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 슈터’ 코트 떠나 ‘파이터’ 전락
1982년생, 2001년에 대학에 입학한 농구 유망주들은 남자농구의 미래를 이끌어 갈 ‘슈퍼 학번’으로 불렸다. 방성윤은 연세대 시절이던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발탁됐다. 대학 선수로는 유일했다.
방성윤은 국내에 머물기에는 아까운 선수였다. 195cm, 100kg의 탄탄한 체구 그리고 가진 기량이 남달랐다. 2004년 미국프로농구(NBA)의 하부리그인 NBDL에 입성해 NBA 진출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국내 프로농구 구단들도 방성윤을 포기할 수 없었다. 방성윤은 대학 졸업 예정 연도에 맞춰 2005년 2월 신인드래프트 참가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부산 KTF(KT의 전신)가 전체 1순위로 그를 지명했다.
방성윤은 2005년 4월에 입국해 KTF와 본격적인 협상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놀라운 보도가 나왔다. 방성윤의 에이전시 측이 몸값으로 총액 70억 원을 요구했다는 내용이다. KTF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상처를 받은 것은 방성윤 역시 마찬가지였다. 5월 말 다시 미국으로 떠나기 전 온라인 게시판에 “저를 70억짜리 거물 선수로 만들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연봉 70억짜리 거물 선수가 되라는 뜻으로 알고 열심히 훈련하겠습니다. 심신이 다 지치고 쉬러 왔다가 피멍만 들고 가는 것 같습니다”라는 다소 냉소적인 글을 남겼다. 알려진 내용이 과장됐다는 것이다.
지난 2010년 SK에서 뛸 당시 모습.
방성윤은 코트 위에서만큼은 잡음을 일으키지 않았다. 데뷔 첫해인 2005~2006시즌 평균 17.2점을 올리며 신인왕을 차지했고, 시즌을 거듭할수록 평균 득점이 19.3, 22.1점으로 수직 상승했다. 외국인선수가 득세하는 프로 무대에서 토종 스코어러의 자존심을 세웠다.
문제는 부상이었다. 방성윤은 SK에서 머문 첫 5시즌 동안 무려 110경기에 결장했다. 다시 미국 무대를 노크했다가 복귀하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방성윤은 2009~2010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FA)가 됐다. SK와 협상이 결렬됐다. 수도권 A 구단과 지방 B 구단이 방성윤을 영입하기 위해 연봉 상한선을 초과하는 어마어마한 계약 조건을 준비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자 방성윤은 그 어떤 팀에게서도 영입 제안을 받지 못했다. 다시 SK로 돌아와야 했다. 당연히 떠날 줄 알았던 SK도 난감했다. 선수 몇몇을 정리해 방성윤에게 줄 연봉을 마련했다. 1억 3000만 원이었다. 앞서 SK가 방성윤을 잡기 위해 제안했던 금액은 5억 2000만 원이었다.
충격을 받은 방성윤의 마음은 이때부터 농구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2010~2011시즌 5경기 출전에 그쳤다. 무릎 부상이 심각했지만 신선우 감독과의 불화로 인한 태업설도 있었다. 방성윤은 구단에 트레이드를 요청했는데 타 구단이 바라보는 방성윤은 부상이 잦은 평범한 선수였다. 결국 트레이드마저 무산되자 방성윤은 운동을 거부했다.
농구계의 한 관계자는 “새로 부임한 문경은 감독대행이 방성윤의 마음을 잡기 위해 나섰지만 방성윤은 이미 코트를 떠날 결심을 하고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방성윤은 2010년 6월 임의탈퇴로 공시됐고 곧 은퇴 수순으로 이어졌다. 방성윤은 지인을 통해 자동차 딜러로 새로운 인생 설계를 시작했다. 1년이 지나 몇몇 구단이 방성윤의 영입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방성윤의 뜻은 완강했다. 방성윤은 절친하게 지낸 대학 동기들과도 연락이 두절됐다. 한때 같이 뛰었던 동료 선수가 가족상을 당했는데도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농구가 아닌 방성윤의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방성윤은 지난달 동업자를 폭행했다는 혐의를 받고 검찰에 송치됐다. 그 소식에 농구계 전체가 한숨을 내쉬었다. 한때 남자농구의 미래였던 그가 비운의 스타로 전락한 순간이었다.
박세운 CBS 체육부 기자
동료 폭행사건 전말 “쇠파이프로 맞아” vs “남자끼리 장난” 지난 2011년 은퇴를 선언한 방성윤은 농구인들과 모든 연락을 끊고 지인인 이 아무개 씨와 함께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계획 중이던 사업은 이 씨의 또 다른 사업동료인 김 아무개 씨로 인해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이 씨는 김 씨가 자신의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그 안에 중요한 서류가 들어있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누명을 쓴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방성윤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고 한다. 방성윤과 이 씨의 폭행은 그 이후부터 시작됐다고 김 씨는 전했다. 그는 “사무실에 감금당한 채 2012년 4월부터 8월까지 방성윤과 이 씨에게 골프채와 아이스하키 스틱, 쇠파이프 등으로 매일 같이 40~50대를 맞았다”고 주장하며 방성윤과 이 씨를 지난해 9월 서울 혜화경찰서에 고소했다. 이에 대해 방성윤은 “김 씨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남자들끼리 장난친 게 전부”라고 하소연했다.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 관계자는 “양측의 진술이 하나도 같지 않았다”며 “피고소인인 방성윤이 특히 적극적으로 반박자료를 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방성윤이 계획하고 있던 사업에 차질이 생기면서 폭행이 발생했다고 하는데 사업 준비와 폭행 사건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경찰은 목격자 진술 등을 통해 피의자 방성윤과 이 씨의 혐의를 일부 확인해 그들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지난달 19일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 조사에서도 방성윤와 피해자 김 씨의 진술이 계속 엇갈렸다. 이에 그들은 검찰의 요청에 따라 지난 16일 서울지방경찰청에 출두해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방성윤은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도 담담하게 자신의 혐의에 대해 모두 부인했다”며 “검찰도 거짓말탐지기 조사의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밝혔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