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색 옷 입고 ‘무차별 범행’
일본 TBS에서 컬러 갱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일본의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컬러 갱. 그들은 대체 누구인가. <주간포스트>를 중심으로 컬러 갱의 위험성에 대해 살펴봤다.
매주 토요일 밤 9시, 붉은 색 옷을 입은 비행 청소년들이 지하 주차장에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다. 이들은 마치 갱처럼 거리를 누비며 ‘사냥감’을 노린 뒤 단체로 마구 두들겨 패는 폭력을 행사한다. 바로 ‘컬러 갱(Color Gang)’으로 불리는 일본 10대들의 모습이다.
무엇보다 컬러 갱은 기존 불량집단에 비해 흉포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문제시되고 있다. 이들은 칼은 물론 권총 지참도 서슴지 않는다. 이에 대해 <주간포스트>는 컬러 갱을 ‘야쿠자보다 무서운 집단’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1988년 일본에서는 데니스 호퍼 감독의 영화 <범죄와의 전쟁(Colors)>이 대히트를 기록한다. 영화는 붉은색이 상징인 ‘크립스(Crips)’ 갱단과 푸른색이 상징인 ‘블러드(Bloods)’ 갱단의 처절한 싸움을 담았다. 이즈음 갱 문화와 연관 깊은 미국의 힙합 음악과 패션이 최첨단 문화로 소개되며 일본에 유입된다. 컬러 갱은 이때 정착된 수입 불량문화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당시 일본 전국에 퍼져 있던 폭주족의 일부가 변형돼 자체적으로 컬러 갱을 이뤘다고 보기도 한다.
2000년에 크게 번성한 컬러 갱은 신주쿠, 이케부쿠로 등 도쿄 번화가에서 조직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같은 해 일본 방송국 TBS에서는 컬러 갱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I.W.G.P)>가 방영돼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후 몇 년간 컬러 갱은 집단 패싸움부터 절도, 납치, 폭행, 방화 등 무차별 범행을 저지르더니 급기야 살인까지 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한다.
보통 15세에서 18세까지의 청소년들로 구성된 컬러 갱 멤버들은 대부분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있으며 정비공, 용접공, 목공 등의 일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컬러 갱이 무서운 이유는 조직에 규율이나 규칙이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그야말로 즉흥적으로 범행을 저지른다. 이전의 폭주족이나 폭력집단은 상하관계가 확실하고 조직원들이 강한 연대감으로 연결돼 있는 것은 물론 조직에 규칙이 따로 존재했다. 그러나 규칙이 없고 10대들로만 구성된 컬러 갱은 집단심리가 폭주할 때 제어되지 못하며, 아무리 잔인한 범행도 분위기에 휩쓸려서 같이 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일본 폭력집단에는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비겁하다. 맨손 격투로 정정당당하게 싸우자’라는 그들만의 문화가 있지만, 이것은 ‘총기사회 미국’을 본거지로 하는 컬러 갱들에게 통용되지 않는 이야기다. 컬러 갱은 싸움에 있어서 수단과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 과거 블랙 갱이었다고 자신을 밝힌 20대 남성은 이렇게 말한다. “같은 색의 스카프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유일한 룰이었다. 컬러 갱은 이길 수 있으면 뭐든지 가리지 않는다. 금속배트나 파이프, 칼, 전기충격 총을 사용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심지어 갱단의 리더는 어디서 조달했는지 모르지만 권총을 소지하기도 했다.”
컬러 갱들에게는 ‘진정한 야쿠자는 약자를 괴롭히지 않는다’라는 규칙 역시 적용되지 않는다. 여성과 노약자도 주저 없이 표적으로 삼는 것이다. 실제 블랙 갱의 한 멤버는 자신의 여자 친구가 다른 컬러 갱 멤버들에게 납치돼 배트로 얼굴과 몸을 구타당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이번 ‘사이타마 컬러 갱 난투극’ 사건을 접한 일본 네티즌들은 체포된 46명에 대해 “장래 흉악범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며 엄중히 처벌할 것을 촉구했다. 덧붙여 컬러 갱들이 종래의 폭주족과 달리 무고한 일반인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거나 습격할 때 끔찍한 흉기사용도 불사하는 것을 지적하며 “이번에야말로 컬러 갱을 근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번 사건에 연루된 사이타마의 블루 갱과 블랙 갱은 조직원 46명이 체포된 후 갱단의 리더가 해산을 선언했다. 그러나 일본 경찰청은 이외에도 다수의 컬러 갱이 존재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이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