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정책은 지난 4월 열린 주요 20개국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 사실상 면죄부를 받아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00엔 돌파를 목전에 둔 가운데 이미 일본 수출업계는 자동차, 전자, 조선 등을 중심으로 6년 만에 최대 호황을 맞는 분위기다. 더욱이 일본 기업들은 해보자는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세계 최강의 경제를 다시 만들겠다는 자신감이 역력하다. 이에 고무된 아베 정권은 제2차 세계대전 침략을 정당화하려는 발언까지 하며 과거의 군국주의 본색까지 드러내고 있다.
일본 초강수 정책의 최대 피해국은 우리나라다. 우리나라 산업구조는 발전 과정상 일본과 흡사하다. 따라서 해외 시장에서 자동차, 석유화학, 조선, 기계, 전자 등 핵심 상품들이 중복 경쟁을 벌인다. 당연히 일본의 수출 증가가 우리나라의 수출 감소로 연결된다. 지난해 9월 100엔당 평균 1440원이던 원-엔 환율이 최근 1120원선까지 떨어졌다. 엔화 가치가 원화에 비해 20% 이상 하락했다. 2015년까지 이러한 하락세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일본 상품들에 비해 특별한 비교우위가 없는 상태에서 우리나라 수출이 결정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일본과 경합하는 우리나라 수출 품목 49개 가운데 21개 품목이 벌써 지난해 수출 증가에서 올해 수출 감소로 돌아섰다. 현 추세로 나갈 경우 우리나라 수출은 10% 이상의 급격한 감소세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수출의 피해는 내수가 사실상 빈사상태인 우리 경제의 숨을 막는 것이어서 사태의 심각성이 크다.
실로 큰 문제는 우리나라가 엔저 공습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이다. 우리 경제에 우선적인 대응책으로 필요한 것은 유연한 통화정책이다. 일본이 엔화를 평가절하하여 일본 수출 기업들에게 가격경쟁력을 높여 줄 경우 우리나라도 정당방위 차원에서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순리다.
그러나 우리나라 통화정책을 주관하는 한국은행은 어깃장을 놓는 모습이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이 지난 4월의 기준금리 동결이다. 경제 여건으로 보아 기준금리를 내려 기업들에게 힘을 더해줘야 한다는 것이 시장의 요구였다. 더욱이 정부는 17조 3000억 원에 이르는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하여 경제 살리기에 안간힘을 기울이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리동결을 강행하여 엔저 공습과 경기침체의 2중고를 탈피하려는 기업과 정부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국민경제를 살리기 위한 독립성이지 정부정책을 반대하기 위한 독립성은 아니다. 세계 각국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와 중앙은행이 일체가 되어 경기부양 정책을 펴고 있다. 일본은 아예 전 세계경제를 상대로 환율전쟁을 선포하고 정부와 중앙은행이 공동 전략을 펴고 있다. 우리나라도 각국의 양적완화와 엔저 공습에 대응하고 경기를 회복시키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전략이 절실하다. 여기에 근본적인 대책은 산업계의 경쟁력 강화임을 명심하고 기업들도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서울대 초빙교수(전 고려대 총장) 이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