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검사’ 내리고 ‘TK검사’ 올리고
“고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향력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서울중앙지검 출신 한 법조인의 전언이다. 이번 검찰 인사 결과를 놓고 “19기 선두주자로 유명세를 떨쳐왔던 엘리트 검사가 과거 ‘박연차 게이트’ 사건을 담당했던 이력 때문에 인사에서 ‘물’을 먹었다”는 풍문이 돌면서 검찰 내부에서도 이런 저런 추측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병우 연구위원이 지난해에 이어 검사장 진급에 또 한 차례 실패하자 그 원인을 놓고 검찰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것이다. 우 위원은 23세 최연소 검사로 법조계 입문한 후 법무부, 서울중앙지검 경제부처 파견, 대검 등 선망되는 부처를 두루 거친 이른바 ‘검찰 엘리트’. 과거 채동욱 검찰총장과 ‘근무연’을 나눈 사이여서 우 위원의 탈락이 더 눈길을 끄는 점도 있다(2004년 채 총장이 대검차장 시절 삼성에버랜드 수사를 우 위원과 함께 했다).
법조 출신 박범계 민주통합당 의원은 “노무현 수사 담당이었던 우 위원은 당시 피의사실 공표를 밥 먹듯이 하며 경마식 보도 수사를 했다. 채 총장은 수사의 정도를 강조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리 우 위원과 친분이 있었다 한들 인사에서 우대해 주기는 어려웠을 것”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박연차 사건 관련인들이 다 (검찰을) 떠난 마당에 우 위원이라고 별 수 있나”는 일각의 추측이 기정사실화되는 모습이다. 서부지검 한 관계자는 “노무현 사건 때문에 아웃된 거 아닌가. 이번 국감에서도 과거 오해 살 만한 부분이 있다면 인사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취지의 말이 나온 것으로 안다. 그간 인사 과정 때문에 속을 끓였던 박근혜 대통령으로선 검찰 인사만큼은 트집 잡힐 일이 없길 바랐을 것”이라며 “(우 위원도) 홍만표(전 수사기획관)처럼 시기적절할 때 나갔으면 모양새라도 좋았을 텐데 너무 질질 끌다 망신만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우병우 탈락’을 기점으로 정치적 부담감을 줄이고 ‘TK’(대구경북), 친박 인사 등용으로 실익을 찾는 박근혜 식 인사 스타일은 서울중앙지검 인사에서 뚜렷이 드러났다. 그 결과 서울중앙지검 특수수사 지휘부에 TK 출신 검사들이 전면 포진됐다.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55·연수원 16기), 박정식 서울지검 3차장(52·연수원 20기), 여환섭 서울지검 특수1부장(45·연수원 24기) 모두 TK 출신이다. 서울지검장과 3차장, 특수1부장을 같은 지역 출신으로 채운 건 전례 없는 일. 게다가 조 지검장과 여 특수1부장은 대구 경북고, 서울대 선후배 사이기도 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서울지검 수사지휘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곽상도 청와대 민정수석도 TK 출신이다.
상황이 이쯤되자 ‘서울지검 인사에 청와대 입김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로 서울지검의 검찰 내 위상이 급부상한 게 한몫했다. 더군다나 최근 채 검찰총장이 서울지검 수사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공식석상에서 수차례 밝힌 바 있어 서울지검장이 실질적인 권력이 될 가능성도 높아졌기 때문. 또 서울지검장은 차기 검찰총장 영순위라는 타이틀도 암묵적으로 갖고 있어 ‘서울지검 측이 권력형 비리 사건 담당 시 청와대 입김에서 자유롭기가 어렵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번 검찰인사에서 ‘친 MB’ 성향 인물들에 대한 ‘단죄’가 암묵적으로 이뤄진 대목도 눈에 띈다. MB정권에서 출세가도를 달려온 ‘BBK’ 검사 최재경 전주지검장(연수원17기)이 고검장 승진에 탈락한 게 대표적인 케이스.
그런데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는 검찰내부 의견도 상당수다. 최 지검장이 2007년 대선 경선에서 박 대통령의 경쟁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사건’을 무혐의 처분한 장본인이기 때문. 이런 시각은 이번 검찰 주요간부 인사에서 이른바 ‘친박’ 성향의 충성도 높은 TK 파들이 대거 안착하게 된 배경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훗날 박 대통령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될 사건과 관련 혹시 모를 불미스런 정치적 판단을 애초부터 통제하려는 의도가 적잖게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정치검사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들을 낙방시키는 한편 TK 인사를 주요 보직에 배치하는 등 검찰인사에서 균형의 미를 선보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박근혜 정부. 서울지검 등 주요 자리에 배치된 검사의 정치적 성향이 정권 초기 국정 드라이브 강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인 만큼, 그간 불편한 오명에 휩싸여왔던 검찰이 박근혜 휘하에서 또 어떤 이야기를 써갈지 두고 볼 일이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우병우는 누구인가 그 사건 부메랑…화려한 날 가고 검사장 승진에서 고배를 마신 우병우 연구위원. 연합뉴스 명성대로 우 위원의 수사 이력은 화려한 편이다. 2001년 이용호 게이트 특검을 맡아 신승남 전 검찰총장의 동생인 승환 씨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처조카 이형택 씨를 알선수재혐의로 구속한 데 이어 2003년 서울지검 특수2부 부부장 시절 김운용 전 IOC 위원을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해 주목받았다. 2004년 삼성에버랜드 사건에도 일조하면서 채동욱 검찰총장(당시 특수2부장)의 극찬을 받은 바 있다. 그리고 2009년 검사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자리인 대검중수부 1과장 자리에 오른다. 당시 운명처럼 배당받은 사건이 4년 후 그의 발목을 잡을 줄 그는 알았을까. 수사 도중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을 선택해 불거진 여파로 임채진 전 검찰총장과 이인규 전 중수부장이 줄줄이 사의를 표하는 과정에서도 묵묵히 살아남았던 우 위원. 그는 당시 천성관 사태로 인해 깜짝 발탁된 김준규 전 검찰총장과의 근무연으로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에 금의환향하며 출세 가도를 이어갔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줄곧 검사장 승진 영순위로 알려진 그가 무려 2차례 고배를 마시고 쓸쓸히 검찰을 떠났다. 이른바 ‘행운’의 검사였던 우 위원이 하필이면 보수 성향 정부에서 사실상 내침을 당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
버림받은 친MB 인사는 물먹은 최재경…그녀의 뒤끝? 최재경 전주지검장. 연합뉴스 ‘17기 선두주자’로 고검장 승진 영순위로 점쳐졌던 최 지검장은 최근 동기 김경수 중수부장과 박성재 창원지검장에게 승진이 밀리는 수모를 당했다. 최 지검장은 서울지검 특수1부장 출신으로 BBK사건 수사를 맡은 뒤 대검 수사기획관 서울지검 3차장, 대검 중수부장 등을 거치며 그야말로 승승장구해왔다. 지난해 사의를 표명한 또 한 명의 17기 선두주자 홍만표 전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 정도가 간신히 라이벌로 거론될 정도로 최 지검장은 출세에 있어선 ‘천하무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사실상 박근혜 정부가 최 지검장의 출세 가도에 브레이크를 건 셈이다. 이를 두고 여권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최 지검장을 상대로 조용히 단죄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적잖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아마 그 때(2007년 대선) 검찰 수사 결과가 다르게 나왔으면 박근혜 시대가 5년 전에 열렸을 것”이라면서 “당시 박 대통령이 검찰의 판단을 존중하는 자세를 취하긴 했으나 심정적으로 최 지검장에 대해 좋은 감정이 있긴 어렵지 않나 싶다. 박 대통령이 뒤끝이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는데…”라고 말했다. 서울지검장 유력후보였던 김수남 수원지검장의 유임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김수남 수원지검장은 허위사실 유포 혐의에 걸린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사건 수사를 맡은 바 있다. 이 경우 박근혜 정부 측이 ‘정치검사’ 의혹을 받을 수 있는 이력을 명분으로 친 MB인사를 주요직에서 영리하게 배제시켰다는 평을 듣고 있다. 반면 서울지검 특수2부장에 발탁된 윤대진 대검 중수2과장(연수원25기)의 임명건은 또 다른 의미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으로 거론되고 있다. 지난해 윤 부장은 저축은행 비리 건을 맡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을 구속기소했다. 한편 이명박 정권에서 친 여권 성향의 충성도 높은 모습을 보여 왔던 일부 검찰인사는 유임되거나 승진된 것으로 나타났다.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사건, 민주당 공천 사건 등을 담당한 이상호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이 대표적인 주인공. 이 공안1부장은 부산지검 2차장으로 파격 승진하면서 이목을 끌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
‘노무현 수사’ 3인방 뭐하나 기업 고문·변호사 잘나간다 왼쪽부터 임채진 전 검찰총장, 이인규 전 중수부장, 홍만표 전 기획부장 임채진 전 검찰총장은 유명 기업 고문으로 위촉돼 체면을 유지하는 한편 변호사로서도 꾸준히 활동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 전 검찰총장의 측근은 18일 통화에서 “어딘지 밝힐 순 없지만 총장님께서 퇴임 후 모 기업의 고문을 맡고 계신 것은 사실”이라며 “변호사 업무는 형사사건만을 주로 담당하고 계신다”고 말했다. 임 전 총장은 최근 범죄피해자 가족을 위한 자선골프대회에 참여하는 등 대외활동에도 분주히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노무현 사건 당시 사퇴하지 않고 조용히 자리를 지켜왔던 홍만표 전 대검 기획조정부장은 시기를 잘 탄 케이스로 평가받고 있다. 2011년 검경 수사권 논의 과정에서 홍 전 부장이 검찰 창구역할을 했다는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해 검사들의 동정심을 자극했고 명예로운 물러남을 했다는 것이다. 홍 전 부장은 현재 전관 변호사로 3인방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현재 법무법인 바른에서 고문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법무법인 바른은 친 여권 성향의 법무법인으로 유명하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