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 장남 김홍일 의원, 내년 총선에 출마하는 김영삼 전 대통령 아들 현철씨, 한나라당과의 접촉설이 나돌았지만 이를 부인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 3선에 도전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 딸 박근혜 의원. | ||
전직 대통령의 자제들이 앞다투어 정치판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면서 이들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의원이 3선에 도전하려는 의사를 굳힌 데다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현철씨가 거제 출마 결심을 밝히는 등 내년 17대 국회는 자칫 전직 대통령 자제의 경연장이 될 전망이다.
이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근혜씨도 대구에서 3선 도전을 준비중이다.또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근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를 만나 아들 재헌씨를 잘 부탁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위 윤상현씨는 한나라당 조직책 신청에 응모, 내년 총선 출마의 뜻을 밝혀둔 상태다.
이에 따라 17대 총선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양김의 아들 ‘대결’뿐 아니라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5명의 전직 대통령 아들, 딸, 사위가 총출동하는 이색 무대를 선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대통령 자제들의 이 같은 정계진출 붐은 ‘역시 피를 속이지 못한다’는 속설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아버지에 이어 정치인으로서 삶을 살겠다는 희망을 나타낸 것이다. 이들은 김홍일 의원을 제외하고 모두 한나라당 공천을 희망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선 내년 총선의 가장 큰 관심은 김홍일 의원과 김현철씨의 원내 진입 여부다. ‘양김 정치’가 사라진 마당에 아들들이 나란히 원내에 진출한다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은 양김의 지원을 직·간접적으로 받고 있는 만큼 양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는 분석이다.
민주당에선 김 의원이 두 번이나 국회의원을 지낸 만큼 지역구를 타인에게 양도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동생 둘이 구속된 데다 부친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점을 감안, ‘반성’ 차원에서 김 의원이 정계에서 은퇴할 것이라는 추정도 나돌았다.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해 정풍운동 과정에서 일부가 김 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요구, 김 의원이 위기를 맞기도 했다. 실제 김 의원 지역구인 목포에는 정치신인들이 대거 출마를 노리고 있다.
김 의원은 그러나 정치를 계속하려는 의지가 대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측근은 “지금도 지역구 관리에 열심이다”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내년 총선에 출마, 명예를 회복하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마치 김대중 정부가 많은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비치고 있는데 대해 안타까워하며, 이대로 물러설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목포의 민심이 예전같지 않다 하더라도 이희호 여사가 유세지원 한번만 다녀가도 김 의원은 쉽게 당선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부에선 김 의원이 출마의사를 강하게 시사하는 이유를 전국구 공천이라도 받기 위한 의도로 해석하고 있지만 본인은 여전히 지역구 출마를 고집하고 있다. 김 의원의 의원직 재도전은 내년 총선에서 여권 내부에 상당한 논란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현철씨의 경우는 김 의원보다 훨씬 더 많은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현철씨는 이미 경남 거제에 사무실을 내고 표밭갈이에 나서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를 만나 지원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김 전 대통령이 직접 현철씨 공천을 챙기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올 휴가도 거제에서 보냈다.
더구나 김 전 대통령 주변 인사나 민주계 출신들이 신당에 합류할 경우 한나라당에 곧바로 타격을 안길 수 있다. 최 대표가 현철씨의 면담을 거절하지 못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7월15일 최 대표의 취임 인사를 받은 자리에서 “(노 대통령을) 내가 픽업했기 때문에 잘 해주길 바랐는데 다 틀렸다. 대통령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고 강하게 비판했고, 민주동우회 강연에선 “무지하고 무능한 정권”이라고 독하게 말했다. 김 전 대통령 입장에서도 노 대통령과 거리를 두면서 한나라당의 호감을 사려는 행보로 해석되고 있다.
한나라당 거제 지역구 국회의원인 김기춘 의원은 이 같은 상황전개 탓에 상당히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한나라당 일부에서는 김 의원을 전국구로 보내고 현철씨를 공천하자는 의견도 있으나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여전히 다수는 현철씨 공천에 부정적이다.
김 전 대통령과 한나라당 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홍인길 전 수석이다. 한나라당은 YS와의 관계개선 차원에서 측근인 홍 전 수석을 부산 서구에 출마시킬 것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깃털론’으로 유명한 홍 전 수석은 한보사태 때 거액의 뇌물을 받아 실형을 살다가 최근 사면복권된 상태다. 서구는 박찬종 전 의원이 노리고 있는 지역구다.
한나라당 일각에선 최병렬 대표가 7월9일 취임 인사차 노태우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 장남 재헌씨의 대구 출마 가능성을 타진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재헌씨는 노 전 대통령 재임시절 국회의장 비서관으로 정치권에 발을 내딛는 등 나름대로 정계입문을 노크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측과 최 대표측은 이를 부인했다. 노 전 대통령을 모셨던 한 인사는 “재헌씨가 해외에 있는데 무슨 정치냐”며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혈육은 아니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위 윤상현씨는 내년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최근 한나라당 인천 남을에 조직책 신청을 한 상태다.
전직 대통령의 자제 중 가장 탄탄한 기반을 다진 경우가 박근혜 의원이다.박 의원은 그다지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은 채 이미지를 관리하고 있으며, 별 저항 없이 대구에서 3선 당선이 가능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박 의원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대를 이어 대권을 노리고 있다.
전직 대통령 자제들이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정치활동을 하는 것을 비난할 수 없으나 부친의 후광에 의해 정치권에 뛰어든다면 국민들의 반응도 싸늘할 것이란 지적이다.
김영선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