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수학능력시험인 SAT 5월 시험이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취소됨에 따라 ‘나라 망신’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시험이 취소된 이유는 바로 문제 유출 의혹 때문. SAT를 주관하는 미국 칼리지보드(College Board)는 지난 1일 한국 응시생에게 이메일을 통해 “5~6월 출제될 수 있는 문제 일부가 한국에서 유출된 사실을 확인했다. 많은 응시자가 이미 문제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시험을 취소한다”고 공지했다.
SAT 문제 유출 의혹이 일었던 강남의 어학원들. 기사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일요신문DB
공식 감정 결과는 아직 나오진 않았지만, 검찰은 지난 1일 ETS 본사 관계자를 직접 불러 문제 유출 여부를 직접 물어봤다고 한다. 이에 ETS 관계자는 “문제가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검찰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검찰은 학원 관계자와 수강생 등의 조사도 병행 중인 상태다.
ETS 관계자에게서 문제 유출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칼리지보드 측에서는 시험 취소 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칼리지보드는 이메일에서 “다양한 대안을 검토했지만 시험의 신뢰성과 다른 국가 응시생들과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취소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다만 다음 달 1일에 치러지는 6월 SAT는 취소 없이 진행될 예정이다.
한편 강남 학원가에서는 “우려했던 일이 결국 터졌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동안 SAT 문제 유출 국가로 한국이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왔기 때문이다. 강남 소재 한 어학원 관계자는 “언제든지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새삼 놀랍지도 않다”며 “2007년 사태 이후에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것이다. 문제 유출을 주도한 일부 학원, 학부모 등 어른들이 스스로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라고 전했다.
‘2007년 사태’는 지난 2007년 SAT 문제 유출 의혹으로 한국 학생 900명 전원의 성적이 한꺼번에 취소된 사건을 말한다. 또 다른 어학원 관계자는 “문제 유출이 워낙 지속적으로 일어난 터라 단기간에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시험 취소 사태로 피해를 보는 학생들만 불쌍하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한국에서 SAT 문제가 유출되는 경로는 다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국과 미국의 12시간 시험 시차 차이를 이용해 문제를 유출하는 ‘시차 방식’, 강사가 직접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문제를 외워오도록 시키는 ‘아르바이트 방식’, SAT 시험에 계산기를 쓸 수 있는 점을 이용해 계산기에 문제를 적어오는 ‘계산기 방식’, 유학생을 거액에 주고 섭외해 직접 ‘대리시험’을 보게 하는 방식 등이 있다. 앞서의 강남 어학원 관계자는 “한국 학생이 SAT 점수가 높으면 일단 미국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은 의심부터 하는 경향이 있다”며 “SAT 문제를 유출해 시험을 잘 봐서 미국의 명문 대학을 가더라도 졸업도 못하고 배회하는 유학생들이 수두룩하다”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