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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월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이희호 여사. 이 여사는 최근 자신과의 친분을 내세워 10억원대의 돈을 받고 사업권을 따주겠다고 했다는 무속인 이씨 때문에 민사 소송에 휘말렸다. | ||
검찰이 최근 김대중 정부 시절 각종 사건과 이권에 개입해 거액을 챙긴 의혹이 제기된 무속인 출신 이아무개씨(45)에 대해 수사에 들어가, 그의 정확한 실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사건은 지난 6월 초 유아무개씨(52·자영업·대구시 달서구 감삼동)가 서울지검에 이씨 등에게 사기 피해를 당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내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유씨는 진정서에서 “이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양아들로 알려진 인물”이라며 “1997년 대선 때 알게 된 이 여사와 이씨가 ‘선거운동을 도와주면 대구시내 유료주차장 사업권을 주겠다’고 해, 선거운동비 등으로 10억원대의 돈을 썼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유씨는 올 1월 서울지법 서부지원에 이 여사를 상대로 17억5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재판부는 애초 유씨의 조정신청에 따라 유씨와 이 여사 간에 조정을 시도했으나, 이 여사가 서면 답변서를 통해 “유씨를 알지 못한다”고 주장함에 따라 사건을 정식 재판에 넘겼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씨 사건이 2000년 11월 경찰 수사로 한 차례 걸러졌던 사안이고, 수사과정에서 이 여사와 이씨 사이에 실제로 친분관계가 있었음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1998∼2000년 유씨와 인삼업자 황아무개씨 등 3명한테 취직 알선과 사건 해결 등을 해주겠다고 속여 1억3천여만원을 받은 혐의(사기)로 이씨를 구속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로부터 이씨의 비위 혐의에 대한 첩보자료 등을 넘겨 받아 수사를 하게 됐다”며 “이씨가 이 여사의 양아들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여사를 몇 차례 만나는 등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받은 서울지검은 구속 20여 일 만에 “죄질이 나쁘지 않고, 피해자들과 합의했다”는 이유로 이씨를 벌금 1천5백만원에 약식기소하고 석방했다. 이른바 ‘청와대 사칭 사기범’들이 통상 1천만원대의 금품수수 혐의만 드러나도 구속기소되는 관행에 비추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씨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일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진정인 유씨는 “경찰 수사 때 이씨와 유력 정치인, 검찰 간부 등과의 유착관계에 대해서도 진술했으나, 수사관들이 ‘검찰에나 가서 얘기하라’며 묵살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검찰 역시 내 얘기는 들어보지도 않고, 이씨만 불러 조사한 뒤 풀어줬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런데 과연 이씨는 그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었을까? 이에 대한 이씨 주변 사람들의 대답은 “적어도 2000년까지 이씨의 위세는 김 대통령 아들 삼형제가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이씨 측근들에 따르면, 경북 출신인 그는 본래 단군을 모시는 무속인이었다. 어릴 적부터 ‘신기’(神氣)가 있었으며, 대구·경북 지역은 물론 서울에서까지 ‘용한 점쟁이’로 이름이 날 정도로 명리학과 관상학 등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가 애초 정·관계 유력 인사들과 인연을 맺게 된 것도 한동안 서울 강남 등지에서 점집을 운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씨의 한 측근은 “주로 정치인이나 장·차관, 군 장성 부인들이 이씨를 찾아 남편의 ‘관운’ ‘승진운’ 등을 보고 가곤 했다”며 “그러다 자연스럽게 이들의 남편들과도 교분을 맺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중 정치인으로는 국민의 정부 실세였던 H씨와 현역 국회의원인 P씨와 J씨, 전직 의원인 L씨와 P씨, K씨 등이 거론된다. 또 5공 인사인 C씨와 예비역 장성인 L씨, C씨 등도 이씨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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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 여사 쪽은 DJ가 영남권 지지 기반이 취약한 점을 감안해, 대구·경북 지역의 한 무속인단체를 이끌면서 불교계에도 일정한 영향력을 갖고 있던 이씨에게 지원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씨는 몇몇 지역 인사들과 함께 일종의 선거 사조직인 ‘○○포럼’ 등을 꾸려 DJ 선거운동에 앞장섰고, 이로 인해 이 여사의 각별한 신임을 얻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다 DJ가 마침내 그해 12월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이씨의 인생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개 무속인에서 졸지에 ‘권력 실세’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그가 DJ 당선 뒤 제일 먼저 착수한 일은 대구 팔공산 등 전국의 명산 대찰을 차례로 돌며 이른바 ‘국사기도회’를 여는 것이었다. 당시 이씨와 함께 다녔던 유씨와 황씨 등은 “나라의 안녕과 김 대통령 부부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행사였는데, 해당 지역의 시장·군수는 물론, 유지급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는 등 성황을 이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씨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그를 통해 권력 핵심에 줄을 대거나 ‘민원’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주위에 꼬이고, 이씨의 어깨에도 힘이 들어가면서 ‘비리의 싹’이 자라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정당국 한 관계자는 “그 무렵 ‘이씨가 영부인과의 친분을 내세워 대학 유치 등 지역 민원을 해결해주겠다는 명목으로 해당 지방자치단체장들한테 향응 접대 등을 받고다닌다’는 첩보들이 입수됐었다”고 전했다. 그만큼 이씨가 실제로 ‘힘’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다.
황씨는 “이씨가 자유롭게 청와대를 드나들고, 유명 정치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직접 봤다”며 “이 여사가 99년 부산 수영만에서 바자회를 할 때는 이씨가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직접 이 여사에게 소개시켜주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씨가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P씨의 ‘목숨’을 구명해준 적도 있다며 그 일화를 소개했다.
“한번은 DJ가 해외 순방길에 올랐는데 모 단체장인 P씨가 수행원 자격으로 따라갔다. 그런데 해외 현지에서 P씨가 입을 잘못 놀려 DJ 심기를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에 대통령 측근들은 P씨에게 ‘귀국하자마자 옷벗을 각오하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청와대에 줄을 댈 수 있는 인물을 수소문한 끝에 서울 P호텔에서 이씨를 만나 도움을 청했고, 이씨가 청와대에 들어갔다 온 뒤로 P씨는 무사했다고 한다.”
특히 이씨는 당시 몇몇 검찰 고위간부들과도 친분이 깊었으며, 이를 이용해 사건 해결 청탁과 함께 거액의 사례비를 받아 챙기는 등 ‘법조 브로커’ 구실을 했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그의 측근들은 이씨가 그동안 개입한 몇몇 사건을 꼽으면서, 이씨와 가깝게 지낸 검찰 인사로 P씨와 K씨 등을 지목했다. 그러나 P씨는 “동창 소개로 알게 된 이씨를 몇 차례 만난 것은 사실이나, 구체적인 사건과 관련해 청탁을 받은 기억은 없다”고 해명했다.
또 이씨 측근 K씨는 “이씨는 99년 1월 경기도 광주시 자택으로 직접 찾아온 기초자치단체장 K씨로부터 ‘검찰이 내 비리를 수사중인데 힘을 써달라’는 부탁과 함께 5천만원을 받기도 했다”고 목격담을 얘기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뒤 K씨에 대한 검찰 수사는 난항을 겪으며 장기화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사실 K씨의 뇌물수수 혐의는 원래 서울지검에서 포착한 것인데 뚜렷한 이유 없이 시간만 끌다가 결국 1년 가까이 지나 다른 지청에서 K씨를 구속했다”며 “해당 지청의 수사팀도 당시 대검 수뇌부가 K씨에 대한 구속 승인을 자꾸 미루는 바람에 고생을 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밖에 이씨는 99년 김 전 대통령의 친인척 L씨를 황씨가 운영하던 기업체 회장으로 영입해 동해시 관내 국유지 수십만 평에 ‘인삼실버타운’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등 각종 이권사업에도 개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의혹은 적지 않은데 검찰의 수사 행보는 더딘 상태. 이 사건 수사를 맡은 서울지검 형사2부는 지난달 진정인 유씨를 한 차례 소환조사했지만 그후 수사가 진척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이씨의 소재도 파악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를 둘러싼 각종 의혹의 진상이 밝혀질 수 있을 것인지는 이제 검찰의 수사 의지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명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