했을 것이다. 가뜩이나 중견수로 수비 위치를 옮긴 후 언제쯤 실수하나? 하고 비딱한 시선으로 바라본 사람들한테는 좋은 먹잇감이나 마찬가지였다. 나 또한 말도 안 되는 실책을 연달아 저지르며 ‘멘붕’ 상태였다. 9회 4-4 동점 상황에서 첫 타석 때 볼넷으로 걸어 나가면서 행운의 여신이 우리 쪽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느 해는 죽어라 해도 안 될 때가 있는데 올해는 죽을 뻔하다가도 살아난다. 나한테도 이런 날이 있구나 싶을 정도이다.
―결국 13-4로 대승을 거둔 후 신시내티 자케티 단장이 명언을 남기셨다고 들었다.
▲하루동안 지옥과 천당을 오간 내가 신경 쓰이셨는지, 자케티 단장이 날 찾아와서 하신 말씀이 ‘앞으로 놓친 공보다 잡을 공이 더 많으니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순간 울컥했다(웃음).
―신시내티와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외야수 제이 브루스는 일부러 한글 번역기를 다운받아서 문자를 보낸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진짜 재미있는 친구다. 영어로 보내도 되는데 나에 대한 관심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니까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런데 번역기로 돌린 문장을 보내다보니 문법이 전혀 맞지 않는다. 예를 들면 ‘아침 내일, 레스토랑 유 갈래 말래’이다. 그 문자 보고 웃겨서 죽는 줄 알았다.
―이런 상승세라면 올시즌 엄청난 기록들이 쏟아질 것 같다.
▲아직 시즌 초반이라 그런 예상을 하는 게 부담스럽다. 부상 없이 이런 페이스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주위에선 자꾸 FA(자유계약선수)를 거론하는데, 지금 내 머릿 속엔 그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전처럼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162경기를 치르며 얼마나 많은 일들이, 스토리들이 그 안에 있겠나. 마지막에 크게 웃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LA다저스 류현진도 두 번째 경기 만에 첫 승을 올리며 쾌조의 스타트를 선보였다. 한국 선수 혼자 있다가 둘이 되다 보니 서로 자극도 되고 위로도 될 듯하다.
▲현진이는 워낙 넉살도 좋고 여유가 있는 친구라 잘 적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진이가 오면서 메이저리그에 대한 한국 팬들의 관심이 더 많이 늘어난 것 같다. 좋은 현상이다. 서로 잘해야 한다. 그래야 아픈 사람이 안 생기니까(웃음). 나도 현진이도 분명 슬럼프가 찾아올 것이다. 잘 나갈 때보다 힘들 때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서로 자극보다는 위로가 더 많이 될 것이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